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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취재파일] 기자도 당한 '통신 조회', 무조건 제한이 능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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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2건이나 받았습니다. 요즘 유행한다는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 말입니다. 어느 날 아침, 민주당 정치인 관련 수사를 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 명의로 날아든 통지 문자를 받아 들었을 때, 솔직히 적잖이 불쾌했습니다. 정치부 출입기자 시절 야당 정치인들과 통화를 할 일이 많았는데, 검찰이 이것들을 모두 들여다보고 '사찰'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덜컥 들었습니다. '당신의 통화 기록을 털어본 건 아니고, 피의자로 입건된 어떤 인물의 통화 상대방 가입자 정보만 통신사로부터 받았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사실 찝찝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통신 이용자 정보>와 [통신사실 확인 자료] : 수사 기관이 피의자와 관련자들의 통화내역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통신 영장'이라고 불리는 절차를 통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렇게 확보한 통화내역 등 자료가 [통신사실 확인 자료]이다. 이후 수사기관은 통화내역 등 [통신사실 확인 자료] 를 바탕으로 통화 상대방 전화번호 주인이 누구인지 등 <통신 이용자 정보>를 통신사에 요청해 받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는 현재 법원의 허가가 필요 없다.


알고 보니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과정에서 정치인은 물론 일반인과 언론인 등 많게는 1천 명 넘는 사람들에게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당한 사실이 통보됐습니다. 곧바로 이 문제는 뜨거운 이슈가 됐습니다. 몇 년 전, 공수처가 보수 정당 소속 의원들에게 했던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180석 넘는 의석을 점유한 야권 정치인들이 대상이 된 상황. 안 그래도 검찰을 벼르고 있던 야당은 칼을 빼들었고, 억울하고 불쾌한 기억이 있는 여당에서도 동조 목소리가 솔솔 나오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재판지연…통신조회 영장 업무는 누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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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이야기는 법원에 통제 권한을 주자는 것입니다. 현재 수사기관이 어떤 사람의 통화내역 (통신사실 확인 자료)를 조회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통신영장이라고 불리는 절차를 통해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통화 상대방의 신원 정보', 즉 '통신 이용자 정보'를 조회할 때에도 법원 허가를 받자는 논의가 다시금 분출하고 있습니다. 현재 검찰 등 수사기관이 '통신 이용자 정보'를 조회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또 법령상 예외규정인 '당사자에게 통지를 유예할 수 있다'는 조항을 지나치게 남발하고 있으니 제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방안은 사실 법률가들 사이에서 이미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 왔습니다. 올해 이전까지는 수사기관이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해도 당사자에게 통보할 필요조차 없었는데, 헌법소원을 통해 당사자에게 통보되도록 법안 개정을 이끌어낸 법률가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법원을 통한 통제 방안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제안에 대해서는 최근 야당뿐만 아니라, 여당 정치인들도 생각해 볼 만하다는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습니다. 판사 출신으로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핵심 측근이기도 한 장동혁 의원은 언론에 "통신 조회는 극도로 제한적으로 활용되는 게 원칙"이라며 "수사기관이 법원을 거치지 않고 남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3년 전 공수처로부터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당했던 국민의힘 5선 권영세 의원도 "관련 내용을 검찰에만 맡겨서는 안 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논의가 진척된다면 '통제 권한'을 부여받게 될 법원 판사들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반응도 나옵니다. 판사들은 현실적으로 부딪치게 될 인력 문제와 심문 방식의 문제를 말했습니다. 영장재판 업무 경험이 있는 A 판사는 SBS와 통화에서 "일단 인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번처럼 꼭 정치 사건이 아니더라도, 살인이나 납치 같은 사건에서 현행범을 잡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통신 정보 조회를 하게 된다"며 "현재도 일선 법원의 영장재판 업무가 가까스로 이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조회를 건건이 심사하는 건 현재 법원 인력으로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A 판사는 "법관 증원 논의도 지지부진한 상황 속에서 법원에 권한만 부여하면 통신 정보 조회가 급히 필요할 때 문제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영장재판 업무를 하고 있는 B 판사는 "인신 구속도 아닌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의 '수사상 필요성'을 어떻게 심사해야 할지 의문"이라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B 판사는 "법에서 통제 필요성을 선언하면 수사기관이 무분별한 조회를 자제하는 위축 효과는 있겠지만, 단독 판사 개개인이 수사 단계에서 단순 이용자 정보 조회의 필요성까지 일일이 논리적 근거를 갖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채 해병·김건희 여사 특검이 건건이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 영장'을 쳐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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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는 최근 기자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활발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당하기도 한 저는, 개인적으로 최근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를 실시하기도 했습니다. '채 해병 수사 외압 사건'과 관련해서, 박정훈 대령의 항명 혐의 재판이 진행되는 군사법원을 통해 주요 인물들의 통화 기록이 변호인에게 제출되고, 언론은 이 통화기록을 입수해 해당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 찾는 취재 활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채 해병 수사기록 이첩과 보류 결정이 이뤄지던 그 시각, 이종섭 전 국방장관이나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통화한 전화번호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의혹 규명의 핵심 요소인데, 공수처 또한 통신영장을 통해 확보한 통신기록을 분석해 실체 규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검찰이 진행한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는 사건의 성격이나 조회 범위에 있어서 '채 해병 사건'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도가 바뀌게 되어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에 법원 허가가 의무화된다면, 새로운 시스템은 사건의 성격을 가리지 않고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정파가 생각하기에 '한시라도 빨리 규명해야 할 사건'은 물론, 누군가를 납치하거나 죽인 사람을 찾기 위한 사건에도 말입니다.

통신 정보 보존 기한이나 공소시효가 다가오면서, 현재 야권을 중심으로 '채 해병 수사 외압 의혹'이나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대해 특검을 발족해 신속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정치권이 주장하는 것처럼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 자체가 '사찰'로 낙인찍힐 경우, 만약 이 의혹들에 대한 특검이 발족하게 된다면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해야 할까요? 프로파간다를 업으로 하는 정치권에서는 연일 '사찰 논란 띄우기'에 열심이지만 그들도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철저히 파헤치기'의 강박과 새로운 제도 설계




국가 권력인 수사기관의 권한 행사를 정교하게 통제하는 것은 분명 보통 시민들에게 좋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고, 준비와 논의가 필요합니다. 모든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신속하고 철저하고 정확하게' 의혹을 파헤치자는 주장이 넘실댑니다. 야당 의원도, 여당 의원도, 수사기관장은 물론 언론과 진보ㆍ보수 유튜버도 "신속 정확히 파헤치고 밝히지 않으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원래도 조금 그랬던 것 같지만, 사회적 대립과 갈등이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이러한 '철저히 파헤치기'의 강박은 모두에게 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 아이러니한 것은, 새롭게 논의되고 있는 사법제도의 설계가 종종 이러한 강박이 향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이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수사 기관을 쪼개고, 나누고, 권한을 분산시키고, 통제 장치를 추가하고…. 여야를 막론하고 내가 힘을 행사할 땐 수사 기관을 사냥개처럼 풀어놓고, 사냥개가 내 쪽으로 이빨을 보일 땐 튼튼한 입마개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란의 소용돌이 속, 이제는 한 번쯤 이런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건 과연 무엇일까요?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것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싸움' 그 자체가 아니라면, 조금 더 신중하고 정교하게 제도 변경 논의를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검찰 또한 '현행법상 합법'만을 줄기차게 강변하기보다 여권과 보수 언론에서조차 통제 논의가 나오는 배경과 맥락에 대해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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