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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투데이 窓]상사의 빨간펜은 직장 내 괴롭힘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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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양지훈 변호사




'직장내괴롭힘금지법'이 2019년 7월 시행된 지 만 5년이 경과했다. 올해 4월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3년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모두 1만28건이다. 하루평균 27건 정도로 전년보다 12% 늘었는데 이는 5년 새 신고가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라고 한다. 지난해 처리가 완료된 사건 가운데 60% 넘는 사건이 조사결과 법 위반이 없었거나 근로기준법 적용대상 사업장이 아닌 경우 또는 동일민원이 중복신고된 경우 등이었다(연합뉴스 2024년 4월7일자 보도).

작업현장에서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갈등은 접수된 사건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 일선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한편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접수된 사건의 절반이 넘는 사건이 '무혐의' 처분되고 겨우 10% 남짓 되는 사건이 개선지도, 과태료 처분, 검찰 송치로 사건이 종결된다고 한다. 신고는 많지만 괴롭힘으로 인정되는 비율이 낮다는 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직장 내 괴롭힘 과잉·허위신고가 많다는 의견이 있고 반대로 사건 조사자가 괴롭힘 판단을 소극적으로 한 결과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우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정의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다. 그러나 현실에서 법률의 문언 자체만으로 우리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판단을 곧바로 하는 것은 어렵다. 그렇다면 이 법률조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정의하며 요건을 가중하면 현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일각의 주장처럼 업무상 적정범위와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정의를 더 명확히 하는 것이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과잉·허위신고를 줄여줄 수 있을 것인가.

법률요건이 강화되면 신고 자체가 축소되는 것은 쉽게 예상되지만 이에 따라 괴롭힘 사건 조사자의 적극적 판단을 통해 괴롭힘이 예방될 것이라는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 괴롭힘 유형 중 폭행이나 노골적 왕따 같은 외부에 표출된 사례는 그 판단이 쉽다. 그러나 지난해 접수된 신고건수 중 가장 많은 유형을 차지한 폭언(32.8%)은 제3자가 판단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본부장인 상사가 부하직원과 면담에서 한 이런 발언은 괴롭힘인지 생각해보자. "지금 갈등을 빚는 부장에게 충성을 다하도록 하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곧바로 인사조치하겠다." 상사가 부하직원과 일상적인 업무와 관련해 보고와 논의, 승인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오가는 대화는 모욕이나 협박 등의 괴롭힘 행위로 인정될 여지가 적다. 그러나 단 한 번의 면담이라 할지라도 인사권을 가진 상사의 직장 내 지위를 고려하면 인사조치 운운한 상사의 대화는 부하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고 결국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인정될 여지도 있는 것이다.

노동법책에 소개된 이런 사례는 어떤가. 신고인이 직장 내 괴롭힘 행위라고 주장한 행위가 "팀장이 자신이 작성한 보고서에 빨간펜으로 줄을 긋고 엑스(X)표를 했으며 다른 직원이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해서 다시 작성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행위 자체만으론 괴롭힘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결국 업무상 대화 내지 지시는 그 자체로 판단되기보다 당사자들의 지위, 대화와 지시의 내용과 당시 정황에 따라 괴롭힘 성립 여부가 달라질 것이다. 작업장에서 갈등을 줄이기 위해 현 시점에선 섣부른 법률개정보다 무엇이 괴롭힘인지에 대한 교육과 계몽이 필요하다. 고용노동부는 2019년 괴롭힘 관련 매뉴얼을 통해 그 사례를 적시했지만 그 내용이 추상적이어서 실제 사건을 판단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지난 5년간 축적된 법원의 판결과 고용노동부의 처분사례가 충분히 누적됐으니 이를 활용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양지훈 변호사)

양지훈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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