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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이슈 검찰과 법무부

재판 거래 의혹 빼고… 검찰, 3년 만에 권순일 ‘변죽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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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법 위반 혐의만 적용

조선일보

권순일 전 대법관.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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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대장동 50억 클럽’ 중 한 명인 권순일 전 대법관이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7일 불구속 기소됐다. 2021년 9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2년 11개월 만이다. 그러나 의혹의 핵심인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관련된 ‘재판 거래’ 의혹은 포함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흉내만 낸 기소”라는 말이 나왔다.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직후인 2021년 1~8월 변호사 등록을 하지 않은 채 대장동 개발 비리의 몸통인 김만배씨가 대주주로 있는 화천대유 고문을 맡아 민사소송 상고심 등 변호사 업무를 하고 고문료로 총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의혹이 불거졌을 당시 고문료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밝혔지만, 검찰에선 변호사 업무를 보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검찰은 이날 권 전 대법관이 김만배씨 부탁을 받고 2020년 이재명 전 대표의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의 무죄 판결을 주도했다는 ‘재판 거래’ 의혹에 대해 “국민적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 초기 다 드러난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밖에 기소하지 못한 셈이다. 한 법조인은 “3년이나 수사했으면, 재판 거래 의혹도 기소든, 불기소든 빨리 결론 내야 한다”고 했다.

‘50억 클럽’ 의혹은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진 2021년 9월 등장한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에서 시작됐다. 대장동 개발 사업으로 큰돈을 번 김만배씨가 동업자들과 대화하면서, 사업을 도와준 고위 법조인과 언론인 6명에게 50억원씩을 줘야 한다고 말하는 내용이 녹취록에 담긴 것이다.

이즈음 권 전 대법관이 2020년 7월 이재명 전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에서 무죄 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주도한 사실이 알려졌고, 판결을 전후해 김만배씨가 권 전 대법관의 대법원 사무실을 8차례 찾아간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판 거래’ 의혹은 짙어졌다.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 전 대표는 이 대법원 판결로 경기지사직을 유지했고, 이후 대선에도 출마할 수 있었다.

당시 판결의 바탕이 된 무죄 취지 재판연구관 보고서는 대법원 내부망에 등록되지도 않았다. 검찰은 이 보고서를 확보하려고 2021년 두 차례 법원에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모두 기각당했다. 검찰은 같은 해 10~11월 권 전 대법관을 두 차례 비공개로 불러 조사했지만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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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하경


검찰은 올 초 권 전 대법관에 대해 다시 압수 수색 영장을 청구했으나 또 기각됐다. 결국 재판 거래 의혹과 연결된 뇌물 수수 혐의를 빼고, 변호사법 위반 혐의만으로 영장을 받아 지난 3월 겨우 압수 수색을 집행했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권 전 대법관을 비공개 소환 조사했고, 1주일 만인 이날 변호사법 위반 혐의만 적용해 기소한 것이다.

‘50억 클럽’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은 화천대유에 근무한 아들이 퇴직금 명목으로 김만배씨에게 50억원(세후 25억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22년 2월 가장 먼저 기소됐다. 하지만 1심이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부실 수사’ 논란이 일었다.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검찰은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한 수사도 질질 끌다가 작년 8월에서야 기소했다. 그는 김만배씨 등 대장동 개발 업자들에게 19억원을 받고, 200억원 상당의 건물과 땅을 약속받은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나머지 김수남 전 검찰총장과 최재경 전 민정수석은 수사 초기 서면 조사만 받았을 뿐, 별다른 수사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인은 “검찰이 의혹을 수사할 수는 있지만, 이렇게 결론을 안 내고 질질 끌기 때문에 늘 ‘정치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50억 클럽’ 수사 대상이던 홍선근 머니투데이 회장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홍 회장은 2020년 1월 김만배씨에게 배우자와 아들 명의로 50억원을 빌린 뒤 약정 이자 1454만원을 갚지 않은 혐의다. 검찰은 또 김씨로부터 유리한 보도 등 청탁을 받고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 등)로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 전직 간부 2명을 함께 불구속 기소했다.

[유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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