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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0 (화)

[지평선] 25만원 지원금 vs 출국 부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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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일보

해외 여행을 위해 인천공항에서 수속을 밟고 있는 시민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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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까지 지낸 한 고위공무원이 ‘1997년 여름 유럽 출장 때 외환위기를 직감했다’고 말했다. 유럽 명품매장마다 한국 관광객의 묻지마 쇼핑이 성행했다. 반짝 원화 강세로 호황을 누리는 듯했으나, 이후 한국 경제는 극도의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2002년 카드대란 때도 그랬다. 신용카드 남발 때문에 가능했던 빚더미 소비로 체감경기가 순간 좋았으나, 이후 서민 경기는 급락했다.

□ 역대 온 국민이 만족할 정도로 체감경기가 좋았던 적은 외환위기와 카드대란 직전이 유일했다. 체감경기는 나빴지만, 실제 지표는 양호했던 적도 많다. 지금도 그렇다. 글로벌 증시 폭락까지 겹치면서 대다수 시민은 느끼지 못하지만, 거시 지표는 개선 중이다. 성장률 전망치가 2.6%로 상향 조정됐고, 수출도 개선되고 있다. 올 상반기(3,348억 달러)에 일본(3,383억 달러)을 거의 따라 잡으면서, 사상 최초로 일본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 지표와 체감경기 괴리의 원인은 소비 유출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외국인 노동자와 관광객을 통해 해외로 빠져 나가는 규모가 급증세다. 국내에는 250만 명 이상 외국인이 체류 중인데, 한국 사람이 외면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며 연간 5조 원가량의 임금을 받고 있다. 이들은 1960~80년대 독일과 중동에서 한국 근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번 돈 대부분을 본국에 보낸다. 한국 근로자였다면 전통시장 곳곳에서 사용됐을 돈이 내수 시스템에서 빠져나가고 있다.

□ 여행수지는 더 심각하다. 올 1분기에만 38억9,000만 달러(약 5조 원)가 순유출됐다고 한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20조 원가량이 해외에서 소비된다는 얘기다. 국내 바가지 요금 등 여행객마다 해외로 떠나는 정당한 이유가 있지만, 체감경기 악화 중 20조 원은 자초한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최근의 출국부담금 인하 조치를 되돌리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상당액의 부담금을 추가로 지워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다. 전 국민 25만 원 지원금보다도 내수 활성화 기여와 소득재분배 측면에서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는데, 마침 튀르키예 정부가 출국세를 20배 인상하려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조철환 오피니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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