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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

[36.5˚C] 정치인의 가족을 건드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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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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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0대 대통령 취임식. 단상을 사이에 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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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를 확정짓는 미국 양당의 전당대회에서 유별난 가족 사랑을 목격했다. 지난달 20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배우자 미셸 오바마 소개를 받고 민주당 전당대회 무대에 올랐다. 포옹하고 입 맞추고 손 잡고, 애틋한 눈빛 발사. '저 두 사람, 같이 사는 부부 아니었나...?' 부부 동반으로 초대 받은 사내 행사에서 아내와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는 한 기업 중년 임원의 무미한 얼굴이 스쳤다.

"엄마 몰래 사탕 쥐어준 할아버지"로 자신을 소개한 맏손녀에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장 해제된 순간도 기억에 또렷하다. 미국 언론(액시오스)마저 "그런 (흐뭇한)표정 처음 봤다"며 놀란 눈치다. 시험관 시술로 어렵게 얻은 딸과 학습 장애를 겪는다는 아들, 아내를 호명하며 "너희가 내 세상의 전부"라던 민주당 부통령 후보 팀 월즈의 표정에선 정치라는 정글에서 새끼를 보호하는 맹수의 눈빛을 읽어버렸다. 우리에겐 참 낯선 수사로 발화되는 이 유별난 가족 사랑을 확인하고 나니, '패밀리'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는 이 나라 정치인들에겐 가족애(愛)도 정치의 일부란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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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맨 왼쪽) 전 대통령이 지난 7월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손자, 손녀들과 포옹을 하고 있다. 밀워키=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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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끔찍한 가족 사랑, 우리도 어디에서 밀리지 않는다. 이 사랑이란 게 가족이 사고를 칠 때 유독 티 나게 새어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 'K-정치인'의 가족 사랑은 주로 이런 식이었다. 가족이 사고를 친다. 일파만파. 몰랐다고 발뺌. 감싼다. 그리고 뭉갠다. 그러다 "가족의 허물은 곧 나의 허물이요"하며 사과. 아무리 식구라도 과오를 감싸는 건 쉽지 않고,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하니까. 가족을 버릴 순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눈물겨운 가족애는 제발 집 안에서만.

영부인의 명품 가방 수수 의혹에 대통령 입에서 "사과드린다"란 말이 나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을 때도 가족 사랑을 느꼈다. 뭉개다가 떠밀렸다는 표현 말고는 갖다 붙일 말이 없던 사과. 전남편의 특혜 채용 의혹에 대통령을 지낸 아버지가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로 적시되고 자신은 압수수색을 당한 딸은 최근 "가족은 건드리는 거 아닌데" 같은 뜬금없는 과격함으로 매를 벌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막 하자는 것일까). 사과는 둘째치고 소명 같은 변명이라도 했더라면.

고위 공직자 가족한테까지 수시로 검증 잣대를 들이대고, 깃털 같은 의혹도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이들도 공직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족 관련 정보는 공직자를 이해하는 데 가장 기초적 자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유권자는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족이 연루된 각종 의혹과 비리의 수습을 정작 국민이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의혹부터 수사, 기소, 판결까지 세금 없이 되는 일이 없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한 정치적 갈등, 국민 분열처럼 돈으로 매길 수조차 없는 사회적 비용,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따지면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모자랄 지경이다.

제 가족과 관련해 제기된 문제는 한 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고 진실을 밝히되, 잘못이 드러나면 저 역시 그에 합당한 책임을 지겠다고 '먼저 치고 나오는' 정치인은 넷플릭스에서나 볼 법한 드라마인가. 비리로 확인되는 저들의 가족 사랑을 그만 좀 확인하고 싶다.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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