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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증시와 세계경제

'아시아 전쟁' 난 것도 아닌데…韓∙日∙대만 증시, 최악 대폭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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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블랙먼데이 쇼크



중앙일보

신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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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직장인 하모씨는 “8월이 시작하자마자 ‘검은 금요일(2일)’에 이어 ‘검은 월요일(5일)’까지 투자금 수천만원이 이틀 새 날아갔다”며 “한반도에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허무하게 손실을 보니 역시 국장(한국 주식시장)에는 투자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국내 주식시장을 강타했다. 5일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8.77% 하락한 2441.55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치 하락률로는 2001년 9월 12일(-12.02%) 이후 5번째, 지수 낙폭(234.64포인트)으로는 사상 최고치다. 그야말로 국내 증시는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 오전 중 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오후엔 양쪽 시장에 모두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코스피 시장의 서킷 브레이커는 1998년 도입 이후 6번째, 코스닥은 2001년 10월 이후 역대 10번째다. 대장주인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무려 10.3% 하락하며 7만1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시가총액은 약 192조원, 코스닥 시가총액은 약 43조원이 날아갔다. 하루 만에 국내 증시에서 235조원이 증발한 셈이다.

국내뿐 아니라 아시아 증시도 ‘초토화’됐다. 일본 닛케이225와 대만의 가권(자취안)지수는 각각 12.4%, 8.35%씩 하락했다. 닛케이지수의 낙폭은 1987년 10월 20일 이른바 ‘블랙 먼데이’ 때의 낙폭(3836)을 뛰어넘는 사상 최대다. 대만 증시도 역대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대만 가권지수를 처음 산출한 1967년 이후 가장 큰 낙폭이다.

중앙일보

김영옥 기자



전문가들은 미국발 경기 침체 공포와 빅테크발 인공지능(AI) 거품론이 시장을 연타하면서 ‘패닉 셀링(투매)’이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 공격 가능성도 위험자산 회피 심리에 불을 붙였다.

직접적인 도화선이 된 건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고용 보고서다. 7월 미국의 실업률은 4.3%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이는 2021년 10월(4.6%) 이후 2년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7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1만4000명 느는 데 그쳐 시장 예상치(17만6000명)를 크게 밑돌았다.

특히 미국에서 경기 침체의 지표로 쓰이는 ‘샴의 법칙(Sahm Rule)’에 따라 공포감이 더욱 확산했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이코노미스트였던 클라우디아 샴 박사가 고안한 법칙으로,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평균치가 지난 1년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 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는 이론이다.



AI거품론·중동위기 연타 ‘패닉 매도’… 삼성전자도 10% 급락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에 따르면 현재 이 수치는 0.53%포인트에 달한다.

강현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미국은 민간소비가 국가 경제의 70%를 차지하고 민간소비의 60%를 임금이 지탱하고 있어 ‘고용→임금소득→소비→고용’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피드백 작용에 의해 고용시장 악화가 가속한다”며 “이를 통해 볼 때 미국 경기는 침체의 초입에 있고 최근 나타난 주식시장의 하락은 이제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고 전망했다.

중앙일보

여기에 엔비디아가 쏘아 올린 ‘AI 거품론’도 투심을 급속하게 냉각시킨 요소로 꼽힌다. 4일 로이터는 “엔비디아가 설계 결함으로 인해 차세대 AI칩 신제품(B200) 출시를 3개월 이상 지연시킬 수 있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제품에 들어갈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공급할 예정인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이런 우려로 인해 지난 2일 주요 기술주로 구성된 나스닥 지수는 2.43%,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5.18% 하락했다. 이 여파로 5일 삼성전자는 10.3%, SK하이닉스는 9.87% 하락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엔비디아 신제품 사이클에 대한 불신이 생기자 그동안 경기 흐름과 무관하게 주가가 올랐던 반도체 공급망 기업의 주가가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체 지수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2분기 실적 발표(28일 예정)에서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전까진 반도체 및 한국 증시에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검은 금요일’과 ‘검은 월요일’을 잇따라 겪고 난 시장은 향후 전망도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삼성증권은 이날 단기(3개월) 주식 비중에 대한 의견을 ‘확대’에서 ‘중립’으로 변경하고, 현금 비중을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글로벌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의 경기 모멘텀이 둔화할 것이라는 우려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증권가에선 현재 국내 기업의 실적과 향후 Fed의 대응 등을 감안할 때 현재의 낙폭은 과도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현재 코스피 지수는 선행 PER(주가수익비율)이 초저평가 권역에 진입했다”고 전망했다.

이날 국내 증시가 이례적인 낙폭을 기록하자 대통령실도 긴급 점검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갔지만, 증시 관련 긴급 보고를 받는 등 직접 현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6일 오전 ‘F4(Finance 4)’라고 불리는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회의에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참석한다. 회의에선 미국 등 주요국 시장 상황을 분석하고, 국내 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 방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할 계획이다.



김경진 기자, 세종=나상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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