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 미테구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 사진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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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철거 위기를 맞은 가운데, 베를린 시장이 일본 정부와의 갈등을 우려해 시민단체의 ‘위안부’ 교육 프로그램 기금 지원도 중단하기 위해 압박을 가했다는 독일 현지 보도가 나왔다.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지원이 끊겼고, 이 과정에서 일본 대사관 또한 입김을 넣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독일 공영방송인 베를린-브란덴부르크 방송(RBB)은 카이 베그너 베를린 시장이 재독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가 신청한 8만7000유로(한화 약 1억3천만원) 규모의 ‘위안부’ 교육 프로그램 지원을 불허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 방송은 한 소식통을 인용해, 베그너 시장이 시의 프로그램 지원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자문위원회의 한 위원에게 연락해 일본 정부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코리아협의회의 신청을 거절하도록 요구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이런 내용이 익명을 요구한 “여러 소식통”에 의해 확인됐다고도 덧붙였다.
코리아협의회는 베를린시가 지원하는 문화 교육을 위한 기금 신청을 했으나 지난 4월 탈락했다. 기금은 예술가와 교육자로 이뤄진 심사단 평가를 거쳐 이를 토대로 11명으로 이뤄진 자문위원회가 결정해 지급하는 구조다. 자문위원회는 베를린시 상원 등 시 정부 내부 위원과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다. 평가 과정에서 심사단은 코리아협의회 프로젝트 지원을 추천했다고 한다.
그러나 베그너 시장이 자문위원회에 연락한 뒤 이뤄진 표결에서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는 지원 대상에 들지 못하게 됐다. 베를린시 상원은 이에 대한 아르비비(RBB) 질의에 “프로젝트 (지원 여부) 결정은 공동으로, 다수결에 의해 이뤄진다. 위원회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결정 내용에 관한 것도 밝힐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한겨레가 확인한 문건을 보면, 베를린시는 지난달 26일, 마르셀 호프 사회민주당(SPD) 의원이 이번 프로젝트가 거절된 이유를 묻는 질문에 “(프로젝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두고 논의가 오갔다”며 “베를린은 여성에 대한 성폭력 이슈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이 사안은 신중하게 다뤄졌다”고 밝혔다.
코리아협의회가 공모에서 떨어진 뒤인 지난 5월 베그너 시장은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을 만난 자리에서 “변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소녀상 철거를 시사하는 발언을 해 소녀상 철거 논의에 쐐기를 박기도 했다.
자문위원회의 결정에 일본 대사관도 영향을 미치려 한 정황 또한 보도로 드러났다. 일본 대사관이 베를린 중심부인 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5성급 호텔에 자문위원 몇몇을 불러 식사를 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을 전한 소식통은 당시 대사관의 문화 분야 담당관이 처음엔 자문위원들의 활동에 관심을 보이다가, 대화 주제를 바꿔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에 반대표를 던지도록 설득했다고 했다.
이 저녁 식사에 초대된 위원들은 실제 표결에선 코리아협의회 지원을 찬성했지만, 베를린 시정부와 관계된 위원들의 반대표 때문에 코리아협의회 지원은 무산됐다고 아르비비는 덧붙였다.
일본 대사관은 해당 만찬 초청에 대한 공식 답변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리아협의회의) 프로젝트는 소녀상을 한쪽의 이야기만 전하는 용도로 이용한다”며 “아시아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젊은 독일인들에게 반일 감정을 심어주고 있다”고 아르비비에 말했다.
코리아협의회가 베를린시에 예산 지원을 신청한 프로그램은 “내 옆에 앉아”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로, 이미 지난 2021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베를린시의 지원금을 받아 진행해 온 프로젝트 연장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청소년들에게 성폭력 피해 여성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냈던 ‘위안부’ 피해 역사를 교육하는 데서 시작한다. 코리아협의회가 미테구에 설치한 소녀상을 견학하고, 예술가와 협업해 전시 성폭력 문제와 관련한 창작물을 만드는 활동을 지원한다. 시민 후원을 통해 주로 운영되는 코리아협의회는 재정난 해소 및 역사 교육을 위해 베를린시 지원을 받아 왔고, 이번엔 6개구 8개 청소년 단체와 함께 활동할 계획도 갖고 있었다.
해당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한겨레에 “일본 정부의 소녀상 (철거) 압력은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교육 사업까지 방해하려고 하는 줄은 몰랐다”며 “독일 정치인들 또한 일본의 (요구에) 동조자가 된 셈이라 그 점이 더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베를린/장예지 특파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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