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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우주는 생각하는 거대한 뇌일까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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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독일 이론물리학자 자비네 호센펠더.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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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 답변
자비네 호센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l 해나무 l 2만원



물리학은 20세기에 들어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양자물리학자들의 양자이론으로 거대한 변혁을 거쳤다. 우주는 과거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훨씬 더 역동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우주를 놓고 물리학자들은 무수한 가설로 그 시작과 끝을 설명하느라 각축을 벌인다. 이런 가설 가운데 무엇이 타당하고 무엇이 타당하지 않은가? 무엇이 과학적이고 무엇이 비과학적인가? 물리학자들의 이론적 설명과 종교인들의 신앙적 믿음은 과연 얼마나 다른가?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자비네 호센펠더(48)가 쓴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2022)는 지난 100여년의 물리학 발전이 낳은 수많은 물음을 아홉 가지로 간추려 솔직하고 과감하게 답한다.



이 책에는 과학자의 생각과 종교인의 믿음을 비교하는 대목이 많다. 그래서 호센펠더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과학과 종교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먼저 명확히 밝힌다. “나는 (신이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하는) 불가지론자이며 비종교인이다. 그러나 종교적 신념에 반대하지 않는다. 과학은 한계가 있고, 인류는 언제나 그 한계 너머의 의미를 갈구해왔다.” 자신은 종교인이 아니지만, 종교인들의 의미 탐구가 ‘과학적 사실’을 존중하기만 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호센펠더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주장이 과학적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느냐 없느냐, 혹은 과학적 지식과 양립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가 6000년 전에 탄생했다는 일부 기독교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과학자들은 화석과 암석을 비롯한 여러 증거에 입각해 지구가 45억년 전에 형성됐다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창조론자들은 오래된 화석의 기록들도 모두 6000년 전 지구가 창조된 순간에 함께 창조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조론자들의 주장을 공정하게 보면, “이 이야기가 틀렸다고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이 세상을 6000년 전에 창조해놓았다고 해도 논리적으로 모순될 것은 없다는 얘기다. 문제는 창조론 주장이 ‘과학적으로 나쁜 설명’이라는 데 있다. 좋은 과학이론은 최소한의 전제로부터 수많은 관측 결과를 계산하고 설명해준다. 양자 이론이 위력을 발휘하는 것도 바로 그런 설명력 덕이다. 반면에 창조론자들의 주장이 성립하려면 “초기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데이터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래서 이 가설로는 아무것도 계산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론 가설은 “비과학적”이다. 창조론을 주장하기보다는 수십억년 전에 지구가 생겨나 진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한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이론은 어떨까? 현대 우주론의 표준 모형은 우주가 138억년 전에 태어나 장구한 세월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이 우주의 탄생과 진화를 두고 급팽창 이론, 바운스 이론을 비롯해 수많은 우주론적 가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공정하게 말하면 이런 우주론 이론들은 창조론과 근본적으로 다를 것 없는 가설일 뿐이다. “초기 우주에 관한 모든 가설은 순수한 추정이다. 이런 가설들은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현대판 창조 설화다.” 이 가설들을 검증할 관측자료가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추측의 범위를 넘어서지 못한다. 우주의 종말에 관한 가설도 마찬가지다. 우주 물질이 끝없이 퍼져 나가다 사라져버릴지, 아니면 어느 순간에 엔트로피 법칙의 반대 현상이 일어나 다시 수축을 시작해 원점으로 돌아간 뒤 팽창하기를 반복할지 알 수가 없다. 그런 가설들은 물리학 지식으로 검증할 수 없다. 그러므로 틀렸다고 단언할 수 없다. 또 이런 가설들은 물리학 지식과 충돌하지 않는다. 단순한 창조 신화와 달리 과학과 양립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중문화 영역에서 인기가 많은 ‘다세계 해석’은 어떨까? 다세계 해석은 파동으로 존재하던 양자가 입자로 확정될 때마다 우주가 갈라져 결국 무수히 많은 우주, 곧 평행우주가 생겨난다는 이론이다. 이런 양자 현상은 우리 뇌에서도 일어난다.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것은 뇌의 양자 수준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다세계 해석이 옳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순간마다 우주가 끝없이 생겨날 것이다. 호센펠더는 이런 다세계 해석도 검증할 길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믿음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한다. 동시에 이런 가설은 현재까지 알려진 지식과 충돌하지 않기 때문에 “과학과 양립할 수 있는 신념 체계”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주는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도 답한다. 이 물음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2020년 이탈리아 천체물리학자 프랑코 바차와 신경과학자 알베르토 펠레티의 연구 결과를 보면 황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우리 우주는 2000억개의 은하로 이루어져 있고, 은하단은 ‘은하 필라멘트’라고 하는 끈 모양의 은하로 이어져 있는데, 이 전체 모습이 뉴런으로 연결된 인간 뇌와 닮았다. 더구나 뇌의 4분의 3이 물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주의 4분의 3도 암흑에너지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우주는 거대한 뇌고 그 안에 든 우리 은하는 하나의 뉴런일 수도 있지 않을까?” 호센펠더는 이 아이디어가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른다고 말한다. 요컨대 우주는 너무 커서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뇌의 신호는 초당 100미터를 이동한다. 반면에 우주 전체 크기는 900억광년에 이르는데, 빛의 속도로 생각의 신호가 움직인다고 해도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가는 데 900억년이 걸린다. 이렇게 커서는 ‘우주-뇌’는 생각이란 걸 할 수 없다. 그러나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양자의 짝이 동시에 작동하는 ‘양자 얽힘’ 현상이 우주 전체에 퍼져 있다면, 우주는 진짜로 생각할 수도 있다고 호센펠더는 말한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우주가 지성을 지녔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사실과 양립할 수 있다.”



결론에서 호센펠더는 “창조주가 존재할 가능성은 없다”는 스티븐 호킹의 단언을 “자신의 지식에 한계가 있음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과학은 자기 과신을 버리고 겸손을 배워야 한다. “과학 자체로는 한계가 있고, 인간은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다른 방식의 설명을 갈구하기 때문이다.” 과학과 종교는 앞으로도 동행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고명섭 선임기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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