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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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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개봉한 영화가 여전히 박스오피스에? 이변 연출한 ‘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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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영화 <소풍>는 80대 배우들이 연기하는 80대의 이야기다. 키오스크 사용 같은 일상의 어려움부터 재산을 둘러싼 부모 자식 간 갈등, 존엄사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의 관심사를 폭넓게 다룬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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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상영이 끝난지 3개월이 지나도록 박스오피스에 오르내리며 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작은 영화가 있다. 지난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소풍> 이야기다. 노년의 삶과 고민을 깊이 있게 다룬 영화에 노년층 단체 관객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쟁쟁한 신작을 제치는 이변도 연출되고 있다.

1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 독립·예술영화 박스오피스에서 <소풍>은 15위(117명·31일 기준)를 차지했다. 40년 만에 개봉해 화제가 된 일본 영화 <태풍클럽>(13위), 르네상스 미술을 다룬 다큐멘터리 <피렌체와 우피치 미술관>(14위)에 이은 것이다.

<소풍>은 80대 배우가 연기하는 80대 이야기다. 절친이자 사돈 지간인 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이 고향 남해에서 은심을 짝사랑했던 태호(박근형)와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키오스크 사용 같은 일상의 어려움부터 재산을 둘러싼 부모 자식 간 갈등, 존엄사에 이르기까지 노년층의 관심사를 폭넓게 다룬다. 삶과 죽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따뜻하면서 유쾌하게 풀어낸다.

<소풍>은 공식 상영이 종료된 지난 4월 말 이후 꾸준히 박스오피스에 이름을 올려왔다. 노인복지센터, 돌봄 기관의 단체 관람이 이어진 덕분이다. KOBIS를 보면 적게는 0~50명에서 많게는 300~400명의 관객이 꾸준히 든다. 단체 관람이 많은 평일 7~8위권에 진입했다가 주말에 30~40위권으로 떨어지는 패턴을 수 개월째 보이고 있다. 때론 할리우드 스타의 출연작을 제친다. 지난달 24일에는 7위로 크리스틴 스튜어트 주연의 <러브 라이즈 블리딩>(9위)에 앞섰다.

개봉 15일 만에 손익분기점(27만명)을 넘기고 20일째 관객 30만명을 돌파한 <소풍>의 현재 성적은 35만5000명이다. 공식 상영 종료 당시 기록 34만명에서 1만5000명이 늘었다. 요즘 독립영화들이 ‘관객 1만명’을 성공 기준으로 삼는 현실에서 거둔 놀라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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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심(나문희)과 금순(김영옥)은 어린 시절 친구이자 사돈 지간이다. 키오스크 사용에 서툰 두 사람은 패스트푸드점에 갔다가 햄버거를 수십 개 사고 만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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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풍>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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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들 틈에 낀 이 작은 영화가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제작사 로케트필름의 김영진 대표는 “어르신들 사이에서 ‘꼭 봐야 하는 영화’라고 입소문이 났다”며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존엄사처럼 나이가 들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를 당사자들이 유쾌한 톤으로 꺼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자신들을 위한 콘텐츠가 없다고 느낀 노년층의 갈증을 <소풍>이 해소했다고 본다.

“노년층을 위한 콘텐츠가 별로 없습니다. 노인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있었지만 판타지 장르거나 현실과 동떨어진 사랑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하지만 <소풍>은 진짜 자신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령의 배우가 주인공이거나 노년의 삶을 조명하는 영화는 제작이 어려운 장르다. ‘실버 영화는 흥행이 안된다’는 인식 탓에 투자 유치부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상한 그녀>(2014·866만명), <아이 캔 스피크>(2017·328만명)처럼 좋은 성적을 거둔 사례가 있지만 모두 고령 배우(나문희)와 청춘 스타(심은경·이제훈)를 함께 앞세운 ‘투톱 체제’였다. “실버 영화라도 젊은 배우가 같이 들어가야 관객에게 소구할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주연 배우 전원이 80대인 <소풍> 역시 세상에 나오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나리오나 출연진 모두 좋게 평가하면서도 선뜻 나서는 투자자가 없었다.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 “80대 이야기를 당사자들이 직접 해야 영화의 특별한 매력을 살릴 수 있다”고 봤던 김용균 감독은 우직하게 버텼다. 제작비 문제로 수 년간 표류하던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 제작지원금에 개인 투자까지 ‘박박’ 긁어모은 끝에 완성됐다. 제작에 들어간 돈은 약 12억원. 한국 상업 영화 편당 평균 제작비(124억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소풍>이 보여준 생명력은 실버 영화의 가능성을 엿본 사례가 됐다. 김 대표가 이끄는 로케트필름에도 관련 영화 제작 의뢰가 부쩍 늘었다. “<소풍>을 계기로 실버 영화 시장의 존재를 업계가 확인한 것 같아요. 그동안 투자자가 없어 제작하지 못했던 실버 영화들도 조금씩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투자를 결정하는 분들의 시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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