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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9 (월)

전공의 공백에 PA 5천명 늘었지만…이틀 교육 뒤 수술방 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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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월27일 오전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수술실 인근에서 의료진이 인큐베이터와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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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5개월 넘은 의료 공백 해결은 물론 의료전달체계의 정상화를 위해 전문의 중심 병원을 앞세운다. 하지만 여전히 구체안은 나오지 않은 채 땜질식 정책만 이어가고 있다. 이에 정부 대책의 현실과 대안을 두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병원에 들어와서 이틀 교육받고 바로 수술실에서 일했어요. 일대일로 배우지도 않았어요. 이틀 교육만으론 업무가 너무 버거웠어요.”



ㄱ(25)씨는 부산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신규 간호사다. 지난해 간호대를 졸업하고, 지난 4월 병원으로부터 “외과에서 일하게 됐다”고 배치를 통보받았다. 그러곤 이틀 교육을 받고 사흘째부터 외과 수술 준비와 보조에 투입됐다. 짧은 교육은 실제 업무와는 거리가 있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석달 넘게 수술실에서 일했지만 여전히 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교수님이 만족 못 하면 ‘손 바꿔라’라고 하세요. 그럼 지켜보던 선배 간호사가 밖에서 수술복을 입고 들어와 마무리하죠.”



ㄱ씨처럼 의사 의료 행위 일부를 맡는 간호사는 ‘피에이’(PA: Physician Assistant) 또는 ‘진료지원인력’이라고 불린다. 이들의 의료 행위는 의료법상 불법인 경우가 많았는데, 지난 2월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한 전공의(인턴·레지던트)들이 집단으로 병원을 떠나면서 처지가 달라졌다. 의료 공백을 메우려고 병원들은 진료지원인력을 ‘전담간호사’란 이름으로 바꿔 빠르게 늘리고 있다. 여기에 정부는 상급종합병원을 전공의 의존도를 낮춘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바꿔가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31일 보건복지부 진료지원 간호사 현황 자료를 보면, 5월 말 시범사업에 참여한 155개 의료기관 전담간호사는 1만3535명이다. 복지부가 전담간호사를 제도화한 직후인 3월 말 1만165명보다 3370명(33.2%) 늘었다. 전공의 의존도가 높았던 대형 병원에서 증가세가 뚜렷했다. 47개 상급종합병원 전담간호사 수는 3월 말과 5월 말 사이 6007명에서 8310명으로 2303명(38.3%) 증가했다. 같은 기간 4158명에서 5225명으로 1067명(25.7%) 늘어난 종합병원보다 증가 폭이 컸다. 복지부가 취합 중인 6월 말 전담간호사 수는 1만5천명대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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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공백 완화는 물론 정부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정책으로 전담간호사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전국 211개 수련병원에 남은 전공의는 전체의 8.7%에 불과하다. 1만3756명 가운데 1193명(30일 기준)만 일하는 중이다. 하반기 전공의 7645명을 모집하겠다지만, 지원자는 거의 없었다. 서울의 한 상급종합병원 관계자는 “하반기 전공의 모집에 응시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전담간호사를 추가로 확보해 전공의 빈자리를 메우는 게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전담간호사 업무는 전공의 업무 일부와 겹친다. 정부는 100여개 진료지원 행위 가운데 간호사 직군별로 할 수 있는 행위를 병원장과 간호 부서장이 협의해 정하도록 했다. 일반 간호사가 해선 안 되지만, 꼭 3년 이상 근무 경험과 석사 이상 학위를 갖춘 전문간호사가 필요하진 않은 업무를 전담간호사에게 맡겼다. 진단서 초안 작성부터 각종 처치나 수술 보조까지 그동안 진료지원인력이 전공의 대신 해왔던 일이다.



5개월 넘게 시범사업 중인 전담간호사 업무를 법적으로 뒷받침할 간호법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현재 국회에는 간호 관련 여야 법률안이 4개 발의됐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지난 22일 이 가운데 3개 법률안을 심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병원들은 ‘3년 이상’인 전담간호사 경력 기준도 완화하자고 한다. 현재 복지부는 시범사업 지침에서 ‘일반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전환할 경우 3년 이상 임상 경력 보유자로 한정하라’고 권고했다. 의무가 아닌 권고인 탓에 유명무실하다. 여기에 이 기준까지 내려가면 병원 쪽에선 채용이 어려운 경력 대신 신규 간호사로 전담간호사를 늘리기 쉬워진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에서 업무 특성에 따라 경력이 낮아도 할 수 있는 업무가 있으니, 이를 구분해달라는 의견을 내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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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현장에선 임상 경험이 적은 간호사를 전담간호사로 투입하는 건 무리라고 우려했다. 전담간호사 업무에 일반적인 간호 업무를 넘어선 행위가 많아서다. 실제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은 올해 임상 전담간호사 24명 가운데 10명을 신규 간호사로 채용했다가, 신규 간호사 절반 이상을 다시 일반 병동으로 옮기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 반복 업무여도 일정 수준 경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칫 환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임상 경력이 1년 미만인 전담간호사는 대한간호협회에서 실습 포함 80시간 교육을 받고 있으며, 복지부는 하반기 예산을 들여 교육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임상 경험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복지부가 시범사업으로 허용한 전담간호사 업무 가운데는 의사가 해도 어려운 시술까지 있다”며 “병원이 신규 간호사를 충분한 교육 없이 현장에 투입해 침습 행위까지 시켜선 안 된다”고 말했다.



경력이 있는 간호사들은 전담간호사 확대 이후 과도한 업무 부담을 걱정한다. 강원 지역의 한 상급종합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한 전담간호사 ㄴ씨는 “외과나 산부인과처럼 수술이나 분만 업무는 하루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 오랜 기간 훈련이 필요하다”며 “이런 외과 계열은 전공의처럼 전담간호사 지원자도 적어 외래부터 수술실 지원에 당직까지 소수 전담간호사가 도맡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담간호사 수만 늘려선, 높은 의료 질을 제공할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장숙랑 중앙대 적십자간호대학 교수(간호학)는 “적어도 진료과마다 어떤 전담간호사가 얼마나 필요할지 계획을 세우고, 이를 복지부가 관리하는 체계라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서영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기획국장은 “지금까지 의사 중에 가장 값싼 노동력이었던 전공의에게 이런저런 업무를 맡겨 수익을 떠받쳐왔던 병원들이 다른 값싼 노동력으로 대체하겠다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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