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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08 (일)

‘서른 네 살, 조국서 몸값하고 죽겠다’···독립운동가 나석주의 편지 첫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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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광복절 기념전…김구에 보낸 편지 등 7점 공개

나석주 의사의 ‘폭탄 의거’ 준비 과정, 어려움 생생하게 드러나

경향신문

국립중앙박물관이 독립운동가 나석주 의사의 친필 편지를 처음 전시하는 광복절 기념전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을 마련했다. 사진은 나석주 의사가 의거의 필요성, 각오 등을 담아 1925년 8월 의열단 동지인 이승춘(이화익)에게 보낸 편지.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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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소지품은 준비되었는데, 비용 몇백원만 수중에 들어오지 못하였습니다. 저는 확실하게 실행할 계획···아는 사람은 이곳의 동지 두 명과 선생님, 이 군 외에는 없습니다···”.

1925년 7월 28일, 항일 독립운동가 나석주(1892~1926)는 망명지인 중국 베이징에서 상하이에 있던 백범 김구에게 편지를 보냈다. 서울로 잠입해 폭탄 의거를 벌이겠다는 계획을 알리는 편지였다. 편지에서 ‘소지품’은 폭탄을, ‘이 군’은 항일 독립운동 비밀결사인 ‘의열단’의 동지인 이승춘(본명 이화익, 1900~1978)을 말한다.

“···서울 시내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하고···왜놈이 정치적으로 설립한 기관이나 사설기관으로, 우리 한민족을 없애고자 교묘하게 행동하는 동양척식주식회사, 조선식산은행, 조선은행 등 모두 네 곳을 목적으로 삼고 길을 떠날 계획이니···”.

1925년 8월 4일, 나석주는 이승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의거 목표물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일제의 정치적·경제적 식민통치의 핵심 기관들을 폭파하겠는 것이다.

“···서른 네 살을 일평생으로 마치길 작정하면서 무슨 생각인들 안해 보았겠소?···본국에 가서 크게 바라지 않고 몸값이나 하고 죽을까 합니다.”

1925년 8월14일, 25일에 나석주가 이승춘에게 보낸 편지들 내용의 일부다. 항일 독립투쟁에 자신의 목숨을 바치겠다는 굳은 의지가 잘 드러난다. 나석주는 가명으로 보낸 편지에서 “죽기를 힘쓰는 와중에 하늘이 도와 나의 몸값보다 더 지나치게 일이 잘되면 나도 유감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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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 의사가 일제의 주요 기관에 대한 폭탄 투척 의거 계획을 백범 김구에게 알리는 편지(1925년 7월 28.일자).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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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석주의 의거는 예상과 달리 계속 미뤄진다. 폭탄과 권총의 확보, 귀국할 배편의 비용 등 필요한 자금이 마련되지 않아서다. 자금 부족에 대한 어려움이 편지 곳곳에 적혀 있다. 자금이 마련된 것은 이듬해인 1926년 4월이다. 심산 김창숙(1879~1962)이 국내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중국으로 돌아왔고, 7월 텐진에서 나석주와 김창숙은 만나 투쟁 계획을 확정했다.

마침내 1926년 12월24일, 나석주는 중국에서 배를 탔고, 일제 경찰들의 눈을 피해 12월27일 인천항으로 들어왔다. 28일 오전 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과 동양척식회사를 사전 답사했다. 오후 2시쯤 나석주는 조선식산은행에 들어가 폭탄을 던졌고, 곧바로 인근 동양척식회사로 가 폭탄을 던지고 수 명을 사살했다. 일제 경찰들이 몰려들었고, 추격을 받게되자 스스로 권총을 자신의 가슴에 쏴 순국했다.

항일 독립운동에 목숨을 바친 나석주 의사의 투쟁 의지, 의거의 준비 과정 등을 친필 편지로 살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제79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26일 상설전시관 1층 대한제국실에서 연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이다.

전시에는 ‘나석주 의사 편지 및 봉투’(국가등록문화유산)가 일반에 처음 선보인다. 김구, 이승춘, 황해관(본명 황익수, 1887~?)에게 1924~1925년 사이 각각 쓴 편지 7점이다. 친필 편지글을 통해 의거의 준비 과정, 마음가짐은 물론 당시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 자금 부족 상황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데니 태극기’(보물)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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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을 향한 꺼지지 않는 불꽃, 나석주’ 전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태극기로 알려진 ‘데니 태극기’(보물)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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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 태극기’는 1886년 고종(재위 1863~1907)의 외교·내무 담당 고문으로 부임했다가 1891년 조선을 떠난 미국인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가 소장했던 유물이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편지를 통해 나석주 의사가 의거를 준비하던 과정,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며 “일제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며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를 기리고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10월 9일까지.

도재기 선임기자 jae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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