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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일본 여성 시니어 잡지 ‘하루메쿠’…어떻게 46만 명 유료 구독자를 모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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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서 구입할 수 없는, 오로지 정기구독자로만 46만 명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시니어 잡지 <하루메쿠>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특별한 비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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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무료 콘텐츠의 범람과 광고 시장의 변화로 국내 잡지 업계가 휘청인 지 오래다. 출판 강국이라 불리던 일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일본 출판과학연구소에 따르면 종이 출판물 매출액은 지난 30년간 40%로 뚝 떨어졌다.

특히 인쇄 잡지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이런 불황에도 라이프 월간지 ‘하루메쿠’는 46만 유료 정기구독자를 보유하며 순항 중이다. 지난해 매출액 2800억원을 달성한 데 이어 올해는 이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레드오션이 분명한 잡지업계에서 하루메쿠는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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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메쿠> 9월호 주요 지면. 스마트폰 사용법부터 체조법, 종이접기, 기모노 리폼, 그리고 죽음을 준비하는 법 ‘종활’에 대한 내용이 실렸다.


■ ‘시니어’ 버리고 ‘봄’을 찾다…하루메쿠 어떻게 1등 잡지가 됐나

하루메쿠의 전신은 1996년 첫선을 보인 잡지 ‘이키이키(いきいき, 생기 있는)’다. 60대 이상의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개성 있는 시니어 잡지를 표방했던 이키이키는 창간 20주년을 맞이한 2016년 ‘하루메쿠(はるめく, 봄기운이 퍼지다)’로 새 단장했다. 타깃 독자를 50대 여성으로 낮추고 여성지 느낌으로 세련미를 더했다. 시니어 잡지 시장 1위의 갑작스러운 변신은 파격이었다. 유료 정기구독자가 3배 늘어나는 기적은 이렇게 시작됐다.

하루메쿠홀딩스 경영기획팀 하라 후코는 “여성들이 언제나 신선하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하루메쿠’라는 네 글자에 담아, 잡지 제호와 회사 이름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계절로 따지면 시니어는 가을이나 겨울로 대변된다. 그러나 하루메쿠의 표지와 지면은 매월 봄처럼 화사한 일러스트로 꾸며진다. 하루메쿠가 제안하는 독자의 삶은 직장 일이나 자녀 양육이라는 과업을 마치고 자신의 ‘봄을 만끽하는’ 청춘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하라 후코가 말한 “여성 독자를 응원하고 싶었다”는 기획 취지가 녹아난다.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와사키 마유미(67)는 ‘종활(終活·죽음을 준비하는 활동) 계획’을 메인 기획 기사로 내세운 하루메쿠의 9월호 신문 광고를 보고 정기구독을 신청했다.

“60세를 넘어서면서 인생은 참 짧다는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어요. 어떻게 하면 잘 나이 들 수 있을까를 고민 중이었는데 ‘종활 계획’이라는 글자가 시선을 사로잡았어요. 매달 내가 궁금해하는 걸 어찌나 족집게처럼 집어내 기사로 만드는지 1년 구독료가 아깝지 않아요. 젊은 세대라고 할 수 없으나 아직 노인이라 자각하지 않는 중년이 미리 참고할 만한 기사가 많거든요.”

하루메쿠는 여느 잡지처럼 서점을 통해 유통하지 않고 오직 정기구독만으로 독자를 만난다. 권당 약 180쪽 분량으로 1년 정기구독료는 7800엔이다. 한국의 월간 종합 여성지에 비하면 다소 저렴한 편이다. 하루메쿠는 2024년 상반기 월평균 46만부를 판매하며 만화 잡지를 제외한 일본 잡지 전체 판매 부수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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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메쿠 편집부 기획 회의 모습. 독자들의 빅데이터를 이용해 생활 밀접 콘텐츠를 만든다. 하루메쿠 편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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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메쿠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시니어 잡지’라는 정체성을 버리고 열 살 젊어진 ‘디톡스’에 있다. ‘노인’이나 ‘고령자’라는 단어를 다소 유연하고 긍정적으로 표현한 ‘시니어’라는 영어 단어조차 이제는 당사자에게 부정적 인식을 주는 낡은 단어가 됐다. 젊음을 강조하기 위해 부르는 ‘영피프티’ 등의 신조어가 냉대받는 우리의 현실과도 닮았다.

그러나 하루메쿠는 나이 듦을 거부하고 젊게 살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이를 더해가면서 쌓인 감성과 경험의 가치를 내세웠다.

일본 저널리스트 요시자키 에이지는 하루메쿠의 성공 비결을 묻는 경향신문의 질문에 “독자를 시니어로 규정짓지 않는 것”이라 짚어내며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인구학 통계에서는 65세 이상을 시니어로 정의하지만, 오늘날 65세는 너무나 젊고 여전히 현역이다. 게이오백화점 신주쿠점의 매출 70%는 50세 이상 고객에게서 나온다. 일반 백화점의 젊은 여성복 브랜드가 있는 2, 3층은 화사하지만 중년 브랜드가 입점한 4층은 급격히 수수해진다. 게이오백화점은 이를 탈피해 4층도 젊은 브랜드 못지않게 비비드 계열 색상으로 꾸민다. 고령자를 위한 제품에 ‘시니어’라는 라벨을 붙이는 것은 ‘너는 늙었다’고 선을 긋는 것과 같다. 하루메쿠는 겉모습은 화사한 여성지면서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알찬 콘텐츠를 담아내 충성 독자를 일궈냈다.”

하루메쿠에는 미디어 매체 관련자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외부 광고 수익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루메쿠는 매체를 통한 ‘미디어 커머스’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잡지 지면으로 소개되는 각종 생활용품은 모기업인 하루메쿠홀딩스가 개발한 제품이다. 의류, 신발부터 헤어 염색약까지 망라한다. 통신 판매는 물론, 자사 제품만 판매하는 오프라인 편집숍 ‘하루메쿠’도 전국 14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하루메쿠 윤기나는 그레이 컬러’ 염색약(사진)은 ‘백발을 염색하지 않는 법’ 특집 기사로부터 파생된 상품이다. 흰머리가 올라올 때마다 꾸준히 흑발로 ‘뿌(리)염(색)’하다가 머리카락이 상해 염색을 중단하면 머리가 얼룩덜룩해지는 중년 여성의 고민을 다루면서 회색(그레이 컬러)으로 물들여 시간이 지나도 자연스러운 헤어 연출법을 소개한 것이다. 하지만 시중에 마땅한 회색 염색약이 없어 하루메쿠가 직접 개발에 나섰고 출시 이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하루메쿠의 승부수는 남다른 콘텐츠와 독자 니즈를 구현한 자사 상품 판매에 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잡지 판매 부수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부록’ 없이도 잘 나가는 이유다. 하루메쿠가 인기 잡지가 되면서 외부업체 광고면으로 배정한 지면도 매월 100% 채워지며 매출에 일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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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메쿠의 성공 비결 뒤에는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한 자체 상품 제작과 성공적인 미디어 커머스 전략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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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여성이 누군가에 의존하지 않도록…‘밝은 해결책’을

하루메쿠 편집부에 잡지 제작에 있어 여느 잡지와 다른 가장 큰 차별점을 꼽아달라고 하니 “철저히 독자의 시선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일본의 여성잡지는 보통 3개월 전부터 취재 아이템을 잡는다. 하루메쿠는 최소 6개월 전부터 메인 기획 기사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편집부 외에 사내 싱크탱크인 ‘생기 있는 삶 연구소’가 있어요. 독자 설문조사나 좌담회를 실시해 독자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무엇을 알고 싶어하는지를 발굴합니다. 메인 기획 기사인 특집은 막연한 상상이 아닌 데이터를 기반으로 그 나이대 여성의 고민에 관해 ‘밝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잘 쓰던 스마트폰의 화면이 어두워졌다. 밝기 조절만 하면 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자식들에게 물어보지만 두어 번 설명을 들어도 알아차리지 못하자 이내 퉁명스러운 답이 날아온다. “엄마, 몇번을 말해. 여기 ‘설정’으로 들어가라고!”

매년 독자들에게 압도적인 호응을 얻는 기사는 ‘스마트폰 특집’이다. 스마트폰 제조사가 해마다 새로운 제품을 출시하는 만큼 이에 발맞춰 제작된다.

“독자들에게 스마트폰의 어떤 점이 어려운지 일주일간 ‘스마트폰 일기’를 써달라고 했어요. 그 내용이 시니어가 아닌 기자들이 예상했던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에 독자 수준에 맞춰 특집을 만들었어요. 기본적인 조작법은 깨알같이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 설명하고, ‘설정’ ‘설치’ ‘푸시 알림’ 등 독자에게 낯선 전문 용어는 스마트폰 용어 사전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독자의 의견을 참고해 보안 유지법, 사진 촬영법, 메신저인 라인(LINE) 사용법 등도 소개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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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메쿠 편집부에는 매월 편집부에는 약 2000장의 독자 엽서가 도착한다. 콘텐츠 제작에 매우 유용한 정보들이다. 하루메쿠 편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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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편집부에 도착하는 약 2000장의 독자 엽서는 잡지의 목차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편집부는 ‘잡지에 대한 의견을 써주세요’가 아닌, ‘하루메쿠에 짧은 편지를 써주세요’라고 요청한다. 그 덕분에 ‘정원에 꽃이 피었다’든지 ‘손자가 초등학생이 되었다’ 같은 독자의 일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편집부 기자들은 이를 통해 ‘독자 페르소나’를 그려낸다.

하루메쿠를 1등 잡지로 이끈 일등 공신은 야마오카 아사코 편집장이다. 13년간 생활실용잡지와 인테리어잡지 등 7개 잡지 편집장을 역임한 그는 하루메쿠를 시니어 잡지에서 여성 잡지로 재편해 5년 만에 구독자 수를 3배 늘렸다. 하루메쿠의 편집부는 야마오카 편집장을 주축으로 13명의 기자로 이뤄져 있다. 외주 제작 콘텐츠는 최소화하고, 대부분 편집부에서 조사, 취재, 집필을 도맡아 진행하고 있다.

야마오카 편집장은 “독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태도가 하루메쿠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편집부는 광범위한 온라인 설문 조사와 소수의 독자와의 그룹 인터뷰를 포함해 다양한 연구를 한다”며 “웹 시대에 역행하는 속도지만 종이 잡지 특유의 장점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메쿠의 친독자 정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자사 제품을 직접 체험하는 모델도 독자를 적극 활용한다. 잡지 제작에 직접 참여할 기회를 얻은 독자의 충성도는 굳건해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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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직장을 조기 퇴직한 미와 히로미는 하루메쿠 독자 모델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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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서 청소년 심리 전문가로 30년간 일한 미와 히로미(58·사진)는 2021년 집안 사정으로 조기 퇴직했다. 그는 하루메쿠 독자 모델로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전업주부가 되고 자유를 누리다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건강에 집중하기 시작했죠. ‘통증 없는 여생’을 목표로 체형 교정을 시작했는데 마침 하루메쿠에서 자세 교정 이너웨어 모델을 모집한다기에 응모했어요.”

독자 모델 체험 후 ‘인생은 지금부터!’라는 기분을 만끽했다는 미와는 이후 TV 드라마와 광고 출연 오디션을 보고 연극 워크숍에도 참여하고 있다. “언젠가는 대사가 있는 엑스트라가 되고 싶다”는 그의 목표는 ‘환갑 데뷔’다. 퇴직 후 자칫 사회와 단절될 뻔했던 50대 후반의 여성이 새로운 꿈을 품고 세상과 만나고 있다. 일본 잡지업계를 평정한 하루메쿠가 중년 여성 독자들에게 제안하는 라이프 스타일은 장수나 동안이 아닌,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긍정적인 삶’이다.

이유진 기자 88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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