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충격 ‘일파만파’ 다시 보는 중대재해법 [스페셜리포트]
중대재해 사고가 일어났을 때, 법이 정한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책임자는 곧바로 처벌 대상이 된다.
2023년 4월 13일, 처음으로 중대재해법을 위반한 사업주를 처벌한 판결이 나왔다. 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공사 자재인 ‘고정 앵글’을 운반하다 근로자가 사망한 사건이다. 원칙상으로 고정 앵글은 양쪽에 줄을 걸어 운반해야 한다. 그러나 사건 당시, 공사 현장에선 앵글에 줄을 하나만 걸고 앵글을 옮기고 있었다. 결국 고정 앵글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그 반동으로 옆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발판에서 추락해 숨을 거뒀다.
당시 공사는 병원인 C사가 A사에 공사를 맡기고, A사가 하청업체인 B사에 하도급을 준 상태였다. 사망한 근로자는 B사 소속이었다. 법원은 A사 대표이사에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사의 최종 책임자인 A사 경영인이 안전 환경 준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그 결과 재해가 발생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A사는 사업장의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개선 절차, 안전보건관리책임자의 업무 수행 능력 평가, 비상대응 매뉴얼 발간 등 기본 절차를 준수하지 않았다.
개선 의지가 없는 경영주는 ‘가중처벌’을 받는다. 법원은 2023년 4월, H사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 법정 구속 절차를 밟았다. H사 작업장에서는 1220㎏에 달하는 방열판을 섬유벨트를 이용해 들어 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중에 섬유벨트가 끊겼고 피해자는 떨어진 방열판에 깔리며 사망했다. 집행유예가 아닌, 법정 구속까지 이어진 배경에는 H사 ‘전과’가 영향을 미쳤다. H사 사업장은 이미 여러 차례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적발된 곳이었다. 과거 산업재해 사망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업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명백히 존재했다. 문제가 확실한데도, H사는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알고도 안 한’ H사 죄책이 상당히 무겁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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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현장은 중대재해 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장소 중 하나다. 하도급, 도급, 원청과 하청 등 계약 관계도 복잡해 사업주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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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면 무조건 처벌? NO!
의무 제대로 이행했다면 용서받는다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해도, 무조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받지는 않는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 안전보건 확인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다면, 경영주는 책임을 면할 수 있다. 중대재해법상 경영자에게 책임 소재를 따지지 않는 상황은 대략적으로 2가지다.
첫째,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충실히 이행했을 때다. 경영자가 사고 예방을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해왔음이 입증된다면 처벌을 면할 확률이 높아진다. 대표적인 예가 2022년 2월 발생한 Y석유화학업체 폭발사고다. 석유화학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4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는 대형 사고였다. 수사당국은 강도 높은 조사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검찰은 Y사 공동대표 2명의 중대재해법 위반 여부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Y사가 안전 확보를 위해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 영향을 미쳤다. Y사는 자체적으로 안전관리, 재난관리, 안전교육 등을 전담하는 환경안전팀을 구성, 운영하고 있었다. 또, 노동청의 공정안전관리(PSM) 평가에서 S등급을 받고, 4년 주기로 모든 설비의 대정비를 실시하고 있는 점 등이 참작됐다.
둘째, 현장 근로자가 안전 절차를 위반한 경우다. 2022년 4월 H솔루텍 직원이 에어컨 실외기를 점검하던 중 추락해 숨졌다. 중대재해 사고였지만, H솔루텍과 대표이사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회사는 사업장별로 안전 수칙을 상세히 마련해뒀다. 현장에서는 보호구 착용, 책임자 감독 아래 작업 실시 등 내용을 담은 안전교육을 성실하게 실시했다. 해당 사고는 근로자가 책임자의 사전 승인 없이, 고소작업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단독으로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일을 하다 발생한 사고였다. 법원은 경영인이 정한 절차를 벗어나 근로자가 사망한 것이므로, 사업주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선고했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7호 (2024.07.03~2024.07.0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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