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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9 (목)

[정동칼럼]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창의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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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5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22에 연동하여 ‘창의적 사고력’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총 64개국이 참여했는데, 전체 1위는 60점 만점 중 41점을 받은 싱가포르가 차지했고, 한국은 38점을 얻어 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과 함께 2~4위 그룹으로 분류됐다.

이 결과는 다소 의외였는데, 한국의 학교들이 주로 입시준비와 문제풀이에 치중해왔다는 점에서 볼 때 기대하기 힘든 성과였다. 게다가 한국 학생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학생들도 자신들의 창의성이 높다는 사실이 의외였던 모양이다.

물론 이 조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우선 이 평가에서 사용된 ‘창의적 사고’란 개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위대한 예술가나 뛰어난 발명가 등의 천재성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스크랩북에 가족사진을 창의적으로 정리하거나 직장에서 복잡한 일정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는” 정도의 소소한 변환 능력을 의미한다. 공부 잘하고 머리가 똑똑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습득해갈 수 있는 능력이었다.

OECD도 시인하듯 이번 조사에서 사용한 창의성 척도는 기존의 수학, 읽기, 과학 성취도 평가 점수와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 말하자면 수학을 잘하는 학생들이라면 당연히 창의적 사고력 점수도 높게 나올 수 있는 방식의 평가였다는 뜻이다. 결국 PISA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한국 학생들의 창의성 점수가 이번에 높게 보고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더구나 하위 범주로 들어가 보면 실망감은 더 커지는데, 한국의 경우 그 하위범주인 ‘다양한 아이디어 만들기’ ‘독창적 아이디어 만들기’ ‘아이디어 평가하고 개선하기’ 등 가운데 유독 ‘독창적 아이디어 만들기’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점수가 높지 않았다. 말하자면 한국 학생들은 기존의 사고를 변형하고 다양화하는 능력은 있지만, 전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능력은 그리 높지 않다는 사실을 드러냈다고 하겠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번 조사 결과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을 자세히 보면 우리가 모르던 점들도 몇 가지 발견된다. 첫째, 창의적 사고력이 뛰어난 학생 중 절반가량은 학업 영역에서 뛰어나지 못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창의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창의적인 학생들이 반드시 교과목 성적에서 우수한 것은 아니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창의적 두뇌를 더 원한다면 이런 학생들이 교과목 성적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선발과정에서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둘째, 창의성도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미래교육과정에서 창의성 학습은 각종 교과교육들과 결합될 필요가 있으며, 더 많은 수업들이 프로젝트기반 수업이나 문제기반 수업 등으로 전환돼야 한다.

또한 이번 조사는 창의성이 개인 차원의 능력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을 드러내준다. 조사에 참여한 64개 국가들의 창의성 평균을 수학 성취도 평균으로 예측하는 회귀분석을 활용하면 대략 한 국가의 수학성적으로 그 나라의 창의성 점수 평균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러한 회귀선을 중심으로 분포되는 국가들의 양상이 매우 흥미롭다. 우선 한국을 비롯해 핀란드·캐나다·에스토니아·덴마크 등 주로 서구권 국가들은 모두 수학 성취도가 높을뿐더러 창의성 점수들은 수학 학업성취도에 근거해 기대되는 수준을 훨씬 능가한다. 이런 경향은 남미 국가들에서도 발견되는데, 그들의 창의성 점수는 비록 절대적으로 높지는 않아도 수학 성취도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반대로 중국문화를 공유하는 국가들, 예컨대 대만·마카오·홍콩 등은 세계 최고의 수학 성취도에도 불구하고 창의적 사고력 평균은 OECD 평균 혹은 그 이하에 머물렀다. 또한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의 경우도 수학성취도에 의해 기대되는 창의성 수준에 조금씩 밑돌았다. 이 현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아직 답은 없다. 하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창의성은 한 사회의 문화적·역사적·정치적·기술적 포용성을 반영하는 집합적 역량이다. 창의적이란 관성으로부터 이탈하는 것이며, 그만큼의 사회적 개방성과 관용성을 필요로 한다. 창의적 사회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벌하지 않으며, 설사 ‘틀린 것’도 ‘다른 것’으로 승화하도록 돕는다.

요약하면, 한국의 학교는 아직 희망이 있다. 하지만 그 희망의 깊이가 그리 깊지 않다는 게 문제다.

경향신문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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