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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5 (일)

“조선 들판은 황금물결이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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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러스트레이션 유아영


“앗! 조다, 토종 차조다, 주인 할머니를 찾아라!”



가을 아침볕이 드는 전북 순창의 어느 시골길. 골목 한 모퉁이를 돌아가니 반쯤 열린 비닐하우스 한 동이 나온다. 그 안에 가을걷이해놓은 조가 멍석 위에 가득하다. 옆으로 홍고추와 들깨, 메주콩도 널어놓았다. 개 꼬리 같이 생긴 조 이삭들, 이삭마다 날치알 박히듯이 차조가 박혀있다. 처음 보는 귀한 토종 차조다. 집으로 들어가니 사람은 없고, 처마에 강냉이와 마늘 종자들이 걸려 있다. 마당에도 곡식을 까불리는 키 위에 한 홉씩이나 될까 싶은 콩이며 팥이며 녹두 종자들이 가지런하게 널려 있다. 딱 이녁 식구 먹고, 오는 사람 좀 나눠줄 만큼, 이것저것 씨앗을 간수하는 중이다. 욕심은 한 톨도 없다. 평생을 땅에서 살아온 여인의 정갈한 솜씨다. 할매는 어디 가셨을까, ‘조바심’이 난다. 조바심의 ‘조’는 조고, ‘바심’은 우리말 타작이다. 조는 꼬투리가 질겨 세게 털면 알곡이 튀고, 약하게 털면 안 빠진다. 그래서 조심조심, 조마조마, 마음 졸이며 좁쌀을 터는 데서 ‘조바심’이 왔다.



점심 지나서야 마실 나갔던 김춘상 할매, 귀가하신다. 이만저만 얘기를 하자, 선반 위에서 소쿠리를 하나 꺼낸다. 조선무 조선오이 메주콩 강낭콩, 여러 종자들이 물병 소주병에 담겨 예닐곱 개 들어있다. 전부 토종씨앗이다. 친정물림인지, 시댁물림인지 물으니 시집 올 때 친정 할머니로부터 받은 것이라 한다.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더니, 이 귀한 종자들이 할매로부터, 할매의 할매로부터, 이렇게 누대로 대물림하고 있는 것이다. “씨가 없으면 또 뭣을 구해 숭글랑가는 몰라도, 우리들이 안 죽고 사는 동안에는 이 종자들이 없어지지든 안혀” 그러면서 한 줌, 한 홉 종이봉투에 덜어준다.



2021년 10월 전후로 40여일, 순창 마을 마을을 돌아 수집한 것이 41작물에 275점. 일부는 종자저장소(시드볼트)로 보내고, 순창 보관소에 조금 남기고, 나머지는 ‘은은가’로 가져온다.



날은 성하(盛夏), 복중에 들었다. 음력 유월, ‘유월 장마에 돌도 큰다’더니, 이 물과 볕에 안 크는 것이 없다. 산야는 넘실대는 진초록의 물결, 밭작물이 한껏 여물고, 과일에 단맛이 드는 때다. 반면에 금방 무르고 썩는다. 그래서 유월을 썩은 달, ‘액(厄)달’이라고도 한다. 한편에서 크고 한편에서 썩는 것이 상반돼 보이지만 음양 길흉이 그렇듯이, 세상사 좋은 일만 계속되는 법은 없다. 여름 소출은 나누거나 썩거나 둘 중 하나라, 썩기 전에 얼른 나누는 것이 액달을 넘는 지혜다.



전남 곡성군 석곡면, ‘은은가’ 가는 길. 무등산과 지리산의 중간쯤, 보성강과 섬진강을 가르는 통명산 자락이다. 계곡 따라 한참 올라가니 비탈을 개간하여 툭 트인 개활지가 나온다. 아담한 집 한 채, 종자 보관창고, 싹을 틔우고 갈무리하는 작은 하우스 두 동, 사무실로 쓰는 별채 하나 있다. 마당에 종자들이 널려 있고, 개 한 마리 평상 밑에서 졸고 있다. 동편으로 작은 물줄기를 따라 상현달 모양의 다랑논이 층층이 여섯 층을 이루며 내려온다. 그리고 여기저기 수많은 토종작물들이 자라는 밭뙈기들이 흩어져 있다. ‘㈔토종씨드림’의 본산, 변현단 대표(60)가 사는 4천여 평 ‘은은가(隱誾家)’, 숲 속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리는 집이다.



“여기서 증식을 합니다. 할머니로부터 받아온 귀한 씨앗을 비료도 없고 농약도 없던 옛날 방식 그대로 키우면서 특성을 관찰하는 채종포(採種圃)입니다. 한 줌이 한 말이 되고, 한 홉이 한 가마니가 되지요. 토종농가에 그것을 나눠 줍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일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냐?” 물으니, “그것은 옛날 얘기”라면서 2005년 경기도 시흥에서 ‘연두농장’ 할 때 일을 들려준다. “어디서 옥수수 종자를 얻었어요. 때깔 좋고 씨알 굵은 그것을 한 해 농사지어 거둬 먹고, 채종해서 이듬해 또 심었지요. 그런데 옥수수가 병든 것처럼 비실비실 하더니 몇 개 달리지도 않고, 노인처럼 이빨이 다 빠지고, 전에 심었던 것 절반도 안 나와요.”



이른바 ‘F1’종자였다. F는 ‘자식의’(Filial)라는 뜻이다. F1, 1대 자식은 우수형질을 받아 잘 크고 수확량도 많았다. 그러나 F2로 가면 쉬 병들고 수확량이 형편없다. F1 이후로는 씨가 마르고 대가 끊기게 되어 있어, ‘터미네이터 종자’라 한다. 농사를 망칠 수 없으니 올해 F1종자를 사서 심고, 이듬해 또 그것을 사야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은 딱 한번이다. 다국적 종자회사들은 씨앗 값을 계속 올리고 있다. 어떤 것은 금보다 비싸다. 최근 10년간 우리가 해외에 지불한 종자 수입액은 1조6천억원(2022 국감자료)에 이른다.



농부가 씨앗을 빼앗긴 이 문제의식이 ‘토종씨드림’의 결성을 낳았다. 2008년 봄 전국의 ‘농’(農)자 들어간 연합 본부 단체들이 ‘토종씨앗을 지키자’는 뜻을 모아 비영리단체를 창립했다. ‘씨드림’은 ‘씨앗의 꿈(dream)’이면서 ‘씨앗을 드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하는 일은 크게 4가지, 수집 증식 나눔 보전이다. 순창의 경우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얻은 종자를 잘 키워 일부는 보전하고, 나머지는 회원농가에 무료로 나눠 뿌리내리도록 하는 일이다. 17년 동안 전국 40여개 시군을 찾아 1만1천여 점을 수집했다. 10명으로 출발한 ‘토종씨드림’은 후원회원이 850여명, 이 씨앗으로 농사짓는 카페회원이 1만명 넘는 규모로 성장했다.



‘토종’이란 무엇인가? 토종은 배타적 의미가 아니다. 원래 있던 것이나, 새로 들어온 것이나, 이 땅에 잘 적응하여 독특한 자기 성질을 간직한 채 살아남은 것이라고 변 대표는 설명했다. “흔한 메주콩도 지역마다 다 다릅니다. 토종은 다양성입니다. 자연의 순리가 다양성이고, 획일화는 인위적 역행이죠. 19세기 최악의 재앙인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는 작물의 획일화가 원인입니다. 주식인 감자 한 종을 심었는데 마름병이 퍼지면서 수확이 거의 없을 정도로 피폐했어요. 수백만 명이 굶어 죽었습니다. 다양한 작물과 종을 심었다면 피할 수 있었던 일입니다. 우리 가을들판을 황금물결이라 하잖아요? 그것은 일본 품종으로 획일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오색물결이었어요. 붉은빛의 대추벼, 흑색의 북흑조, 연노랑의 버들벼 같은 다양한 토종씨앗들로 조선의 가을들녘은 천연색 물결이었어요.”



일제강점기 보고서 ‘조선 벼품종일람’에 따르면 1913년 팔도에서 수집한 벼 품종이 1451종에 이른다. 국립종자원은 정부보급종을 포함,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벼 품종을 50종 미만으로 추산한다. 1세기 동안 95% 이상의 벼 종자가 사라졌고, 매년 약 200여 점의 씨앗이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어느 촌구석, 예대가리밭에서 살아남은 것들이 있었으니, 오직 할매의 손길 위에서였다. 그 종자를 찾아 변 대표 일행이 방방곡곡을 쏘다니고 있는 것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한눈에 알지요. 반듯한 곳에는 십중팔구 없고, 옛 모습 그대로인 동네에 남아 있습니다. 씨앗은 소박하고 정갈하게 살아온 할머니의 손에서 나옵니다.”



변 대표는 젊은 날 진보정치운동을 하다가 가난한 이들의 자립공동체 ‘연두농장’을 이끌었고, 귀농하여 토종씨앗의 삶을 살아 온 지 20여년. 머리는 허옇게 세고, 낯빛은 그을렸어도 푸릇한 청춘이 얼굴에 살아있다. 낮에 농사짓고 밤에 글을 쓴다. ‘숲과 들을 접시에 담다’ ‘소박한 미래’ ‘씨앗철학’ ‘자립인간’ 등 책 10여권을 펴냈다.



할머니는 왜 씨앗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맛이 달라, 장 담가보면 알아. 새 종자가 돈은 좋은데 맛이 없어. 눈은 속여도 입은 못 속여. 제사 때 귀신이 간장냄새 맡고 온다 하거든. 아무리 돈이 좋아도 저것은 토종 못 따라와.” 그 말 속에서 어릴 때 먹던 청국장 냄새가 난다. 할매는 “씨는 본시 나누는 것”이라면서 한주먹 내어주고, “나 죽으면 더 농사지을 사람도 없어”하면서 한 줌 더 내어준다고 한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 늘 할머니의 손에서 그것을 되찾곤 했듯이, 토종씨앗도 그러했다.



한겨레

이광이 ‘정말로 바다로 가는 길을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러나 바다로 가는 노력을 나는 그쳐본 적이 없다’ 목포 김현문학관에 걸린 이 글귀를 좋아한다. 시는 소질이 없어 못 쓰고 그 언저리에서 ‘잡글’을 쓴다. 삶이 막막할 때 고전을 읽는다. 머리가 많이 비어 호가 ‘반승’(半僧)이다. 동화 ‘엄마, 왜 피아노 배워야 돼요?’와 책 ‘절절시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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