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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6 (일)

3년도 남지 않았다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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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및 역동경제 로드맵 발표’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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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3년은 너무 길다.” 조국혁신당의 지난 총선 슬로건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2년에 대한 국민 다수의 생각을 정확하고 간명하게 표현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조국 전 대표의 전언처럼 이제 국민은 3년이 아니라 “석달도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 사실 3불(불의하고, 부도덕하고, 불공정한) 2무(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을 생각하면 ‘석달’이 아니라 “사흘도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불온한(?) 상상을 해본다. 윤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불가능한 상상이지만, 만약 윤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국민에게 헌신한다는 마음으로 스스로 물러난다면, 어떨까? 약속할 순 없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미국의 닉슨 대통령처럼 스스로 물러나고, 후임 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했던 것처럼 말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적어도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권 때문에 나라가 더 망가지고 국민이 상처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다음은 뭘까? 윤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평범한 사람들을 괴롭히던 문제들이 사라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사가 그랬다. 일제라는 거악이 사라지면 모든 조선인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해방만으론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할 순 없었다. 민주화도 그랬다. 독재정권이 무너진다고 자동으로 모두가 더 나은 삶을 사는 세상이 만들어지진 않았다. 연인원 1700만여명이 참여했던 2016~2017년의 촛불 항쟁은 어떤가. 시민의 힘으로 불의한 정권만 무너뜨리면 더 나은 세상이 열릴 것 같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민주화 이후 정권교체와 관계없이 부와 사회경제적 지위가 대물림되는 불평등한 세상을 만든 “대기업, 노동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자동화, 해외 소비에 의존하는 성장 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진보·개혁 진영이 복지 확대라는 ‘좌측 깜빡이’를 켜고 기존의 성장 방식을 지속시키는 ‘우회전’을 했던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유산을 계승하는 것만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이유였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0월 파이낸셜타임스는 워싱턴디시(DC)에서 개최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의 연례회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세계 경제: 긴축정책의 공식적 종언’이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미국의 정권이 트럼프에서 바이든으로 바뀌었는데도, 자국 중심주의, 보호주의, 국가의 역할이 더 강화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신자유주의 합의는 수명을 다했고 세계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치권은 여전히 한물간 신자유주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윤석열 정부는 여전히 ‘긴축과 세계화’라는 신자유주의 원리에 집착하고 있다. 감세를 둘러싼 여야의 최근 논란도 이러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대변하고 있다. 비판이 이어지고 있지만 스스로에게 묻자. 우리에게 신자유주의 질서에 최적화된 “대기업, 노동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자동화, 해외 소비에 의존하는 성장 방식”을 대신할 대안이 있는가.



진보·개혁 세력은 기후변화, 제조업의 쇠퇴, 디지털 기술 변화, 보호주의의 대두 등 새로운 정치·경제적 위기에 대응할 지속가능한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냉정하게 말해 그 대안을 제대로 고민해본 적조차 없다. 대안이 없으니 수출과 감세 등과 같은 옛것에 매달리는 것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옛것에 매달린다면, 다가오는 포스트 신자유주의 세상은 지금보다 더 나쁜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끔찍한 일이다.



3년이 너무 길다고? 정신 차리자. 세계화의 재편, 디지털 기술 변화, 기후위기 등에 대응해 성장 방식을 바꾸고 민생을 해결할 대안을 만들 시간이 채 3년도 남지 않았다. 국민의 삶 전반을 옥죄는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세입과 지출 확대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돌봄의 권리를 보장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기 위해 사회서비스에 대한 과감한 투자 전략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진보·개혁 세력이 만들어갈, 다수의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정권교체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한 착각이다. 정권교체가 국민의 불행한 삶을 끝내지 못한다면 국민은 민주적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를 버릴지도 모른다. 그다음은 뭘까? 두렵다. 대안 없는 정권교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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