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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모던 경성]식민지 조선인 입맛 훔친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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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라이브러리 속의 모던 경성]1920년대 카레라이스 조리법 신문 등장, ‘찬밥치다꺼리에 손쉬운 洋요리 '

조선일보

김남천이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사랑의 수족관' 삽화. 정현웅이 그렸다. 주인공 경희가 조선은행 건너편 고급식당 청목당에서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식사하는 장면이다. 1930년대 청목당의 카레라이스 가격은 40전 안팎으로 설렁탕, 장국밥보다 2~3배 비쌌다. 조선일보 1939년9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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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치다꺼리에 손쉬운 洋요리’.

90년전 신문에 찬밥 처리에 안성맞춤인 서양 요리로 ‘카레’를 꼽은 기사가 실렸다. 카레를 특별 메뉴가 아니라 찬밥 처리용 음식으로 소개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일상에 스며든 가정식으로 대접받았다는 얘기다. 신문에 실린 ‘라이스 카레’(카레 라이스)조리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3인분 재료로 닭고기 조금, 양파 2개, 밀가루 큰 숟가락 하나, 버터 큰 숟가락 셋,우유 또는 고기 국물, 소금, 후추, 아지노모토와 카레 가루 작은 숟가락 2개 분량을 준비한다. 먼저 닭고기를 잘게 썰어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린 다음 밀가루를 묻힌다.

양파는 곱게 다진 뒤 프라이팬에 버터 두 숟가락을 넣고 불에 놓아 뜨거워진 다음에 다진 양파를 잘 익힌다. 다시 버터 한 숟가락을 넣고 닭고기를 넣은 뒤 2분동안 익힌다. 카레 가루 두 숟가락을 잘 섞은 다음에 우유나 국물을 쳐서 전체를 걸쭉하게 만들고 소금, 후춧가루, 아지노모토를 넣어서 간을 맞춘다. 강한 불로 끓인 뒤 차차 약한 불에서 한 30분 동안 천천히 익힌다. 카레가 준비되면 밥위에 끼얹어 먹는다.(‘찬밥치다꺼리에 손쉬운 洋요리’2,조선일보 1934년3월10일)

조선일보

메이지유신 직후인 1872년 서양음식 조리법을 소개한 책 '서양요리통'. 몇달전 출간된 '서양요리지남'과 함께 일본에서 처음으로 카레 요리법을 알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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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엔 아지노모토

일본산(産) 조미료인 아지노모토(미원의 원조)를 카레에까지 넣었다는 게 눈길을 끈다. 1909년 일본서 처음 출시된 아지노모토는 조선에는 1915년 매일신보 광고에 처음 등장한다. 아지노모토는 ‘조선박람회’가 열린 1929년부터 판매량이 급증했다. 조선총독부는 1929년 9월12일~10월31일 경복궁에서 식민 통치의 성과를 과시하는 조선박람회를 주최했다.아지노모토 회사는 박람회를 계기로 대대적 선전 활동을 펼쳐 음식점은 물론 가정의 필수품으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아지노모토를 평양 냉면, 장국밥, 떡국, 육개장, 설렁탕 등에 무조건 넣으라는 광고가 먹히면서 모든 국물 음식에 들어가게 됐다.

◇조개 라이스 카레도 등장

1920년대 중반이 되면 카레라이스 만드는 법이 신문에 소개될 만큼 상당히 익숙한 음식이 된 것같다. 동아일보 1925년 4월8일자에 소고기 카레라이스 만드는 법이 나온다. 소고기 반근, 양파 2개, 감자 약간, 단근(당근) 약간, 밀가루, 카레가루가 준비물이다. 카레를 끓일 때 계란부침을 잘게 썰어넣거나 사과 반개를 넣으면 맛이 좋아진다는 팁을 주는 게 독특하다.

조개나 굴을 넣은 카레 라이스 조리법도 일찍부터 등장한다. ‘조개나 굴을 넣고 라이스카레를 만들 수있으니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조개로 하든지 굴로 하든지 먼저 소금물에 씻어서 물기를 뺄 것입니다.’ (‘자양많고 맛있는 패류의 요리법’, 조선일보 1928년4월6일) 중외일보(1928년11월8일)도 ‘라이스카레 만드는 법’을 소개했다.

조선일보

1930년 공평동에 있던 전동식당이 라이스카레를 비빔밥, 설렁탕, 장국밥과 같은 가격인 15전에 판매한다고 실은 조선일보 1930년 11월8일자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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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식당의 ‘파천황의 염가광고

카레 라이스는 원래 식당에서 파는 음식이었을 것이다. 1907년 개업한 서양요리점 청목당은 1914년 조선호텔 양식당이 문을 열기 전까지 최고의 서양음식점이었다. 조선은행, 미쓰코시 백화점이 있는 본정(本町) 입구에 자리잡은 이 식당의 1930년대 카레라이스 가격은 40전이었다. 비프스테이크 70전, 정식이 1원50전, 2원, 2원50전이니 서양 음식 중에선 저렴하지만, 설렁탕, 장국밥보다는 두세배 비쌌다.

조선음식과 서양음식을 같이 취급한 공평동 전동식당은 1930년 음식값 인하 광고를 신문(조선일보 1930년11월8일)에 게재했다. 라이스카레는 15전으로 비빔밥, 대구탕, 장국밥, 떡국과 같은 가격이었다. 쌀값 폭락에 따른 ‘파천황의 염가’로 제공한다고 선전한 것으로 보아 평소보다 싼 가격이었을 것이다.

조선일보

1907년 문연 서양요리점 청목당. 조선호텔 이전 개업한 고급 서양식당이었다. 1930년대 카레라이스를 40전에 팔았다. 조선은행쪽에서 촬영했다.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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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和洋일체 음식 ‘카레’

카레는 대부분의 서양음식처럼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 일본의 카레는 메이지 유신 초기인 1870년대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1872년 출간된 ‘서양요리지남’ ‘서양요리통(通)’같은 책에 카레조리법이 나온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인 다이쇼(大正) 시대와 쇼와(昭和) 시대에 접어들어서야 대중화됐다. 군대와 학교 같은 단체 급식에 잘 맞았다. 고기와 채소가 골고루 들어가 영양소가 균형을 맞췄고,한꺼번에 대량의 음식을 준비하는 데 적절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급된 카레는 라멘, 스시와 함께 일본인의 소울 푸드로 꼽힐 만큼 인기있는 음식이 됐다. 조선의 카레 보급은 일본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행됐다.

◇어린이도 카레 선호

1930년대 카레는 어른은 물론 어린이들도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한 학교에서 학생 120명에게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을 조사했더니, ‘라이스 카레’가 ‘누른 밥’(누룽지), 고로케, 치킨 라이스, ‘멘티보르’와 함께 높은 점수를 받았고, 생선 구이, 나물 무침, 간장, 숙주나물, 장찌개, 물고기, 야채샐러드 등이 싫어하는 음식으로 꼽혔다.(’어린이 음식, 어떤 것을 즐기나’,조선일보 1936년 5월15일)

◇라이스카레, 나이수카리?

1930년대 후반이 되면 ‘비프 카레 라이스’ ‘치킨 카레 라이스’ ‘드라이 카레 라이스’처럼 각종 카레 라이스 조리법을 소개하면서 ‘누구나 잘 아는 ‘카레-라이스’란 표현이 등장할 만큼 카레는 익숙한 음식이 됐다. (’라이스 요리 몇가지-손쉽게 되는 가정 요리’, 조선일보 1937년 8월18일)

하지만 한용운 장편 소설 ‘박명’(薄命)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같다. 주인공 순영이 친구 정순과 해수욕장에 놀러갔다가 점심을 사먹는 장면이 나온다. 순영은 ‘라이스 카레’를 먹겠다는 친구 얘기에 ‘나이수카리?’라고 동문서답을 한다. ‘이런 멍텅구리, 나이수카리가 머냐, 너 부러 그러는구나 나를 놀리려구.’ 정순은 무안을 주지만 순영은 정말 모르는 눈치다. (‘박명’ 108, 조선일보 1938년9월28일) ‘라이스카레’를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도 적지않았음을 보여준다.

20세기 후반 들어 카레는 MT나 군대 같은 단체급식에서 빠질 수 없는 메뉴로 자리잡았다. 누구나 좋아하고 대규모 인원에게 손쉽게 식사를 제공하기에 편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란 카레의 맛은 한국인의 입맛으로 자리잡았다.

◇참고자료

모리에다 다카시 지음, 박성민 옮김, 카레라이스의 모험, 눌와, 2018

박현수, 경성 맛집 산책, 한겨레출판, 2023

박현수, 식민지의 식탁, 이숲, 2022

주영하, 백년식사, 휴머니스트,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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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철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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