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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이슈 경찰과 행정안전부

[단독] 현장서 음주 측정했다던 경찰, 97분 뒤에야 병원서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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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드 마크 번복 이어 또…

조선일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로 숨진 서울시 공무원 고(故) 김인병씨의 유족이 4일 영정을 들고 그가 일했던 서울시청사를 도는 모습. 서울시 공무원들도 뒤따랐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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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청역 역주행 참사 피의자 차모(68)씨의 음주 측정이 사고 발생 97분 뒤에야 이뤄졌던 것으로 4일 나타났다. 지난 1일 오후 9시 26분 차씨가 몰던 제네시스 G80(2018년식) 차량이 시속 100km로 세종대로18길을 역주행, 시민 9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경찰은 사고 직후 “현장에서 음주 측정을 한 결과 음성이 나왔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이 설명은 거짓이었다. 차씨는 사고 97분 뒤인 오후 11시 3분,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에야 음주 측정을 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죽는 듯한’ 고통을 호소해 위독하다고 판단했다”며 “갈비뼈 골절로 숨도 못 쉬는 상황이라서 도저히 음주 측정기를 불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차씨는 사고 19분 뒤인 오후 9시 45분부터 자신이 근무하는 버스 회사 동료와 두 차례 전화를 하며 “형, 이거 급발진이야” 등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출동한 경찰관이 피의자가 그 사이 통화를 했는지 알 수가 없다”며 “우리가 의사는 아니지 않나”라고 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사고 직전 방문한 호텔 내 감시 카메라를 통해 차씨의 동선과 음주 여부 등도 확인 중이라고 했다.

음주 측정은 사고 직후 해야만 신뢰할 수 있다. 가수 김호중씨 등 음주 운전 피의자들이 음주 사고 직후 도주하거나 측정 거부 사례가 잇따르는 이유는 혈중알코올농도가 시간이 지나면서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고 직후 차씨가 객관적으로 음주 측정이 불가능한 상태였는지, 회사 동료와의 통화 녹음 등을 추가 조사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경찰은 전날 기자회견에서도 “마지막 사고 지점(BMW·쏘나타 충돌), 마지막 정지 지점(시청역 12번 출구 앞)에서 스키드 마크를 확인했다”고 했다. 회견 종료 30여 분 뒤인 3시 5분, 스키드 마크가 아니라 기름 자국이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급발진 여부를 가릴 수 있는 중대 단서를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발표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시민 9명이 삽시간에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경찰의 부실 수사가 지나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찰은 이날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인 차씨를 방문해 2시간가량 피의자 조사를 했다. 변호인을 대동한 차씨는 “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았으나 딱딱했다”며 차량 상태 이상에 따른 급발진을 주장했다고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전날 경찰이 신청한 차씨 체포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피의자가) 출석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거나 체포의 필요성을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도 계속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날 새벽 참사 희생자 9명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서울시 공무원 김인병(52)씨와 윤모(30)씨의 유해는 오전 5시 40분, 6시 국립중앙의료원과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각각 열린 영결식을 마치고 고인들이 생전 근무했던 서울시청 건물로 운구됐다. 김씨의 딸이 빨갛게 부은 얼굴로 아빠의 영정을 들고 나오자 사람들은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울었다. 윤씨 부모는 아들의 관 위에 꽃을 올려두면서 울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러 온 동료의 영정을 보며 서울시 직원들 수십 명이 눈물을 흘렸다. 윤씨의 동생은 “저희 형이 너무 좋아하던 곳이었다. 감사드린다”고 했다.

조선일보

‘서울 시청역 역주행 사고’ 현장에 나란히 놓인 잔 9개. 사고 희생자 9명을 추모하기 위한 술잔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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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직원 박모(42)·이모(52)씨와 또 다른 52세 이모씨, 54세 이모씨의 발인식은 오전 5시 20분과 9시 서울대병원에서 각각 진행됐다. 박씨는 사고 당일 승진했고, 동료들과 축하 회식을 하고 나오던 길에 참변을 당했다. 54세 이씨를 잃은 백발 노모는 운구차에 오르면서 기력을 잃은 듯 실신할 뻔했다. 은행 동료와 유족 100여 명이 고인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용역 업체 직원으로 일하다 참변을 당한 김모(38)·양모(35)·박모(40)씨의 발인도 오전 9시 5분, 9시 20분, 10시에 차례로 엄수됐다. 양씨 유족들은 운구되는 관을 보며 “아아악” 통곡하며 절규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땅에 고개를 떨구고 눈을 뜨지 못했고 아내는 입을 막고 울음을 삼켰다. 아들의 관에 두 손을 얹은 아버지는 끝내 울었다. 박씨 발인식은 시중은행 조문객이 모두 떠난 뒤 적막해진 장례식장에서 유족 8명이 모여 진행했다. 기진맥진한 박씨 유족들은 운구차에 시신을 안치한 뒤 팔을 늘어뜨린 채 터벅터벅 걸어 운구차에 탑승했다.

[주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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