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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슈 국방과 무기

최강 미 해군은 왜 최빈국 예멘 후티 반군을 막지 못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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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달러짜리 미사일로 2000달러짜리 드론을 막아

4월까지 10억 달러 쓴 미국엔 지속 불가능한 장기전

제공권만으로 민간 지역후티 군사시설 파괴 못해

“미 해군, 2차 대전이래 가장 치열한 전쟁 중”

예멘을 사실상 장악한 후티 반군세력이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이유로 들어 홍해를 지나는 민간 화물선ㆍ유조선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작년 11월. 같은 달 19일 후티 반군은 헬리콥터로 ‘갤럭시 리더(Galaxy Leader)’에 내려 이 화물선을 나포했다.

한 달 뒤, 미국은 항모(航母)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함과 3척의 구축함을 주축으로 한 제2전단(戰團)을 홍해에 배치했고, 영국을 비롯한 10개국으로 구성된 ‘번영의 수호자(Guardian of Prosperity)’ 작전에 돌입했다. 홍해를 지나는 민간 선박을 보호하고 후티의 드론ㆍ미사일 발사 기지를 원점 타격하기 위한 작전이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주축이 된 유럽연합(EU)의 전함들도 2월부터 화물선 호송을 위한 ‘아스피데스(ASPIDES) 작전’을 시작했다.

두 작전이 돌입한 지 7개월이 된 지금, 미국과 유럽연합 해군의 성적표는 어떠할까. 미 해군은 후티 반군이 발사한 200기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해 6월까지 450기 이상의 요격 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런데도, 후티 반군의 화물선 공격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28일에도 홍해를 지나는 한 화물선 근처에 5기의 후티 미사일이 떨어졌다. 미사일의 정밀도가 떨어져 참사를 면한 것이지, 미국과 서방의 해군 전함들이 요격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달 21일에는 두 차례 임무를 연장한 아이젠하워 항모도 홍해를 떠나 모항(母港)인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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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미츠급 항모인 아이젠하워함(CVN-69·맨앞 가운데)이 알레이-버크급 최신 유도미사일 구축함인 라분, 그레이블리, 이탈리아 경(輕)항모 카보우르와 함께 지난 6월 7일 홍해를 지나고 있다. /미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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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수에즈 운하~홍해를 지나는 화물선, 유조선의 수는 평균 2만 척 이상이다. 전세계 해상 무역의 15%를 차지한다. 그러나 6월 말 현재 이제 이곳을 지나는 화물선은 작년 보다 67% 줄었고, 유조선은 50% 줄었다. 이곳을 지나는 선박의 보험료는 900%까지 치솟았고, 65개국 이상이 홍해 운송 차질로 인한 영향을 받고 있다. 2개의 군사작전이 시작할 무렵의 기대와는 정반대 결과가 빚어진 것이다.

이 탓에, 미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1941년 12월7일(진주만 피습) 이래 최저 수준”이라고 미 해군력을 비판했다. 이란이 제공하는 무기로 민간 선박들을 공격하는 오합지졸쯤으로 간주되던 후티 반군을 끝내 억지하지 못한 미 항모 전단의 군사력이 타이완 무력 점령 야욕을 포기하지 않은 중국에게 비칠 모습도 미국으로선 부담스러울 수 있다.

어떻게 1인당 GDP 650달러에 불과한 최빈국 예멘의 후티 반군 세력이 전세계 최강인 미 해군의 손발을 묶을 수 있었을까.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 외교안보 저널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군사저널 디펜스 포스트 등은 미 해군력의 억지력 실패 원인을 지리적 요인과 후티 반군의 전쟁 수행 방식, 양측의 비대칭적 무기 등에서 찾았다.

◇예멘 반군 세력의 앞바다

후티 반군 세력이 장악한 수도 사나를 비롯한 예멘 남서부는 홍해의 ‘병목’에 해당하는 바브 엘-만데브 해협 바로 앞에 있다. 이 해협은 수에즈 운하와 홍해, 아덴만과 아라비아해를 잇는 해로의 가운데 위치하며, 폭이 가장 좁은 곳은 32㎞에 불과하다. 후티 세력의 이란제 드론과 미사일의 손쉬운 사정거리 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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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조선디자인랩 한유진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77 척 이상의 화물선이 후티 공격으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지난달 19일에도 2척의 무인(無人) 해상 드론을 공격을 받은 화물선 ‘튜터(Tutor)’가 침몰했다. 두번째 화물선 침몰이었다.



미 전함도 모두 80여 차례 직접적인 공격을 받았다. 근접한 거리 탓에, 후티 미사일이 미 전함이나 화물선에 도달하기까지는 3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미 구축함은 이를 탐지하는 데 45초가 걸리며, 이후 10초 내에 이 미사일을 요격할 것인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홍해에 배치된 미 구축함 라분(Laboon)의 지휘관 에릭 블럼버그는 최근 AP 통신 인터뷰에서 “우리가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 속에서 임무 수행 중인지 사람들은 모른다”며 “우리가 딱 한 번 판단 실수를 하고 후티가 딱 한 번만 뚫으면 우리는 미사일에 맞는다”고 말했다. 미 해병대 장군 출신인 케네스 매켄지는 월스트리트저널에 “후티 공격이 장기화할수록, 미국 전함이 후티 미사일에 맞을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 해군의 원점 타격 능력은 제한적

후티 세력은 또 미사일과 드론 발사대, 군 지휘시설도 민간인 거주 지역에 설치했다. 기동성도 뛰어나다. 따라서 미 해군이 미사일로 후티 반군의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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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12일 예멘의 후티 군사시설을 파괴하는 영국 전폭기의 스크린. /영국 국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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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워싱턴대의 안보 전문가 게리 앤더슨은 “1970년대 초 미 공군은 북베트남에 대해 완벽한 제공권(制空權)을 쥐고 있었지만, 북베트남이 주요 군사시설을 민간인 지역에 설치해 미국은 전략적 승리를 거둘 수 없었다”며 “후티와의 대치는 베트남 전쟁의 재판(再版)”이라고 평했다.

그는 미 해병대의 효과적인 지상전 수행 능력이 따르지 않아, 미 해군은 홍해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했고, 미 해군과 해병대의 군사력 투사(投射) 능력은 1941년 12월 7일(진주만 피습) 이래 최저라고 주장했다.

◇지속 불가능한 ‘두더지잡기 게임’

지난 4월 중순, 미 국방부는 당시까지 홍해 작전에서 1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소진했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후티 반군은 “2000달러짜리 드론을 막으려고 200만 달러짜리 대공미사일(SM-2)를 쏜다”고 조롱했다.

이란이 후티 반군에게 제공하는 드론과 탄도ㆍ크루즈 미사일 물량은 끝이 없었다. 반면에, 이 드론과 미사일을 요격할 미국의 미사일 생산ㆍ공급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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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구축함의 수직발사시스템에서 발사되는 스탠더드미사일 2(SM-2). /미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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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1기당 생산 단가가 210만~400만 달러로 워낙 비싸기도 하지만, 생산 부품의 공급 체인도 갑자기 확대하기가 힘들다.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공급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무력 대결을 예상해 이런 첨단 미사일은 일정량 이상 비축해야 한다.

미국으로선 결코 이길 수 없는 장기적인 ‘두더지 잡기’ 게임에 들어간 꼴이 됐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해군 전문가인 알레시오 파탈라노는 포린 폴리시에 “후티 반군은 행동을 바꾸지도 않았고, 이동이 쉬운 그들의 무기는 그대로 쌓여 있다”며 “미국과 영국은 ‘이 게임을 계속 해야 하나’ 자문(自問)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모 아이젠하워함이 떠난 홍해는 그동안 필리핀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을 상대로 존재감을 과시하던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이 맡게 된다. 파탈라노는 “확실히 정의할 수 없는 임무 수행을 위해, 긴장이 진짜로 존재하는 해역에서 항모를 빼내는 것을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 EU의 초라한 해군력

유럽연합(EU)은 후티 공격을 억지하기에 적절한 전함도 갖추지 못했다. 독일이 최신예라고 자랑하는 호위함 헤센(Hessen)함은 지난 2월 미 해군의 드론 MQ-9 리퍼(Reaper)를 적으로 오인(誤認)하고 SM-2 요격 미사일 2기를 발사했다. ‘다행히’ 맞추지 못했지만, 100㎞ 밖의 공중 타깃을 요격할 수 있다는 헤센함이 피아 식별 능력, 임무 수행의 전문성 면에서 ‘수준 이하’라는 약점만 노출했고 이는 독일에서도 문제가 됐다. EU는 인도양에서 수에즈 운하에 이르는 해로를 자체적으로 지킬 충분한 전함도 갖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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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8일 유럽연합의 홍해 아스피데스 작전에 참여하기 위해 빌헬름스하펜 항구를 떠나는 독일의 최신 호위함 헤센함.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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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킬(Kiel)대학교 해상전략 안보 센터의 해군 전문가인 세바스티안 브룬스는 포린 폴리시에 “후티 세력은 서방 연합에 충분히 두통거리가 되는 만만찮은 존재라는 것을 증명했다”고 말했다.

킹스칼리지런던의 파탈라노는 미 해군의 홍해 작전 결과에 대해 “미 해군력의 실패라기 보다는, 민간 선박들이 안심하고 홍해로 되돌아오게 하는 ‘항해의 자유’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주요국들이 해군과 첨단 무기를 쏟아붓고도 이 문제를 계속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우려스러운 일이다.

포린 폴리시는 그동안 글로벌라이제이션을 가능하게 한 해상 안보는 더 이상 당연시할 수 없게 됐고, 이런 비(非)대칭적 공격에 대한 대응은 신속하게 이뤄지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따라서 이제 ‘뉴 노멀’이 된 해상 불안정을 어느 정도까지 감내할 것인지, 누가 (해군력 증강의) 추가 비용을 지불할 것인지 자문(自問)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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