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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5 (금)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경제난에… 유럽 유권자, 꼰대 이미지 벗은 극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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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로 떠오른 유럽의 극우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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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국가들에서 이른바 극우(極右)로 분류되어 온 정당들이 최근 제도권 정치의 주류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2022년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 형제들(FdI)이 이끄는 극우·우파 연대가 집권할 때까지만 해도 이는 ‘충격적 사건’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 정당들이 대거 약진, 유럽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비중 있는 세력으로 입지를 다졌다. 프랑스 집권 중도세력을 이끄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충격을 받고 조기 총선이라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결과는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의 승리였다. 독일에서도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지지세를 급속히 늘려가며 구(舊) 동독 지역의 최대 정치 세력 등극을 앞두고 있고, 스페인에선 복스(VOX)가 우파 국민당 및 좌파 사회노동당과 함께 핵심 정당으로 활동 중이다.

조선일보

그래픽=박상훈


유럽의 극우를 일관된 잣대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타민족(인종) 이주자 수용에 반대하고, 유럽연합(EU)보다 자국 주권을 앞세우며,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성향을 보이는 정치 세력이 해당된다. 영어로도 ‘far-right(오른쪽 극단)’, 불어 역시 ‘extrême droite(극단적 오른쪽)’이라고 한다. 반(反)유대 인종주의를 실천한 독일 나치의 ‘악몽’이 살아 있는 유럽에서 2차 대전 이후 배타적 성향의 극우는 비주류에 머물며 악마적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새 유럽의 경제난이 가중하고, 중동·아프리카 난민 대거 유입으로 이주자에 대한 반감이 확대하면서 이들 정당도 세를 불려왔다. 동시에 젊은 유권자로 외연을 확장하려는 극우 성향 정당들의 이미지 변신 노력도 ‘표심’을 잡는 데 일조했다. 서구권 언론은 주류에 편입 중인 극우 정당과 구별하기 위해, 네오나치 등 불법적 정당을 ‘파시스트 정당’ 등으로 부른다.

극우가 주류로 발돋움한 이유는 국가별로 조금씩 다르다. 이탈리아와 벨기에 등에선 소득 격차가 심한 지역 간 갈등을 바탕으로 하는 분리주의 운동을 극우 정당이 핵심 의제로 끌어안으면서 ‘표심’을 확보했다. 당 이름을 아예 ‘플람스(플랑드르)의 이익(VB)’이라고 내걸고 ‘불법 이민자 추방과 플랑드르 독립’을 주장하며 플랑드르 지역에서 18%를 득표해 둘째로 큰 정당에 올랐다.

기존 제도권 정당의 실정(失政)에 대한 반작용이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2020년 시작돼 3년간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과 그 뒤를 이은 극심한 인플레이션 등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이 기존 정당이 아닌 ‘대안’을 찾는 기조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2012년 설립된 이탈리아의 FdI가 정권을 잡은 과정이 대표적이다. 민족보수주의 정당으로 2012년에 설립된 FdI는 한동안 반이민·반동성애 기조로 ‘파시스트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지만, 2021~2022년 마리오 드라기 정부의 코로나 대응 실패 및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반작용의 영향으로 2022년 총선에서 26%를 득표하며 최대 정당에 올랐다.

음험하고 고루한 나치당’이라는 이미지에 갇힌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극우 성향 정당의 변신 노력도 유권자들을 끌어들인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외연을 확장한 극우 정당의 공통점 중 하나는 ‘매력적이고 젊은 지도자’를 전면에 내세웠단 것이다. 지난달 30일 총선에서 최다 득표율(33%)을 기록한 프랑스 RN의 경우, 실질적 리더는 정당 창립자의 딸 마린 르펜 원내대표이지만 훤칠하고 매력적인 20대 조르당 바르델라를 2022년 당수로 세워 청년층을 공략해 왔다.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바르델라는 RN이 인종 차별적 정당이라는 선입견을 지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바르델라는 “이주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프랑스에 동화되지 않으려는 이주민이 문제”는 입장을 거듭 밝혀 왔다.

이민자들을 “침입자”라고 부르고, 반유대주의·인종차별적 발언도 서슴지 않아 이탈리아·프랑스의 극우 성향 정당에 비해 더 극단적인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 역시 40대 레즈비언이라는 ‘의외의 당수’를 끌어들여 이미지를 ‘세탁’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골드만삭스 출신 경제학자인 알리스 바이델 공동 대표는 여성·동성애 혐오 등 청년 세대가 극우에 대해 갖는 껄끄러운 편견을 희석한 인사로 꼽힌다. 중동 출신 이민자들을 “칼잡이 남성”이라고 부르는 등 ‘막말’로도 악명이 높지만, 극우 정당과 어울리지 않는 단정한 이미지와 엘리트 경력이 당의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가 많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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