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근로소득 불평등 줄었으니 ‘헬조선’ 아니다? 금융소득 빼고 계산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문재인 정부 때인 지난 2018년 6월3일 홍장표 청와대 경제수석이 소득분배 악화 원인 및 소득주도성장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개인기준 근로소득 증가율 표를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달 26일 저녁 서울 서초구 교대역 가까운 한 식당에서 60대 중반 대학 동문 4명이 모여 보쌈과 파전을 놓고서 술잔을 기울였다. 넷 중 셋은 아직도 활발하게 경제 활동 중이다. 한 명은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고 다른 둘은 직장에 다녔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사장까지 지낸 이는 퇴사 뒤 쉬고 있다. 세상 돌아가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종합부동산세 폐지와 상속세 인하 이슈로 흘렀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또래 중 나름대로 자리를 잘 잡고 살아온 이들에게 작지 않은 관심사다. 불쑥 한 참석자의 입에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됐다는 기사를 봤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팩트’(사실) 앞에서 더 깊은 토론이 이어지지 않았지만 이날 주제는 다 불평등 이슈와 맞닿았다.



이날 저녁 동석자들이 봤다는 기사는 지난달 19일 치 한 경제지에 실렸다. ‘소득 불평등 대폭 개선… 20년간 격차 27%↓’라는 제목으로 1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여러 꼭지 기사와 사설로 다뤄졌다. 기사의 출처는 ‘20년간 한국의 소득 불평등과 이동성’ 논문이다. 국내 근로자 하위 10% 대비 상위 10%의 소득 배율이 2002년 10.5배에서 2022년 7.6배로 27.4% 감소했다는 내용이다. ‘통념’과 달리 불평등이 크게 개선됐다는 의미가 보태졌다.



논문 공저자 중 한 명인 장용성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준금리를 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의 이름은 논문에 신뢰를 더했다. 한종석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가 함께 썼다. 논문은 기사가 배포된 날 한국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도 발표됐다. 기사로 소개된 논문의 내용은 하나둘씩 재인용 되면서 다른 언론이나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을 통해서 조금씩 더 넓게 퍼져나가고 있다.



기사는 “꾸준히 개선된 소득 불평등, 헬조선 양극화 선동 멈춰야”, “불평등 개선됐는데 ‘헬조선’ 굳어진 이유” 등의 제목을 달고서 유통됐다. 논문을 바탕으로 쓰인 이 기사대로라면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현실 진단은 ‘선동’이라는 얘기다.



장용성 위원과 한종석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쓴 기사는 지금껏 소득 불평등 지형도가 잘못 그려졌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논문과 기사는 아쉬운 대목들이 적잖다.



결론부터 말하면 기사 수준에서 확인한 내용만으로도 이 논문이 갖는 한계가 분명하고 기사가 전하듯 소득 불평등이 크게 개선됐다고 보는 건 무리다.



한겨레

지난 2021년 7월 서울 동작구 흑석동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점심을 마친 한 노동자가 식수통을 들고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논문은 건강보험과 근로소득세를 내는 25~54세 근로자의 소득 통계를 기초로 분위별 배수 등 소득분배지표를 구했다고 한다. 지난 20년간 동일 연령대 근로자의 소득 분배 추이를 파악한 건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근로소득에 한정돼 있다. 근로소득은 전체 소득의 일부다. 소득 불평등을 논할 때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구 소득(가계금융복지조사, 경상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근로소득은 전체 소득의 65%(각종 연금과 수당 등 공적 이전소득을 뺀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했을 때는 근로소득 비중이 더 커짐)를 차지한다. 근로소득 비중이 크지만 나머지 ‘비근로 소득’ 비중 또한 절대 작지 않다. 비근로 소득은 사업소득(17.8%)과 재산소득(6.4%) 등을 말한다. 따라서 근로소득만으로 소득 분배를 살펴보는 데 한계가 있다. 위 논문과 기사는 임금 근로자를 중심으로 봤지만 전체 취업자 가운데 비임금 근로자(자영업자 등)가 23%나 된다. 이들의 주요한 소득 원천은 사업소득이다.



특히 소득 불평등을 논할 때 비근로 소득 가운데 재산(자산)소득을 주목해야 한다. 재산소득은 이자와 배당 등 금융소득과 부동산 임대소득을 일컫는다. 재산소득은 소득 상층부에 집중돼 있다. 이를 반영해야 전체 불평등 지형도를 제대로 그릴 수 있다. 전체의 부분을 이루는 근로소득 분배지표가 개선되더라도 전체 소득의 지표는 거꾸로 악화할 수 있다.



실제 토마 피케티 파리 경제대 교수 등과 함께 세계불평등데이터베이스(WID) 구축에 참여하는 등 국내 최고 불평등 전문가인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이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는 지난해 펴낸 ‘한국경제성장사’에서 “근로소득 내부의 격차는 2010년 이후 다소 줄었지만, 근로소득과 비근로 소득을 합친 전체 소득의 집중도는 계속 높아졌다. 즉, 금융소득을 비롯한 비근로 소득에서의 격차가 현재 불평등의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근로소득의 경우 상위 1% 비중이 1990년대 들어 치솟다가 2010년대 들어 소폭 하락 반전해 전체 소득의 7% 비중을 보인다. 상위 10% 몫도 추세는 비슷하다. 반대로 하위 50%의 비중은 지난 10년 새 꾸준히 늘었다. 근로소득을 갖고서 지니계수(0에서 1 사이 값을 가지며 클수록 불평등)를 구해도 개선된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소득 불평등은 완화했다. 즉 분배 지표가 나아진 것이다. 장 위원 등의 논문을 바탕으로 한 기사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해석에 주의가 필요하다. 김낙년 교수가 쓴 책과 논문(‘한국의 소득집중도: 1933~2016’), 세계불평등데이터를 살펴보면 근로소득과 비근로 소득을 더한 우리나라 전체 소득의 상위 1% 집중도는 8%를 밑돌다가 1990년대 중반 이후 급속히 상승해 2011년 12%에 이른다. 이후 일시 하락하기도 했지만 다시 상승해 2021년 15% 안팎을 기록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비근로 소득 중에서도 배당소득이 근래 빠르게 늘어나면서 (상위 1%의) 소득 집중도를 높인 가장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최근 근로소득 불평등도가 개선되는 추세를 보여왔지만 비근로 소득을 포함한 전체 소득의 불평등은 커져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칫 전체를 무시한 채 부분에 초점을 맞추다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의 말마따나 비근로 소득 가운데 재산소득, 더 좁게는 금융소득이 전체 소득의 불평등을 키우는 힘이 되었다.



자산은 소수에 더욱 집중돼 있다. 소득보다 격차가 크다. 이러한 자산 불평등은 자산에서 발생하는 소득으로 인해 다시 전체 소득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한겨레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런 걸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근로소득만을 갖고서 소득 불평등 개선 여부를 따질 때는 제한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또 장 위원과 한 교수 논문의 아쉬운 대목은 근로소득자를 다 담아내지 못한 부분이다. 대상은 근로소득자 가운데 25살~54살로 한정했다. 현재 13개 나라가 참여한 소득 역학의 글로벌 저장소(GRID, 개방형 국제 데이터베이스)에 우리나라 데이터도 올리기 위해 그 기준에 맞춰 연령대를 제한해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55살 이상 저임금 근로소득자가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갈수록 늘어나는 상황에서 이들을 뺀 채 근로소득의 분배 지표를 논하는 건 한계가 크다.



또 위 논문이 건강보험공단 빅데이터(소득자산 DB로, 주로는 국세청의 과세 자료)를 활용해 시계열 분석을 한 게 의미 있지만 동시에 데이터의 한계 또한 지적된다. 유종성 연세대 한국불평등연구랩 소장 겸 행정학과 교수는 3년 전 다른 저자들과 함께 쓴 논문(’소득분배 연구를 위한 건보공단 빅데이터의 의의와 한계: 서울시 사례연구를 중심으로’)에서 건보 데이터의 문제를 아주 구체적으로 지적했다. 먼저 건보공단 빅데이터실 관계자들의 입을 빌려 2006년 이전 데이터가 ‘다소 불안정’해 분석 기간을 2006년 이후로 권장했다고 적었다. 장 위원 등의 분석 기간(2002~2022년) 초반부 데이터의 불안정이 문제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같은 기간 소득 파악률에 큰 폭의 변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시의 근로소득자가 2006년 성인 인구의 32.4%에서 2018년 44.5%로 증가했다. 이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와 비교해봤을 때 임금근로자의 파악률이 같은 기간 71%에서 92.2%로 늘었기 때문이다. 다만 소득자 파악률의 변화가 근로소득의 분배지표에 어느 쪽 방향으로 영향을 끼쳤는지는 쉽게 말할 수 없다. 유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소득 파악률 변화로 시계열 분석에 어려움이 있다”며 “소득 분배라는 게 어떤 데이터를 갖고서 어떤 방법론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 때문에 전체적인 소득 분배 상황을 보는 데는 건강보험공단 데이터보다 가계금융복지조사가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가 나온 뒤 논문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공저자들과 학회 등에 십 수차례 이메일과 전화, 문자 등으로 연락했으나, 논문을 공유받지 못했다. 저자들은 아직 논문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