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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다시 기업가 정신] 세계 車 시장 흔든 정몽구 회장의 '품질·현장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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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선대회장이 쌀가게부터 시작해 자동차, 건설, 조선산업에 이르기까지 국내 굴지의 기업인 '현대'를 구축했다. 큰 틀에서 현대자동차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보면된다.

정 선대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1990~2010년까지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며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집중했다. 특히 1997년 한국 경제를 강타한 'IMF 사태'에도 기아(당시 기아자동차)를 흡수 합병하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켰다. '품질·현장 경영'의 대명사인 정몽구 명예회장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세계적인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킨 제 2세대 기업가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품질 경영' 전 세계 車 업계 주목

현대차그룹을 세계 자동차 역사상 유례없는 짧은 기간에 글로벌 톱 5로 올려놓은 정몽구 명예회장은 대한민국 재계를 대표하는 경영인으로서, 대한민국 경제와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그의 기업가 정신은 아직도 현대차그룹의 DNA로 작용하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품질경영'은 현대차그룹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현대차·기아는 1990년대 후반만 해도 미국 방송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형편없는 품질로 조롱을 받곤 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품질경영에 총력을 기울여 불과 10년 사이에 이런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 경영을 맡은 1999년 수출현장 점검차 미국을 방문했다. 당시 현대차는 품질문제로 미국 소비자의 리콜요청이 쇄도했다. 충격에 빠진 정 명예회장은 귀국하자마자 글로벌 자동차 품질조사 기관 J.D파워에 품질 컨설팅을 받도록 지시하며 품질 개선에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1999년 현대·기아차의 '품질경영'은 '그레이스 슬라이딩 도어 사건'의 영향이 컸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당시 울산 공장을 갑자기 방문해 조립이 끝난 승합차 그레이스의 슬라이딩 도어를 20여 차례 힘껏 여닫고, 결국 문이 슬라이딩 레일에서 이탈하자 "처음부터 다시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후 현대·기아차는 품질에 문제가 있으면 곧바로 생산라인을 세웠고, 신차 출시도 품질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일정을 연기했다.

이후 정 명예회장은 파격 마케팅을 통해 세계 자동차의 본고장 미국에서 품질을 인정받게 된다. 바로 '10년 10만 마일 워런티(보증수리)'다. '2년 2만4000마일 워런티'가 일반적이던 시절이어서 현대차의 마케팅은 파격적이었다. 시행 초기 토요타·혼다 같은 일본 경쟁사들은 '미친 행동'이라며 현대차를 비웃지만 그 결과는 대성공했다. 일본차들도 현대차를 따라 품질보증 수위를 높이기에 이르렀다. 급기야 2004년에는 '쏘나타'가 미국 J.D파워 품질조사에서 일본 토요타를 제치는 쾌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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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경영'으로 세계 시장으로 영토 확장

제품의 품질에 자신감을 얻은 정 명예회장은 전 세계로 영토 확장에 속도를 높였다. 현대차그룹의 글로벌화하는데 정 명예회장은 선두에서 임직원을 이끌었다.

정 명예회장은 '현장 경영'을 통해 안정적인 글로벌 생산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고 수많은 자동차산업 위기에도 현대차그룹이 생존하고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정 명예회장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해외공장 건설에 대한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으로 미국, 유럽, 중국,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 아프리카를 제외한 전 대륙에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해 고도 성장과 위기에 강인한 체계를 창출했다.

전 세계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도 확립하고, 전 세계를 발로 뛰며 현장에서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현장경영을 펼쳤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미국과 유러브 중국 등 주요 시장은 물론 신흥 시장까지 빠른 속도로 생산기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정 명예회장 체제 하에서 개발한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이 꼽한다. 전세계 공장에서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기에 시장이 필요로 하는 시점에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다.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현대·기아차 거점의 생산품질과 시장 상황을 점검하는 '현장경영' 역시 정몽구 리더십의 특징 중 하나였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 따른 글로벌 자동차시장 위축 당시 여러 차례 유럽을 찾아 "위기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유럽에서 길을 찾으면 글로벌 시장의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다"며 임직원들을 독려했다.

일본 업체들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고 반격에 나서 2012년에는 미국을 찾아 "경쟁업체들의 물량공세나 할인공세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까지 현대차·기아가 지속해온 '제값 받기' 정책을 통한 경영 내실화 강화로 대응하라"고 주문했다.

2016년에는 러시아, 슬로바키아, 체코, 미국, 중국 등 한 달여 사이에 5개국을 오가는 강행군을 펼치며 왕성한 열정을 과시하기도 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이 3개월 간 현장 경영을 위해 이동한 거리만 4만400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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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인재 영입 '승부수'

현대차그룹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순혈주의' 전통이 강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이같은 인사 정책을 과감하게 버렸다.

2000년대 초반 전 세계 시장에 기술력을 입증하며 회사 브랜드를 끌어올린 정 명예회장은 발빠르게 시장의 흐름을 파악하고 미래 먹거리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정 명예회장이 현대차·기아를 이끈 이후 최초로 글로벌 인재를 영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는 전 세계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단순히 이동수단이 아닌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 한다는 것을 미리 감지하고 디자인 강화에 나선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BMW의 크리스 뱅글, 아우디의 월터 드 실바와 함께 유럽 3대 자동차 디자이너에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를 2006년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예감은 적중했다.

기아차는 2006년 피터 슈라이어의 영입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기아차는 제대로 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구축하지 못했으나 피터 슈라이어는 이른바 '호랑이 코 그릴'을 통해 패밀리룩을 탄생시켰다. ▲깔끔한 외관이 돋보이는 K3 ▲수입차를 연상케하는 K5 ▲강인한 외관이 인상적인 K7 등이다. 그의 부임 후 기아차는 '레드닷 디자인상'을 5년 안에 무려 10개의 차종에서 수상했다.

그러나 정 명예회장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벤틀리 전 수석 디자이너 출신의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 루크 동커볼케 현대디자인센터 수장(전무급)으로 영입했다. 그는 내년 상반기부터 일하게 된다. 벨기에 출신인 동커볼케는 23년간 자동차 업계에서 일해왔다. 최근에는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독일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3회, '올해의 유럽 디자이너상' 15회 등을 수상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동커볼케는 내년 상반기 현대차에 합류해 제네시스 및 현대차 디자인을 이끌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지휘봉을 잡을 당시 계열사 10개, 자산 34조원을 보유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이끌면서 현대차그룹은 2020년 계열사 54개, 자산 248조원을 보유한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성장했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역사를 이끈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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