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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중국 ‘기술 굴기’ 어떻게 가능했나? ‘리프프로깅’ 속도…신산업 진출 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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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민간 주도 전략 조화 ‘레벨업’


국가 핵심 과학 기술 분야에서 우리나라 기술 수준이 처음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가운데, 중국이 ‘기술 굴기’를 이룬 과정이 새삼 주목받는다. 중국은 국가 주도 외생적 성장 전략과 민간 부문 경쟁을 기반으로 한 내생적 성장을 접목해 빠른 속도로 기술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는 게 다수 전문가 진단이다.

외생적 성장 주춧돌

질적 도약 패러다임 전환

전문가들은 중국이 크게 국가 주도 외생적 성장 전략과 민간 주도 내생적 성장 전략 조화로 기술 발전 속도를 크게 끌어올렸다고 진단한다.

외생적 성장은 경제 성장 중요 요인 중 하나인 기술 충격을 외부적 요인으로 간주한다. 국가 주도로 기술 전략 범위와 방향 등을 설정하고 인프라 조성에 주력하는 게 외생적 성장 전략에 속한다. 내생적 성장은 기술 변수도 경제 주체 변화 과정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내생 변수로 간주한다. 민간 혁신 기업이 인적 자본 축적과 경쟁을 기반으로 기술 진보를 이뤄내 내재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게 내생적 성장 전략이다.

노무현정부 초대 정보과학기술 수석보좌관을 지낸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는 “후발국에서 시작해 선진국을 추격한 나라는 예외 없이 내생적 성장과 외생적 성장을 함께했다”며 “중국 역시 자유 시장에 의한 내생적 성장 위에 정부 정책에 의한 외생적 성장을 통해 경제를 성장시켰다”고 진단한다.

외생적 성장 주춧돌이 된 전략은 2011년 내놓은 ‘12차 5개년 경제계획(2011~2015년)’과 2015년 발표한 ‘중국 제조 2025’다. 중국은 ‘12차 5개년 경제계획’ 때부터 기업은 물론 국가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중국 전문가들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도약으로 실질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이뤄진 시기를 이때로 본다.

이때부터 중국은 ‘신창타이(뉴노멀)’ 구호를 내걸고 첨단 산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했다. 반도체 산업 육성 펀드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조성이 대표적이다. 이 기금 최대주주는 중국 재정부로 전체 지분의 17.4%를 보유한다. 주식유한공사 형태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가 직접 운영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시각이다. 최근 중국 정부는 1차 26조원(2014년), 2차 38조원(2019년)에 이은 세 번째 투자로 64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다.

기금 조성과 맞물려 중국 정부가 지난 2015년 내놓은 하이테크 산업 육성책 ‘중국 제조 2025’ 전략도 한 축을 이룬다. 주요 산업에서 핵심 부품과 재료 자립화율을 2020년 40%, 2025년 70%로 높이는 게 뼈대다.

중국 특유의 탄탄한 기업 인프라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테스트베드로 든든한 내수 시장을 등에 업은 데다 주 52시간 근무 시간 규제 등에 구애받지 않고 연구할 이공계 인재가 넘쳐난다. 네거티브 규제를 중심으로 한 규제 완화, 중간 기술 단계를 뛰어넘는 ‘리프프로깅(Leapfrogging)’ 전략, 유니콘 기업 육성 등도 정부 주도 외생적 성장의 주된 축을 이룬다.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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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혁신 마중물

‘중국 관성’ 갇힌 한국은 헛발질만

이 같은 외생적 성장 전략은 민간 주도 내생적 성장을 촉진하는 마중물이 됐다는 평가다. 법과 규정에 허용된 것 외에는 모두 금지하는 포지티브 규제와 달리, 네거티브 규제를 산업 전반에 폭넓게 도입함으로써 민간 기업의 신규 산업 진출과 기술 개발을 가속시켰다. 신산업 진출 물꼬를 확 트여줘 치열한 경쟁을 통한 기업 진출입이 활발해졌단 평가다.

신용카드 결제를 건너뛰고 모바일 방식으로 직행한 것은 리프프로깅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은 모바일 기반 QR코드 결제 시스템에선 세계적으로 앞섰다. 알리바바그룹은 모바일 결제 알리페이를 기반으로 보험·대출·인터넷은행 등으로 사업 다각화를 일궜다.

반도체 등 첨단 산업에서도 리프프로깅 전략이 활발하다. 미국과 패권 갈등은 이런 전략을 오히려 가속화시켰다. 중국 반도체 기업은 SiC(탄화규소)·GaN(질화갈륨) 등 차세대 전력반도체 투자에 힘을 쏟는다. SiC·GaN은 기존 실리콘 기반 반도체보다 고온·고전압 내구성, 전력효율 등이 뛰어나다. 두 종류 이상 원소로 이뤄져 있어 ‘화합물반도체’로도, 이전보다 진보된 반도체라는 의미에서 ‘3세대 반도체’로도 불린다.

다만, 아직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아직 3세대 반도체 제조용 핵심 장비를 유럽 등 외국 기업에 의존하고 있고, 소재 부문 역시 만족할 만한 품질을 구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산업계에서 고순도를 요구하는 전력반도체, RF(무선통신) 등에는 미국, 유럽 제품이 주로 활용된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은 정부 주도 외생적 성장은 물론 민간 부문에서도 ‘한 수 아래’라는 ‘중국 관성(China Inertia)’에 갇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단 지적이 들끓는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10월 ‘국가 첨단전략산업 육성 정책 현황·계획’ 등을 내놨지만 산업계 반응은 미지근했다. 미국 같은 통 큰 보조금 지급이나 중국처럼 입이 딱 벌어질 수준의 파격적인 규제 완화도 담기지 않았던 탓이다. 그 결과, 세계 시장에서 2차전지는 중국 CATL이 K배터리 합산 점유율을 압도하는 ‘중국 천하’가 됐다.

액정표시장치(LCD) 1위 자리를 뺏긴 이후 사활을 걸었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시장도 ‘중국 천하’가 될 처지다. 시장조사 업체 시노리서치에 따르면, 올 1분기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은 세계 중소형 OLED의 53.4%(출하량 기준)를 점유했다. 지난해 4분기(44.9%)보다 8.5%포인트 상승했다.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등 한국 점유율은 지난해 4분기 55.1%에서 올 1분기 46.6%로 줄었다. 중국이 중소형 OLED 시장에서 한국을 추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간 부문 경쟁 전략도 ‘한 수 아래’라는 과거 프레임에 사로잡힌 ‘중국 관성’ 탓에 패착을 초래한 사례가 적지 않단 진단이다. 한국 배터리 기업이 LFP를 간과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된다. 한국 배터리 기업은 하이니켈 등 프리미엄 시장을 먼저 잡은 뒤 LFP 등 ‘로우엔드(가격이 저렴한 상품)’ 시장까지 침투하겠다는 전략이었으나, 정작 시장 선택을 받은 기술은 LFP였다. 중국 CATL, BYD는 ‘셀투팩(Cell to Pack·CTP)’ 제조 혁신을 통해 LFP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 셀투팩은 모듈을 생략하고 셀을 바로 팩에 조립하는 기술이다. 이를 발판 삼아 중국 기업은 로우엔드는 물론 하이엔드까지 치고 올라오는 전형적인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으로 한국 기업을 위협하고 있단 분석이다.

한 산업계 관계자는 “과거 소니 등 일본 기업 역시 기술의 단순한 속성에만 주목해 하이엔드 기술 개발에 집착하는 경직성이 두드러졌는데, 최근 한국 기업도 이런 행태가 엿보인다”며 “시장의 기술 선택 메커니즘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64호 (2024.06.19~2024.06.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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