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0 (목)

‘이탈리아 삼각산’아, 우리가 왔다…모두 멈춰선 비수기에 뚜벅뚜벅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이탈리아 돌로미티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트레 치메를 영접한 기쁨을 점프로 표현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자유여행이란 무엇인가.



패키지여행의 반대말인가. 여행사를 끼지 않고 가면 자유여행인가. 자유는 또 무엇인가. 동행인들과 사전에 정한 일정과 규칙을 성실히 따라야 한다면 그것도 자유라 할 수 있는가. 자유여행이란 말 그대로 울타리를 벗어나 목초지 소들처럼 풀맛 따라 오가는 것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지난달 친구들과 다녀온 이탈리아 돌로미티 휴가는 그야말로 자유여행의 ‘스피릿’이 충만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우리의 목표가 자유여행 그 자체는 아니었다. 친구들과 내가 모두 창의적이고 낭만적인 성향의 ‘인프피’(INFP)였으며, 여행을 결심하자마자 항공권을 예약한 것이 야심한 술자리에서 일어났다는 것. 엠비티아이(MBTI)와 와인은 그렇게 만나 자유여행을 낳았다.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예전부터 이탈리아 돌로미티 트레킹이 꿈이었다. 기암괴석으로 가득 찬 곳. 금강산을 120개쯤 모은 것 같은 장관. 알프스에 속해 있다고는 하는데 몽블랑이나 마터호른 같은 만년설 알프스와는 전혀 다른 느낌. 봉우리로 정교한 장신구를 만들어 한데 모은 거대한 산악 박물관이랄까. 돌로미티 얘기를 꺼내자 친구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그럼 우리 가볼까?”



대화는 이어졌다.



“가려면 상반기에 가는 게 좋지?”



“그럼그럼, 그게 좋지.”



“여름 휴가철은 붐비니까 일찍 갔다 올까?”



“그래그래, 그게 좋겠다.”



“그럼 휴가 시즌 전달인 5월로 잡을까?”



“그래그래, 아주 좋아.”



“이왕 얘기 나왔으니까 지금 바로 항공권 끊을까?”



“그래그래, 그러자.”







베네치아에 울려 퍼진 아리랑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후다닥 베네치아행 티켓을 샀다. 그러곤 새해를 맞았다. 3월쯤 되자 일정을 짜고 숙소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슬금슬금 들었다. 아뿔싸. 우리들이 돌로미티에서 머무는 5월19~26일엔 모든 산장이 휴업이었다. 트레킹 시작 지점으로 가는 케이블카·리프트도 거의 운행되지 않았다. 우리가 가는 시기가 마침 비가 많이 오는 시즌이라는 건 연일 비를 맞고서야 알았다.



“괜찮아, 괜찮아. 산장 없어도 트레킹은 할 수 있지. 구파발에 방 잡고 하루는 북한산, 하루는 도봉산 다녀오듯 하면 되잖아.”



뒤늦게 합류했으나 탐구심이 강한 친구 ㄱ이 총대를 메고 돌로미티 일정 짜기에 나섰다. 갖가지 유튜브를 훑고 인터넷을 뒤지더니 이탈리아 관광청 한국 사무소에 이메일을 보내 현지 주민들도 잘 몰랐던 케이블카 운행 스케줄 및 몇가지 중요한 정보를 챙겼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일정을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눴다. 베네치아 1박, 돌로미티 동부 3박, 돌로미티 서부 3박. 동부와 서부의 베이스캠프는 각각 코르티나담페초, 모에나라는 소도시에 차려질 예정이었다. 숙소에서 트레킹 출발 지점까지 오가기 위해 렌터카도 예약했다. ㄱ은 어차피 차가 있으니 우쿨렐레도 가져가자고 했다. 친구 ㄴ은 2월 내 생일날 우쿨렐레를 선물했었고, 나는 간단한 레슨을 받으며 떠듬떠듬 현을 뜯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래그래, 그러지 뭐.”



두바이 공항에서 장시간 환승 대기를 하며 21시간 만에 도착한 베네치아. 지난해 베네치아를 다녀온 지인은 곤돌라(운하 위를 다니는 뾰족한 모양의 배)를 강추했었다. “곤돌라를 타면 호사스러운 기분이 든대. 비싸도 타보라고. 곤돌라 어때?” 당연히, 이견이 없었다. “그래그래, 곤돌라 타자.”



하필 베네치아 메인스트리트인 대운하 일대에선 곤돌라·카약·보트 및 각종 ‘생활선박’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우리로 치자면 마포구 주최 주민 달리기 행사쯤 될까. 곤돌라 운행이 시작되는 오후 3시까지 우리는 좀 돌아다니다가 거리 음식인 문어꼬치와 오크라구이와 맥주를 사서 캄포(소광장) 분수대에 앉아 먹고 마셨다. 25분에 90유로(약 13만원). 비싸지만 타는 게 옳다. 곤돌라는 미로 같은 운하의 잔잔한 수면을 매끄럽게 움직였다. 파랑·연두·초록색이 뒤섞인 물길, 오랜 시간에 발효된 듯한 파스텔톤의 건물들,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물결에 흔들렸다.



한겨레

베네치아에서 곤돌라에 올라 우쿨렐레 반주로 ‘아리랑’을 불렀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어로 ‘해피’(happy)가 뭐예요?” 곤돌라 뱃사공은 답했다. “펠리체”(felice). 펠리체에 겨워 우쿨렐레를 꺼냈다. 구슬프지만 우아한 한국 전통 리릭을 연주하며 노래 불렀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외국인 관광객들은 연주하고 노래하는 우리를 쳐다보며 사진을 찍어댔다. 다행히 한국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4시간 걸으니 쩍쩍 갈라진 봉우리가





베네치아에서 2시간30분가량 자동차로 달려 코르티나담페초라는 곳에 도착했다. 베네토주 벨루노현의 인구 6000명 정도 작은 규모지만 1956년에 이어 2026년에도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겨울스포츠의 메카다. 돌로미티에서의 트레킹 첫날(5월20일) 아침 호텔 창문을 내다보니 눈이 번쩍 뜨였다. 전날 자정께 숙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인사 나눌 겨를이 없었던 산 ‘몬테 크리스탈로’가 아침 햇볕을 받으며 우뚝 서 있었다.



이날 빼곤 앞으로 계속 날씨가 궂을 거라는 예보가 있어 일단 ‘트레 치메’(세 봉우리란 뜻)에 가기로 했다. 내가 돌로미티에 끌린 것은 2년 전 북한산 자락 아래로 이사온 뒤 봉우리에 관심을 가지면서였다. 중생대에 솟아오른 화강암 덩어리인 북한산은 백운대·만경대·인수봉 세 봉우리가 유명해 삼각산이라고도 불린다. 한국의 삼각산에서 왔으니 당연히 이탈리아 삼각산에 안부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처럼 돌로미티 사람들도 삼각봉에 대한 사랑이 각별한 듯했다. 호텔 벽, 식당 벤치 등 곳곳에 ‘피콜라·그란데·오베스트’ 세개 봉우리가 그려져 있었다.



보통 6월부터 시작되는 트레킹 시즌엔 아스팔트로 포장이 된 아우론초 산장까지 자동차로 간 뒤 트레 치메 주변을 한바퀴 돌며(서너시간 걸린다) 트레 치메가 가까이 보이는 동굴에 들어가 인생샷도 찍고 그런다는데…. 우리는 아우론초 산장 아래 6㎞ 지점에 차를 두고 가야 해서 걷는 거리가 확 늘어났다. 돌로미티는 어디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 빼어난 자태라서 사진에서 본 트레 치메 같은 장관이 한두군데가 아니었다. 봉우리가 연이어 있는 것만 보면 ‘이게 트레 치메인가 보다’ 하며 사진을 막 찍다가 좀 더 나아가면 또 다른 장관이 펼쳐지며 혼란을 가중시켰다.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나 눈 덮인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 뒤에야 도저히 트레 치메가 아닐 수 없는, 너무나 명백한 위엄을 갖춘 세 봉우리 앞에 이르게 됐다. 중생대 바다 아래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져 융기한 퇴적암은 오랜 비바람에 세로로 쩍쩍 갈라져 거칠고 황막한 기운을 내뿜었다. 해발 2400m쯤 되는 언덕마루에선 어린 독수리가 트레 치메를 배경으로 검은 날개를 펼쳐 활공을 연습하고 있었다. 우리도 펄쩍 뛰어올랐다. 날개는 없지만 카메라의 연사 기능에 힘입어 찰나의 체공 시간을 영원으로 박제했다. 눈밭에서 뛰면서 한참 깔깔대다 보니 벌써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트레 치메를 한바퀴 도는 건 재빨리 포기하고 즐겁게 하산하기로 했다. 걸어가면서 친구의 우쿨렐레 반주에 노래를 같이 불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그대의 머릿결 같은/ 나무 아래로….” 고요한 계곡길에 웃음이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한겨레

요정의 전설이 내려오는 신비로운 호수 카레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트레 치메 다녀온 첫날 빼곤 모든 아침이 젖어 있었다. 우리는 비가 조금 내리면 트레킹을 하고 많이 내리면 호수를 보기로 했다. 결과적으론, 호수 구경을 실컷 했다. 안토르노·미수리나는 슥 지나쳤고, 브라이에스·도비아코·란드로·카레차에선 제법 오래 시간을 보냈다. 미인대회에서 ‘진·선·미’ 뽑듯, 돌로미티에도 ‘3대 호수’(카레차·브라이에스·소라피스)가 있다는데, 가장 인상적인 곳은 카레차 호수였다. 해발 1500m대에 있는 카레차는 늙은 왕이 호수에 사는 아름다운 요정의 환심을 사려고 갖가지 보물을 준비했다가 수포로 돌아가자 모두 물에 쏟아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초록빛 맑은 물 아래 작은 돌이 신비롭게 반짝인다. 청명한 날엔 난쟁이 왕 ‘라우린’의 슬픈 전설이 담긴 로젠가르텐 산군이 호수 위로 위용을 드러낸다고 했지만 우리가 간 날은 비를 머금은 구름이 꽉 차 어느 봉우리도 보이지 않았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차에 오르려던 중 누군가 화장실에 들르겠다고 해서 10여분 지체하게 됐는데… 갑자기 날이 개며 로젠가르텐 봉우리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나는 날씨 요정이거든.” 내내 우비를 입고 있던 친구 ㄷ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알프스 하면 초원 아니겠는가. 우리가 마음먹고 찾은 초원은 돌로미티 서부 트레킹의 중심지 오르티세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는 알페디시우시였다. 딱 컴퓨터 윈도 바탕화면에서 떠온 것 같은, 알프스 일대에서 아름다운 고원으로 이름난 장소다. 이곳 역시 맑은 날엔 사소룽고 연봉의 장관이 펼쳐지는 곳이지만 우리 발밑엔 연무에 휩싸인 아득한 푸른 초원만 깔려 있었다. 하지만 어떠랴. 초록 언덕은 부드럽게 물결치며 이어지면서 우리를 불렀다. 젖은 풀밭엔 질퍽한 소똥이 점점이 흩어져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ㄷ은 소똥 없는 자리를 골라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요가를 시연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북한산과의 재회





한겨레

돌로미티 서부의 아름다운 산간 마을, 푈스암슐레른의 전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명한 알페디시우시보다도 우리의 마음속에 남은 초원은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우연히 방문한 마을이었다. 본래는 돌로미티 서부의 중심 도시인 볼차노로 가려다가 내비게이션의 오락가락 안내로 ‘푈스암슐레른’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잠시 하늘이 활짝 갰다. 마을을 둘러싼 실리아르산에 늦은 오후 햇살이 꽂혀 황금색으로 빛났다. 주민 5000명 정도 된다는 이 작은 마을 언덕 꼭대기엔 12세기에 세워진 작은 교회가 있었다.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 나무들이 울창한 이 산에/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 산새들이 즐거이 노래해….” 우쿨렐레를 어깨에 걸고 어릴 적 배웠던 독일 남부 민요를 노래하며 언덕에 오른 순간, 풀 뜯던 소들과 눈빛이 딱 마주쳤다. 10여마리가 동작을 딱 멈추고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소들은 ‘클래식’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이들이야말로 이탈리아에서 만난 가장 진지하고 점잖은 청중이었다.



한겨레

‘악마가 사랑한 풍경’이라고 불리는 세체다의 풍경.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맛있는 걸 먹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워낙 멋진 장소가 많았기 때문에 곳곳에서 발길을 멈추고 친구들에게 ‘영상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곳은 ‘악마가 사랑한 풍경’이라는 별명이 붙은 ‘세체다’라는 곳이다. 트레킹 시즌엔 코앞까지 가는 케이블카가 운행하지만 우리는 ‘산타크리스티나’라는 마을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콜 라이저’라는 지점에 내려 2시간쯤 걸어 세체다에 이르렀다. 바늘처럼 뾰족뾰족 봉우리가 솟아 있고, 커다란 땅덩어리는 폭풍우 속 파도처럼 날키로운 예각으로 솟구치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뚝 떨어졌다. 세체다는 라틴어로 ‘메마른’(siccus)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형이 워낙 역동적이다 보니 황야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대지의 고동이 들린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경이로운 지구과학적 아름다움을 마주하자 가족들이 생각났다. 13살 막내 조카부터 82살 아버지까지 목소리 높여 11명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알프스의 낯선 대지에 한국 아무개들의 이름이 내려앉았다. “여러분 모두 사랑해요, 곧 만나요~.”



일주일 동안 돌로미티의 장관에 넋을 잃고 지내다 한국으로 돌아오는데, 슬며시 걱정이 일었다. 돌로미티 봉우리들에 눈이 너무 높아져서 북한산이 시큰둥해지면 어쩌나 싶었던 거다. 하지만 잡걱정이었다. 집이 가까워지는데 화강암 봉우리들이 황혼의 빛 속에 번쩍이고 있었다. 그렇지, 평균 해발고도 38m의 서울에서 바라보는 백운대(836m)가 1200m대 고원에서 만난 2000~3000m대 봉우리들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나. 아니, 높이가 뭐가 중요하겠는가. 늘 바라볼 수 있는 곳, 오르고 싶어 열망하는 곳이 바로 곁에 있는데. 나도 돌로미티 남티롤 사람들만큼 행복하지 않겠는가.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한 영국인 스티븐 페이브스는 ‘발견의 여행’(강병철 옮김, 위고 펴냄)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은 세상에 대해 아는 만큼만 자신에 대해 알기 마련이다. (…) 다른 곳을 봄으로써 다른 장소에 익숙해짐으로써 고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이 속한 문화는 다른 문화에 비춰볼 때 깊이와 가치와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다. 다른 문화야말로 당신의 문화에 가장 밝고 가장 깊이 파고드는 빛을 비추기 때문이다.”



‘문화’를 봉우리·동네로 바꿔도 페이브스는 동의할 거라고 생각한다. 돌로미티는 북한산이 주는 일상의 기쁨을 더욱 새롭게 만든다.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의상봉, 용혈봉, 용출봉, 증취봉, 나월봉, 문수봉, 보현봉…. 매일 아침 북한산 봉우리를 헤아리며 출근하는 건 커다란 축복이다.



하지만… 북한산을 보면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삼각봉이 아른거린다. 다음엔 좀 더 잘 알아보고 돌로미티 트레킹 시즌에 맞춰 비행기표를 끊어야겠다.



돌로미티/글·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