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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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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로 손 찔렀는데 징역이 3년? 배심원 돼보니 이해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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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참여재판 체험해보니

조선일보

국민참여재판. /조선일보 DB


지난 12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303호. 형사합의 11부(재판장 배성중)는 특수상해 혐의로 구속된 한국계 미국인 최모(45)씨의 국민참여재판(배심원 재판)을 심리했다. 최씨는 지난 1월 1일 오후 7시 10분경 서울 마포구 거리에서 일면식 없는 남성의 손을 흉기로 찌른 혐의를 받는다. 기자는 이날 평결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 ‘그림자 배심원’(배심원 체험 과정)으로 재판 과정에 참여했다.

최씨는 지난 1월 1일 피해 남성의 손을 칼로 찔러 약 10cm 열상을 입혔다. 인근 감시 카메라에 한 남성이 피해자를 기다렸다가 흉기를 휘두르는 장면이 포착됐다. 이후 최씨는 경찰이 도착하기 전 범행 현장에서 약 70m 떨어진 게스트하우스로 도피했다. 쟁점은 이 장면에 나온 용의자가 최씨와 동일인이냐였다. 최씨는 “합정역 인근 마트에서 구매한 과도를 소지하고 피해자와 실랑이를 벌인 것은 맞지만 찌른 사람은 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피해자의 피가 묻은 칼, 범행 직전 최씨의 휴대전화에서 발견한 피해자의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하며 최씨가 감시 카메라에 찍힌 용의자가 맞다고 했다.

의구심이 드는 증거가 보일 때마다 배심원들은 송곳 질문을 던졌다. 한 배심원은 “검찰이 말한 용의자가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간 시각과 증거로 제시한 감시 카메라 영상에 적힌 시각이 다르다”며 설명을 요청했다. 검찰 측은 “컴퓨터 성능 문제로 인해 일반 상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시각과 실제 시각은 차이가 있기도 한다”며 “영상을 확보하면서 실제 시각과 감시 카메라 시각을 대조한 사진이 있다. 대략 10분 정도 차이가 난다”고 답했다.

재판장은 “검사가 모든 사실을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을 정도로 100% 완벽하게 증명 못 했더라도, 피고인이 유죄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로 입증됐다면 유죄를 평결해야 한다”고 했다. 배심원들은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심리가 진행되면서 각종 쟁점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이날 배심원 7명 전원은 피고인이 유죄라고 평결했다. 배심원 6명은 징역 3년을, 1명은 징역 5년을 권고했다. 재판부는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최씨 범행에 대해 “죄질이 무겁다”며 “피해자가 정신적·신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나 피고인은 피해자의 피해 회복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배심원 정모(37)씨는 “뉴스를 보면 생각보다 형량이 낮아 의구심이 드는 판결이 많았는데, 직접 앙형 의견을 내보니 생각보다 기준이 세세했다”고 했다. 실제 이날 배심원들에게 배부된 ‘양형 토의 참고 자료’에 적힌 양형 인자는 26항목. 양형위원회는 특수상해 혐의의 징역 기간으로 보통 6개월~2년을, 감경 및 가중 요소에 따라 최소 4개월에서 최대 3년까지를 권고한다. 양형 기준은 원칙적으로 구속력이 없다. 다만 법관이 양형 기준을 이탈하는 경우 판결문에 그 사유를 별도로 써야 한다. 합리적 사유 없이 벗어나긴 어려운 기준이다. 정씨는 “제출한 증거가 명확했기에 나는 징역 5년 의견을 냈다”고 했다.

그림자 배심원은 정식 배심원과 마찬가지로 재판의 전 과정을 참관한 후 유·무죄에 관한 평의·평결과 양형 의견을 낼 수 있다. 정식 배심원은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되는 데 비해 그림자 배심원은 법원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2010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 판단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기 위해 활성화하면 좋을 제도”라며 “미국 배심원은 유무죄만 판단하지만 한국의 배심원은 양형도 하기에 법에 대한 관심도와 법리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강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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