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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2 (토)

기업이 원하는 내용 가르쳐 … 농업강국 비결은 '현장 실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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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네덜란드 드론턴에 위치한 에레스(AERES) 본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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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에서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10분을 달리자 소도시 드론턴이 나타난다. 여기에는 네덜란드 최고의 농업교육기관인 에레스(AERES)가 운영하고 있는 응용과학대학(HBO) 캠퍼스가 위치하고 있다.

학교 본관으로 가기 전에 먼저 에레스가 자랑하는 실습장으로 향했다. 실습장 건물 입구에는 '농업 혁신 센터(Agri Innovation Center)'라는 푯말이 분명하다. 실습장 관리자가 대형 창고 건물 안에서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데, 대형 트랙터가 굉음을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설명이 중단된 사이 키가 훤칠한 청년이 트랙터에서 내렸다.

옐르 토크트라는 이름의 18세 청년으로 이 학교의 1학년 학생이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데 의외로 엘리트 출신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상위 20% 안에 들어야 갈 수 있는 최상위 중등학교(VWO) 출신이라고 했다. 이 학교 출신들은 대개 바헤닝언대와 같은 연구 중심 대학(WO)으로 진학하는데 이 학생은 특이하게 농업을 전문으로 배우는 HBO로 입학한 것이었다.

토크트 학생은 "미래 직업을 농업 분야에서 찾기 위해 에레스의 HBO로 입학했다"며 "오늘은 트랙터를 이용해 농작업을 하는 방법을 실습하며 배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 앞으로 농사를 짓고 싶은 거냐고 묻자 그는 "솔직히 평생 트랙터를 몰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며 "농업 경영 쪽을 열심히 공부해 졸업한 뒤 농업 관련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했다. 네덜란드에서 인기 직종으로 통하는 농업 컨설턴트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네덜란드에서 최고의 실무 농업교육기관으로 통하는 에레스는 HBO를 정점에 두고 운영된다. 바로 아래에는 고등직업학교(MBO)가 있고, 그 아래 중등직업학교(VMBO)를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만 4세부터 시작하는 8년간의 초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면서 직업계 학교로 진로를 선택하면 VMBO로 진학해 4년을 배운다. VMBO 졸업 후 바로 사회 생활을 시작할 수도 있지만 많은 학생들이 다시 4년간의 MBO로 진학해 추가적인 직업교육을 받고 사회로 나간다. MBO 졸업 이후에 전문학사 학위까지 받고 사회로 진출하려면 HBO로 진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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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스(AERES)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낙농 관련 실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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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스는 네덜란드 드론턴과 바헤닝언, 알메러 등 3개 도시에서 HBO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3개 HBO 학생 수는 4000명 정도다. 이를 포함해 MBO와 VMBO를 합치면 에레스가 보유하고 있는 캠퍼스는 네덜란드 전역에 24곳에 달하며, 여기서 공부하는 학생 수는 1만5000명, 교직원 수는 2400명에 달한다. 농업교육기관으로는 네덜란드 최대이자 최고의 역량을 자랑한다.

네덜란드의 대학은 실무 중심의 HBO와 함께 연구 중심의 WO가 있다. 네덜란드 최고의 농업대학으로 통하는 바헤닝언대가 바로 WO다. HBO가 WO와 다른 점은 기간과 교육 내용이다.

HBO는 학부 3년간 전체 교육 커리큘럼의 절반 가까이를 실용교육으로 채우고, 졸업후 바로 취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WO는 학부 4년 과정에 커리큘럼이 연구 중심으로 설계돼 있고, 석박사 과정을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연구를 진행한다.

이처럼 네덜란드에서 농업 분야 최고의 HBO, MBO, VMBO를 운영하고 있는 에레스는 실습교육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학생들이 농장 일을 하면서 배울 수 있는 충분한 실습장을 보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학생이 직접 농장 운영에 책임을 지고 학교 측과 수익을 배분하기도 한다. 나타샤 마리스카 스파아르가렌 에레스 국제교류협력관은 "실습에 강점이 있다 보니 에레스 HBO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98%에 달한다"며 "대부분 졸업하기 전에 이미 일자리를 구한다"고 전했다.

에레스 교육 방식의 장점은 일방통행식이 아니라 상호 소통을 중시한다는 점이다. 모하마드 알 하산 에레스 교수는 "학생들은 교수가 시키는 것만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외부 기업과의 협업을 추진한다"며 "연구 제안서를 스스로 작성하고 팀을 이뤄 문제를 해결하면서 역량을 키우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에레스는 단순히 농업기술을 가르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네덜란드 농업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인 기업가정신과 마케팅 역량을 많이 가르친다. 알 하산 교수는 "에레스에서는 작물 재배법만을 배우는 게 아니라 수확 전 관리, 수확 후 물류와 유통, 그리고 농산물에 대한 첨단 저장기법 등을 두루 배운다"며 "졸업 후 택할 수 있는 직업군이 원예 컨설턴트, 원예 연구자, 종자회사 영업직, 농업회사 관리자 등 다양하다"고 말했다. 특히 세계화 전략에 강점이 있어 전체 학생의 10%는 해외 25개국 학생으로 구성돼 있다.

에레스는 농업인만이 아니라 농업교사를 양성하는 역할도 한다. 바헤닝언에 위치한 에레스 HBO 캠퍼스가 주로 농업교사들을 양성하는 학교다. 이곳을 졸업한 학생들이 농업학교 교사로 가게 된다. 스파아르가렌 협력관은 "에레스가 많이 투자하고 있는 부분 중 하나가 바로 교육 설계"라며 "교육 설계에 많은 투자를 하는 이유는 시장과 기업, 즉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도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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