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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지은지 46년 된 국립대병원, 환자는 오늘도 미로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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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난 3일 오후 2시께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 7동 1층 순환기내과 진료실 앞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환자들은 검사를 위해 진료실에서 50m 떨어진 본원 건물까지 가야 한다.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동선 탓에 일하는 의사들마저 전남대병원을 ‘미로’라고 부른다. 사진 전남대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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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자분, 검사받으러 모셔갈게요.”



지난 3일 오후 2시께 광주 동구 전남대학교병원 7동 1층 순환기내과 진료실 앞. 한 환자가 진료를 마치자마자 병동 밖으로 나선다. 채혈과 컴퓨터 단층촬영(CT)까지 한꺼번에 하려면 50m 떨어진 본원 건물까지 가야한다. 심장·혈관 질환으로 이곳을 찾은 환자들은 거친 숨을 내시며 9개 동 사이를 헤맨다. 심장 수술은 심장센터가 있는 7동이 아닌 1동 3층에서 받는다. 수술 뒤엔 다시 7동을 지나 8동까지 이동한다. 8동은 건물 구조 탓에 주로 외상환자 수술에 쓰이고 있어서다.



12층 짜리 전남대병원 본원 건물은 1978년 준공됐다. 전국 국립대병원 주요 진료 병동 중 가장 오래됐다. 병상과 환자가 늘면서 정부 예산이 확보될 때마다 8개 병동을 추가로 세웠다. 예산이 언제 얼마나 배정될지 몰라 새 병동 건축 때 환자·의료진 동선 등은 고려할 수 없었다. 이 곳이 ‘미로’가 된 이유다. 응급·중증환자 치료에 복잡한 동선은 걸림돌이다. 전남대병원은 광주·전남 지역 상급종합병원 세 곳 가운데 하나다. 한시가 급한 환자들마저 침상에 실려 미로를 오가야 한다. 의료진이 외상이 아닌 8동 응급실 환자를 수술하려면 1동 수술실까지 옮겨야 한다. 건물 구조때문에 수술실을 늘리기도 어렵다. 대외협력실장인 한재영 전남대병원 교수(재활의학)는 “이식 수술을 하려고 수술방 2개를 한꺼번에 열면, 다른 응급 수술을 하기 곤란한 상황도 생긴다”며 “서전(외과 의사)이 1명 늘어도 수술할 방이 없다”고 말했다. 응급실은 37 병상으로 턱없이 모자라다. 코로나19 유행 직전인 2019년 내원환자가 병상 대비 127.6%로 전국 권역응급의료센터 평균(65.6%)보다 2배였다. 그만큼 지역 병·의원이 급한 환자를 보내도 응할 수 없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결국 전남대병원은 2021년부터 신축을 꾀해, 올해 국립대병원 중 처음으로 본원 신축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절차를 밟고 있다. 2027년 착공, 두 단계에 걸쳐 2034년 준공이 목표다. 수술실과 권역응급의료센터 등 흩어진 주요 의료 기능을 한 데 모은다. 일반 병상은 현재 수준(900여병상)을 유지한 채, 응급실(37→65병상), 중환자실(161→191병상)을 늘릴 계획이다.



병원 안팎에선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3월26일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을 수도권 ‘빅5’ 수준 진료·교육·연구 역량을 갖추도록 충분히 지원할 것”이라고, 4월5일엔 부산대병원을 찾아 병동 신축 비용 7000억원 전액 지원을 약속했다. 부산대병원보다 노후한 전남대병원 예타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거란 기대감이 흘렀다. 반면 사정이 유사한 광주의료원 설립은 지난해 10월 경제성 등이 낮다며 예타 재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인 울산의료원도 마찬가지다. 예타를 통과해도 전체 사업비 1조1438억원 중 25%(현행 교육부 국고지원 기준)만 정부 지원을 받아, 8500억원이 넘는 사업비는 따로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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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병원 병동 사이의 이동 통로는 휠체어 한 대가 지나가기에도 빠듯하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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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전남대병원장은 “심혈관이나 외상 환자는 1∼2시간 안에 치료를 받아야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는데, 광주에서 수도권까지 가려면 아무리 빨라도 3시간 이상”이라며 “새 병원 건립은 시설 노후화 문제를 넘어, 지역 의료가 이대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역 거점 의료기관에 하는 투자”라고 말했다.



시설·장비가 오래된 지역 국립대병원은 수도권 대형병원 병상 확대로 의료인력 이탈까지 겪고 있다. 서동용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대병원으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국립대병원 의사가 입사 2년 이내 퇴사한 비율은 2022년 9월 기준 58.0%였다. 전남대병원이 87.9%로 가장 높았다. 노후한 지역 병원, 의료진 이탈은 환자의 수도권 쏠림이라는 악순환을 부른다. 고난도 치료가 필요한 전문진료 질병으로 거주지와 같은 지역 의료기관에 입원한 비율은 2020년 서울이 92.9%로 가장 높았던 반면, 경북(25.6%), 충북(41.2%), 충남(42.1%), 전남(46.0%), 광주(49.5%) 등 5개 시·도는 절반도 채 안 됐다.



현장에선 의과대학 정원 확대뿐만 아니라, 지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이 일할 국립대병원 투자 의지를 보여줘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배장환 충북대병원 교수(심장내과)는 “지역 의료를 좋게 하려면 먼저 환자 만족도를 높일 수 있게 지역에 압도적인 병원을 공급해야 한다”며 “암이나 심뇌혈관 환자가 전부 서울로 가고 지역에 환자가 없으니, 지역에 의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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