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30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가향담배 금지’ 4년째 허탕… 청소년 흡연자 80%가 피워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2019년 금연종합대책 발표했지만

“販禁 법안 국회 상임위서 제동”

청소년 절반 “향 좋아 피우게 돼”

美-英-佛 1회용 액상담배도 규제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종 담배의 영향으로 청소년 흡연율이 오르고 있습니다. 가격을 제외한 모든 비가격 정책을 동원해 ‘담배 종결전’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2019년 5월 권준욱 당시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이 ‘흡연 조장 환경 근절을 위한 금연종합대책’ 발표 브리핑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정부는 담배에 박하, 과일 같은 향을 넣은 가향(加香)담배를 비롯한 신종 담배를 ‘금연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특히 가향담배는 2021년부터 단계적 판매 금지에 나서겠다고 공언했다. 5년이 지난 지금, 당시 내놓은 금연 대책 성적은 몇 점일까.

●대책 발표에도 버젓이 팔리는 가향담배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금연종합대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20년 이후 담배 관련 지표는 제자리걸음이다. 국내 담배 판매량은 2020년 35억9000만 갑에서 지난해 36억800만 갑으로 3년 동안 1800만 갑(0.5%) 증가했다. 19세 이상 성인 흡연율 역시 같은 기간 19.8%에서 20.3%로 올랐다.

통상 성인 흡연은 청소년기 흡연 경험과 직결된다. 최근 3년간 성인 흡연율 상승은 이 시기 담배를 접한 청소년이 전보다 늘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국내 청소년 흡연율은 지난해 4.2%로 2020년(4.4%)보다 줄었지만 이는 ‘설문조사’일 뿐이다. 대한가정의학회의 2022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12∼18세 1258명의 소변 검사 결과 실제 흡연율은 13.8%였다.

전문가들은 가향담배를 청소년 흡연의 ‘출발점’이라고 본다. 질병관리청 발간 ‘건강과 질병’에 따르면 2022년 13∼18세 흡연자 85.0%, 19∼24세 흡연자 80.1%가 담배의 텁텁한 향과 맛을 가린 가향담배를 피우고 있다. 연구를 수행한 연세대 보건대학원 국민건강증진연구소 김희진 교수팀은 “남학생 56.5%, 여학생 54.7%가 향이 마음에 들어 흡연을 시작했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향담배가 담배 중독성을 더욱 높인다는 것. 가향담배 박하향은 기관지 통증을 줄여 담배 소비량을 늘린다. 코코아향은 흡연할 때 기관지를 확장시켜 담배 연기의 폐 도달 비율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엔 콜라, 오렌지, 요거트 같은 향과 맛을 가미하거나 담배 필터 안에 설탕이나 감미료를 넣어 ‘담배처럼 느껴지지 않는 담배’ 마케팅이 성행하고 있다.

정부는 2021년부터 가향담배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가향담배 판매 중단 법안이 번번이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담배규제기본협약을 통해 가향담배 금지 또는 제한을 권고하고 있다.

●청소년 흡연 ‘사각지대’ 액상담배

가향담배와 함께 청소년 흡연 사각지대로 액상형 전자담배가 꼽힌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일반 연초와 달리 다양한 향을 넣은 100% 가향담배에 해당된다. 녹차, 팝콘, 바나나우유 같은 냄새가 많아 학부모가 자녀의 흡연 사실을 알아채지 못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액상형 전자담배를 성인 인증 1회만 거치면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 서울 종로구에서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점을 하는 A 씨는 “오프라인 판매점은 청소년 구입을 막지만 인터넷에서 부모 신분증을 도용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는 청소년이 많다”고 전했다. 미국과 프랑스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일회용 액상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등 규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장은 “담배 시장은 이미 가향담배, 액상형 전자담배 중심으로 바뀐 상태”라며 “새로운 흡연자가 나오는 걸 막기 위해선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가향담배 등에 대한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