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이슈 질병과 위생관리

“R&D 예산삭감은 어쩌면 기회…대학, 정부만 쳐다보지 말아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학술정보분석기업 엘스비어 엘 아이사티 부사장 인터뷰

韓연구생산성 中·日보다 나아
논문인용도는 네트워크에 달려
美·佛·獨 등 해외로 더 나가야

대학평가기관과 방법론 연구
양적·질적 지표 함께 개선할 것


매일경제

최근 방한한 모하메드 엘 아이사티 엘스비어 분석 및 데이터 서비스 부사장이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엘스비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은 26조 5000억원으로 작년 대비 4조 6000억원이나 줄었다. 대학을 비롯한 연구 현장에선 인재 유출이 가속화하고 연구 경쟁력이 후퇴할 것이라고 반발한다. 최근 방한한 모하메드 엘 아이사티 엘스비어 분석 및 데이터 서비스 부사장은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R&D 예산 삭감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참에 재원을 다각화해 정부에만 의존하지 않는 연구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대학들이 해외에 캠퍼스를 세우는 등 국제 교류를 강화해 연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엘스비어는 글로벌 학술정보 분석 및 연구논문 출판 회사로 저명한 국제 학술지 ‘셀’ ‘란셋’ 등을 발행한다. 학술 데이터베이스 SCOPUS를 운영하며 연구논문 열람과 연구동향 분석도 지원한다. QS, THE(타임스고등교육) 등 대학평가기관은 대학 평가 시 엘스비어가 제공하는 데이터를 활용한다. 다음은 모하메드 엘 아이사티 부사장과 일문일답.

― 한국 방문 목적은?

▷ 여러 고객사와 미팅을 했다. 한국연구재단,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그리고 대학들이다. 한국연구재단과 연구 평가, 연구계 동향에 대해 논의했다. 엘스비어는 SCOPUS, SciVal 등 연구성과를 분석할 수 있는 플랫폼을 서비스하고 있다. 대학들은 국제 평판에 관심이 많다. 대학 순위가 어떻게 정해지고, 이를 올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궁금해한다. 그들의 목표 달성을 돕는 게 우리 일이다.

― 올해 한국의 연구개발(R&D) 예산이 4조 6000억원 삭감됐다. 한국의 연구 경쟁력 저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 그렇다. 일반적으로 R&D 예산 삭감은 연구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연구를 하려면 인력·장비·시설 등이 필요하다. 모두 돈이 든다. 연구자들이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유다. 연구비 삭감이 대학들에게는 위기이지만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재원을 다각화하는 것이다. 동문 기부금을 늘린다든지, 산학 협력을 강화한다든지 등이다. 유럽 호라이즌 2020과 미국 국립보건원, 미국 국립과학재단 지원 프로그램 등도 눈여겨볼 수 있겠다.

― 한국이 비슷한 국가들보다 연구 생산성이 낮고 논문 인용도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있다.

▷ 한국 대학들의 연구생산성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연구비, 연구자 수, 시설 등 투입 자원을 고려하면 말이다. 셀(Cell), 란셋(Lancet) 등 최상위 학술지 실적을 살펴보면 중국, 일본보다도 낫다. 지난 10년 간 한국은 랜싯에 연 평균 20건 정도 논문을 게재했다. 물론 중국은 70건이지만 연구자 수는 중국이 훨씬 많지 않나. 다만 호주처럼 한국보다 더 생산성이 높은 국가도 적지는 않다. 논문 인용도 부문은 더 분발해야 한다. 학문 분야 인용 패턴을 고려한 인용지수(Field-Weighted Citation Impact)를 보면 2023년 한국은 1.14를 기록했다. 10년 전 1.04보다는 증가했지만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중국은 10년 전 0.83이었지만 이젠 1.1이다. 연구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연구 가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연구력과 가시성이 모두 우수해야 인용이 많이 된다.

― 한국의 연구 가시성이 낮은 이유는.

▷ 연구 네트워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5명을 알고 지낼 때보다 100명을 알고 지낼 때 내가 인용될 확률이 높아진다. 해외로 더 나가야 한다. 미국, 프랑스, 독일, 호주에서 연구하고 돌아오라. 네트워크를 탄탄히 구축하면 가시성이 높아진다. 그러면 인용도 늘어나고 학문적 영향력도 높아진다. 대학 순위에도 도움이 되지만 연구 질도 높아진다. 다른 문화, 다른 생각을 가진 연구자들과 협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 노르웨이, 벨기에, 네덜란드 등은 대부분 연구를 국제 협력을 통해 진행한다. 노벨상 수상도 국제 협력 연구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한국 대학들이 캠퍼스를 해외에 세우는 것도 방법이다. 호주의 한 대학교는 캠퍼스가 인도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 두바이에는 미국과 캐나다 대학교들의 캠퍼스가 있다.

― QS, THE 등 대학평가기관의 평가 방법론이 대학의 연구력을 실제로 반영하고 있나.

▷ 완벽하다고 볼 순 없다. 많은 방법론, 지표들이 측정해야 하는 것보다는 측정할 수 있는 것 위주로 측정한다. 예컨대 학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논문 인용도 등으로 측정할 수 있다. 하지만 사회,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할 때도 이 지표가 유효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평판 조사의 한계도 있다. 전수 조사가 아니라 샘플 조사이고, 주관적 요소도 개입할 수 있다. 대학평가기관들도 이런 점을 알고 있기에 개선 노력을 하고 있다. 실제 교육·연구 역량을 측정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대학평가기관에 맡겨둘 일만도 아니다. 대학, 정부, 엘스비어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연구성과를 제대로 평가하고, 연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연구의 목적이 단순히 논문 출판이나 특허 취득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와 경제, 그리고 인류에 대한 기여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 대학평가 개선에 있어 엘스비어의 역할은.

▷학계와 함께 방법론을 개발 중이다. 양적 지표와 질적 지표 둘 다 보기 위해 노력한다. 예컨대 졸업생들의 창업 현황이라든지, 특허 건수 등을 보는 것이다. 특허는 대학에게 수입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연구의 경제적 효과를 측정할 수 있는 좋은 지표다. 표준화하려고 하지만 나라마다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대학평가기관과도 팀을 구성해 더 좋은 평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

―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눈부시다. 일부 분야에서는 새로운 물질을 찾는 데, 또 수많은 실험이 필요한 분야에서 AI를 활용해 성과를 거두고 있다. AI를 공저자 목록에 올리는 데 대한 의견은.

▷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엘스비어는 AI를 저자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연구 활동에 생성형 AI를 이용하는 데 반대한다. 만약 연구 자료 생성에 AI 모델이 사용됐다면 AI가 공저자로 등재되지 않을 뿐 아니라 논문 게재 자체가 거절될 것이다. AI를 활용할 수 있는 예외는 문장을 다듬을 때뿐이다. 비영어권 연구자는 번역하는 데 혹은 논문 문장을 매끄럽게 만드는 데 AI를 쓸 수 있다. 논문을 제출할 때 이를 밝히면 된다. 리뷰어들도 마찬가지다. 논문 초고를 AI 솔루션에 올려두고 대신 리뷰하라든지, 논문에 표절이 있는지 확인해달라든지 요청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는 민감한 개인정보들을 포함할 수 있기 때문이다.

― AI 도입에 보수적인 이유는 뭔가.

▷ AI가 내놓는 결과물을 완전히 신뢰할 수 있나. AI가 허위정보를 사실처럼 말하는 ‘할루시네이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AI를 활용하려는 분야에 충분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한다면 AI를 썼을 때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설사 환각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철학적 딜레마가 남는다. AI는 소프트웨어이고 도구인데 인간 존재와 같이 취급하는 셈이다. 저자 목록은 연구 평가를 위한 목적도 있다. AI를 인간처럼 평가할 이유가 있나. 또 인류는 아직 AI 활용에 있어 명확한 규제를 세우지 못했다. 새로운 AI 모델이 매일, 매주 발표돼 따라가기도 벅찬 상황이다. 그렇다고 AI에 전면 반대하는 건 아니다. AI는 훌륭한 도구다. 다만 연구계에서도 인정할 만큼 신뢰할 만한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파 입원했다고 가정해보자. AI로 질병 진단을 하고 이에 근거해 치료받을 건가, 아니면 인간 의사가 진단하도록 할 건가. 충분한 답이 됐으리라 본다.

― 코로나19가 연구 환경에 끼친 변화는.

▷ 개방과 협력의 중요성이 커졌다. 각자의 발견을 공유하며 과학자들은 정말 빠르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었다. 엘스비어도 코로나19 관련 면역학 연구자료를 개방하며 기여했다. 학제 간 연구도 활발해졌다. 사회과학자들이 의학자와 협력해 감염을 최소화한 사례는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연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보여준다. 연구계 젠더 불평등도 드러났다. 코로나19 기간 여성 연구자들의 논문 출판 건수가 남성보다 많이 줄었다. 락다운 기간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 코로나19 시기 국제 협력은 예외 사례였다. 세계는 다시 분열하고 있다. 미국·유럽이 중국에 반도체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중국도 맞받아치고 있다. 민감하지 않은 분야에선 연구 협력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민감한 고급·첨단 기술 분야에서도 그럴 수 있을지. 사실 더욱 공동연구가 필요한 영역 아닌가.

▷ 협력할 수 있다고 본다. 인류 전체의 기술 발전과 개별 국가의 안보 사이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반도체 수출 규제를 취했거나 검토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에게 중국은 수출 시장이기도 하다. 핵심 기술 개발도 협력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좀 더 보수적으로 할 뿐이지, “안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영국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기술 혁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보도했다. 이런 추세가 엘스비어 데이터에서도 나타나나.

▷ 아직까지 연구계에서 고령화가 큰 문제는 아니다. 세계의 연구자 숫자는 800~900만 정도이고 증가하고 있다. 서구에선 젊은 연구자들 증가속도가 둔화하고 있지만, 중국과 라틴 아메리카 지역은 여전히 젊은 연구자들도 많다. 긍정적인 현상이다. 또 논문 출판 지원과 더불어 엘스비어의 임무 중 하나는 연구자들의 경력 개발, 연구 기반 강화를 돕는 것이다. 원로 연구자들은 은퇴 후 코치, 멘토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연구자들 중에서 코치, 멘토를 선발할 때 엘스비어는 어떻게 선발해야 하는지 조언할 수 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