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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문화의 힘은 공정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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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검정고무신’(그림)은 운동화를 살 수 없던 시절의 이야기를 만화영화로 담아낸 휴먼드라마다. 김구 선생은 ‘나의 소원’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90년대 들어, 정부도 문화산업의 정책적 육성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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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는 자신의 업에 대해 고민한다. 거대한 힘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의미를 찾는 것이다. 문화산업은 창작과 사업화의 주체가 달라진다. 창작자는 사업화에 필요한 계약내용에 대해 문외한인 경우가 많고 계약서에 요구사항을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물론, 투자자로서도 불확실한 창작물에 대한 투자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불확실성을 이유로, 창작자의 과실을 사업자가 오로지하는 경우도 많다.



헌법은 창작자 보호를 명기했다. 문화생태계가 형성되도록 함으로써, 성공한 창작자가 나오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다. 구체적 사항은 저작권법에 위임되지만, 사적 자치 원칙에 따른 당사 간 계약을 통해 저작권법을 우회한다. 저작권법의 이념은 기본적으로 창작자 보호에 있다. 하지만 계약을 통해 저작권이 양도되는 구조에 따라, 창작자는 권리가 없거나 행사하기 어려운 상태에 놓이곤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정고무신의 작가 이우영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불공정한 문화산업의 행태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오래전부터 문화부는 문화산업의 공정화를 위한 입법을 추진해왔지만, 구체적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검정고무신 사건으로 문화산업 공정화법에 대한 국회 논의가 탄력을 받았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의견을 제시했다. 타협이 가능했다. 반면 방송통신위원회는 국회 회의록을 봐도, 상임위 의결 이전에 대안이나 의견을 제시한 바도 없다. 무조건 반대해 온 것으로 보인다. 법안은 상임위에서 의결되어 법사위에 회부되었으나 회송됨으로써 최종 폐기됐다.



창작자 보호는 헌법상의 기본원리인데 창작자의 죽음 앞에서 부처는 어떻게 이렇게도 매몰찰 수 있는가? 법은 감성적이지도, 감정적이지도 않다. 하나의 사건이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다루어서도 안된다. 그렇지만 국가는 그렇지 않아야 한다. 협회 등 이익단체도 문제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동료의 죽음을 외면한다. 또한 소위 전문가들도 수많은 기고문을 통해 문화산업 공정화법의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에 동조한다.



공정하다는 명분 아래 체결된 계약은 특단의 사정이 없는 한 무효화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창작자를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공적 법률조력을 받거나, 공정한 관계에서 거래관계가 이루어지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플랫폼을 통한 유통도 공정해야 한다. 다만 이해관계자와의 논의를 통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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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의 말씀은 지금도 여전한 울림이 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창작자가 가져다주는 행복을 국가가 외면해서는 안되는 이유이다. 문화가 자율적 토대에서 성장해왔던 것처럼, 문화산업도 공정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김윤명 디지털정책연구소 소장(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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