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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단독]미군기지 주변지역 5000㎡, 수년째 기름·중금속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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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일대 토양시료 4368개 채취

오염농도 기준 초과하는 중금속 검출

미군이 오염원인데 정화 명령도 못 내려

위험성 조사 안해…정부·지자체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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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캠프 레드클라우드 일대.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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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바깥의 주변 토양 5000㎡가량이 기름과 1급 발암물질에 속하는 중금속 등으로 오염됐다는 조사가 나왔다. 오염물질은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왔을 가능성이 높지만, ‘환경정화를 누가 할지’를 확정 짓지 못해 수년째 방치되고 있다. 일부 지역은 오염농도가 기준치를 초과했지만, 위해성을 조사하지 않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주민위험이 얼마나 큰지 파악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군기지 일대, 인체 치명적인 중금속 다량 검출
4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2023년 주한미군 주변지역 토양지하수 환경오염조사 및 평가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기지 6곳(캠프 레드클라우드·성남 골프장·메디슨사이트·광주비행장·캠프 조지·워리어베이스) 일대에서 총 4944㎡의 토양오염이 발견됐다. 오염부피는 3298㎥였고, 오염깊이는 3m 내외로 파악됐다. 토양오염물질은 유류의 일종인 석유계 탄화수소(TPH)와 인체에 치명적인 카드뮴, 비소, 납, 아연 등 중금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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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는 한국환경공단이 지난해 5월23일부터 올해 1월28일까지 진행한 환경기초조사의 결과물이다. 공단은 12억1619만원을 투입해 주한미군 주변 토양시료 4368개를 채취했고, 총 1만5251번의 분석을 수행했다.

오염면적은 경기 의정부시에 위치한 미군 반환기지 캠프 레드클라우드 일대가 2896㎡로 가장 넓었다. 캠프 레드클라우드는 2016년 주한 미군이 캠프 험프리스로 옮아간 후 한국 측에 반환한 장소다. 캠프 레드클라우드 주변에는 TPH와 카드뮴, 납, 아연 등이 발견됐다. 오염부피 역시 1503㎥로 가장 컸다. 보고서에 담기지는 않았으나 현장 조사관들에 따르면 일부 조사지점에서는 각종 물질의 농도가 허용 기준치를 넘기도 했다.

다음으로 오염면적이 큰 곳은 성남골프장 일대로 1409㎡에 걸쳐 비소가 검출됐다. 오염부피는 875㎥에 달했다. 성남골프장은 1991년 미군이 골프장으로 사용한 땅이었지만, 2017년 주한미군이 용산기지에서 경기 평택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문을 닫았다. 메디슨 사이트에도 TPH가 443㎡ 검출됐고 광주비행장과 워리어베이스에도 TPH가 각각 84㎡, 46㎡ 검출됐다. 캠프 조지 주변에는 66㎡ 면적에 비소와 아연이 확인됐다.

미군이 오염원인데, 정화 명령도 못 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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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지자체는 해당 지역에 특별한 오염원이 없는 만큼 원인을 미군기지로 보고 있다. 기지 안에서 유출된 오염물질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는 뜻이다. 실제 환경부와 국방부는 캠프 레드클라우드를 반환받을 당시 내부를 조사하고 TPH와 아연이 각각 16만5000㎡, 4만5120㎡ 오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기지 외부에서 검출된 오염물질과 같다. 성남골프장도 마찬가지다. 조사 결과 성남골프장 내 비소 농도는 기준치의 25배를 넘어섰다.

문제는 심증이 있어도 오염의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법에 따라 토양오염은 환경부가 실태와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시군구에 공유한다. 오염을 파악한 시군구는 원인조사를 시작하는데, 오염을 유발한 주체가 확인되면 지자체가 복구명령을 내리게 된다. 하지만 오염원이 미국 정부의 군사시설이라 사실상 지자체의 자체적인 조사가 불가능하다. 군 기지로 들어가 조사하려면 국방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데, 미군을 오염원으로 공표해야 해 여의찮다.

이러다 보니 정부와 지자체는 사실상 오염을 방치한 상태다. 환경부 관계자는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것으로 보이는 오염물질이 발견돼도 대한민국 정부가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가서 조사할 권한은 없다”면서 “큰 오염사고가 발생했을 때 조사를 요구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미군 측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토양 정화하려면 도로 막고 아스팔트 깨야 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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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패트리엇 미사일이 배치된 경기도 평택시 캠프 험프리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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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으로는 지자체가 세금으로 먼저 환경정화를 한 뒤 사법절차를 거쳐 돈을 받아내는 방법이 거론된다. 평택시가 대표적이다. 평택시는 16억원을 들여 주한미군 주변지역의 토양오염을 정화한 뒤 국가청구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규정 탓에 미군으로부터 비용을 돌려받을 수 없어 한국 정부에 청구했다. 평택시는 2015년에도 공여구역 주변지역을 정화한 뒤 소송을 제기해 일부승소 판결을 받고 8억7000만원을 돌려받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자체에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바깥의 토양오염을 정화해도 다시 미군기지 안에서 오염물질이 새어 나오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청소해야 하는 만큼 국방부 및 미국 정부와의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기지 내부와 외부를 동시에 정화하지 않으면 또 예산을 투입해 정화해야 한다”며 난색을 표했다.

이미 오염물질이 광범위하게 퍼지다 보니 정화작업의 난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지자체 관계자는 “도시화가 많이 이뤄진 지역은 이미 도로와 건물 아래로 (오염물질이) 스며들었다”면서 “정화 작업을 하려면 도로를 완전히 막고 아스팔트를 깨야 하다 보니 지지부진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기지 안의 정화 비용까지 합하면 못해도 수백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얼마나 위험한지도 몰라…불안함은 주민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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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 온전한 생태평화공원 조성을 위한 용산시민회의 관계자들이 지난달 3일 서울 용산구 용산어린이공원 입구 근처에서 어린이 공원 개방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모습. 사진=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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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양오염 방치에 따른 불안감은 주민들이 떠안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도 주변지역의 토양오염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법적으로 위해성은 미군기지의 반환이 이뤄질 때 내부만 조사하기 때문이다. 5년 주기로 이뤄지는 주변지역 환경기초조사는 위해성 조사를 생략한다. 조사 실무를 수행한 한국환경공단 담당자도 “오염물질이 법적인 기준치를 초과했는지 여부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군기지와 토양오염 문제를 둘러싼 시민단체의 반발은 갈수록 커지는 추세다. 지난달 3일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는 용산 반환미군기지 부지에 오염물질이 다량 검출됐다며 일대에 조성된 어린이 공원을 폐쇄하라고 주장했다. 주한미군 숙소 부근에는 발암물질인 벤젠과 페놀류가 기준치를 3.4배, 2.8배 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정부는 임시개방을 앞두고 위해성을 낮추기 위한 임시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녹색연합 관계자는 “현행법은 환경부 장관이나 지자체장이 임의로 판단해서 정화 명령을 내린다”면서 “이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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