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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오일패권’ 美에 밀리고 감산 불협화음… 힘 빠지는 OPEC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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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오일쇼크’ 50년 달라진 위상

흔들리는 OPEC

석유 담합 고유가 위해 사우디 주도로 감산 정책

나이지리아 등 阿 반발… 앙골라는 탈퇴

이라크·UAE 등 중동국가도 불만 표출

러는 OPEC+ 쿼터 어기고 초과 생산

에너지 권력 美로 무게 이동

탐사·시추 기술 발달로 산유국 다양화

‘셰일혁명’ 美 원유 생산량 1위… 中 6위

세계 OPEC國 생산량 비중 27%로 ‘뚝’

“OPEC 공급 조절, 경제 파급력 줄어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오펙)는 중동을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 국가 간 협의체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모여 회의를 하면 전 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영향력은 막강하다. 1970년대 중반 에너지를 무기화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실제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1960년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쿠웨이트, 베네수엘라 5개 산유국이 뭉친 오펙은 1973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맞붙은 4차 중동전쟁이 발발되자 주변 산유국들을 설득해 대대적인 석유 생산량 감축에 나섰고 전 세계 경제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1배럴(약 159ℓ)당 2.9달러였던 원유가 한 달 만에 4배가 넘는 12달러로 폭등하며 석유 의존이 극심했던 세계 경제는 대혼돈에 빠졌다. 여파는 1년여 뒤 오펙이 감산을 중단한 이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됐다. 이는 ‘오일쇼크’라는 강렬한 이름으로 역사에 기록됐고 이때의 충격파는 고스란히 오펙의 국제적 영향력으로 남아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1차 오일쇼크 이후 50년이 지나 충격의 여운은 조금씩 옅어지는 중이다. 기술의 발전과 산업환경의 변화로 석유의 위상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영향이다. 이런 변화 속 50년 동안 굳건했던 오펙도 조금씩 삐걱대고 있다. 10여개 회원국의 입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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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본격화… 감산 거부에 탈퇴까지

오펙의 균열은 올해 들어서 본격화되고 있다. 기구 내 단결이 흔들리는 모습이 노출되고 있다. 지난 1월 앙골라의 탈퇴 선언이 도화선이 됐다. 앙골라는 석유 감산에 대한 지속적인 이견 속 2007년 가입 이후 16년 만에 오펙을 떠나기로 했고, 이로써 오펙은 2016년 인도네시아, 2019년 카타르, 2020년 에콰도르에 이어 최근 10년 동안 네 번째로 회원국을 잃게 됐다.

이는 어느 정도 예견돼왔던 일이다. 자연과 경제환경이 상이한 여러 대륙 국가들 사이에서 국가 수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석유 생산 관련 합의를 도출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중동과 비중동 국가 간 갈등은 한계 상황을 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오펙+ 회의에서 이런 갈등의 일면이 노출됐다. 감산 논의에서 아프리카 국가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가 불만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오펙은 생산량 쿼터를 정할 때 최대 생산능력과 실제 평균 생산량을 검증한 뒤 할당량을 분배하는데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우 설비 노후화와 운영 미흡 등 영향으로 생산량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생산 쿼터 분배에서 불리하게 작용해 이들 국가의 불만을 키우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앙골라의 에스테바오 페드로 오펙 운영위원은 당시 “우리는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싸우고 있고 투자도 하고 있다”면서 부당함에 대해 항변했는데, 결국 3달 뒤 앙골라는 오펙 탈퇴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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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국가들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지난 11일 하이얀 압둘 가니 이라크 석유부 장관은 “다음달 초에 열리는 오펙+ 회의에서 석유 감산 연장에 합의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앞으로는 오펙+가 제안하는 어떤 감산 계획 연장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라크 외에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감산 계획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경제개발 계획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고유가를 유도하고 있는데, 이웃 국가들은 사우디의 일방적 독주 속 감산 계획에 불만을 갖고 있고, 이는 이라크의 감산 중지 선언으로 이어졌다.

오펙은 2018년 이후 비회원 산유국들의 영향력이 증대되자 러시아를 필두로 한 비산유국들을 감산 논의에 합류시켰다. 이른바 ‘오펙+’다. 그러나 공식 회원국이 아니다 보니 이들 국가에 대해서는 생산량 등에 대한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비회원국 중 우크라이나와 2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는 러시아는 지난달 하루 평균 941만8000배럴의 원유를 생산해 오펙+와 약속한 감산 계획보다 32만9000배럴을 초과하며 아예 생산량 쿼터를 위반했다. 오펙이 시장 가격을 좌지우지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회원국 간 일사불란한 단결이 사라지고 있다.

이는 기구의 구조적 문제에 따른 한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금융정보업체 인베스토피디아의 마이클 브롬버그 에디터는 “오펙이 유가에 미치는 영향은 장기적으로 희석돼 왔는데, 이는 개별 회원 국가가 오펙과는 다른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오펙 전체적으로는 공급을 줄여 고유가를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 되지만 실제로 감산에 들어가면 수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사우디 등 감당이 가능한 국가만 실행에 적극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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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드는 영향력… 미·중은 굳건

회원국 간 입장 차에 따른 이견 등 구조적 문제는 이견 조율과 구조 개혁 등으로 일정 부분 해소 가능하다. 산유국 간 느슨한 협의체라는 특성상 오펙은 창립 이후 50여년 동안 수많은 갈등을 겪어오면서도 공동이익을 위한 이견 조율을 통해 이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좀 더 근본적이라는 평가다.

오펙이 국제 에너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석유탐사와 시추기술의 발전으로 캐나다, 콜롬비아, 호주 등 다양한 국가가 석유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돼 더 이상 세계는 석유 수입을 오펙 국가에만 의존하지 않고 있다. 2010년대 중반까지 30%대를 유지해왔던 전 세계 원유 생산량 대비 오펙의 생산량 비중은 2019년을 기점으로 20%대로 작아졌고, 지난해 12월에는 26.5%로 추락했다. 러시아, 브라질 등까지 포함한 오펙+로 확대해도 지난해 말 기준 점유율은 51%에 불과하다.

기후변화 등에 따른 재생에너지 비중도 전 세계적으로 지속적으로 커지는 터라 석유산업 자체가 세계 산업에 가지는 비중도 감소 중이다. 오펙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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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장관(가운데)이 아프리카 회원국들과의 갈등이 빚어졌던 지난해 10월 OPEC+ 회의를 마치고 기자회견에 나서 참석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빈=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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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세계 경제의 양강이자 최대 석유소비시장이기도 한 미국과 중국이 오펙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2011년 하루 567만배럴에 불과하던 미국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퇴적암에서 셰일 원유를 추출하는 ‘셰일혁명’ 영향으로 2010년대 이후 급격히 늘어나 어느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해 12월 기준 미국의 일평균 원유 생산량은 1329만5000배럴로 오펙 리더인 사우디아라비아(895만배럴)뿐 아니라 오펙+ 일원이자 2위 산유국 러시아(1012만6000배럴)조차 훌쩍 앞선다.

중국 역시 일평균 417만2000배럴을 생산하는 세계 6위의 산유국이다. 게다가 중국은 지속적인 유전개발 등으로 석유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22년 국영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중국해양석유천연가스(CNOOC), 중국석유화공(시노펙) 등 중국 에너지기업들의 유전개발 등 자본 지출은 약 800억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미국의 엑손모빌, 셰브론과 영국 셸, BP,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의 신규 투자를 합친 것보다 많다. 향후 생산량이 더 늘어날 여지가 크다는 뜻이다.

오펙의 감산이 이들 두 국가에 충격을 줄 여지도 작아졌다. 글로벌 경제를 이끄는 두 공룡이 충격을 받지 않으니 1970년대 같은 전 세계적인 ‘오일쇼크’가 또다시 발생할 가능성도 줄었다. 이는 지난해 현실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2년 10월 이후 오펙+가 지속적으로 감산을 이어갔지만 원유 가격이 오히려 13% 하락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오펙의 생산량 조절보다 중국의 경제 둔화와 미국의 공급 확대가 유가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퇴적암에서 추출하는 셰일 원유의 효율성 확대 등으로 향후 석유시장에서 미국 등의 영향력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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