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최소 45명 사망 후폭풍
26일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의 팔레스타인 난민촌이 화염에 휩싸여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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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의 공격 중단 명령 이후 강행한 가자지구 공습에서 40여 명으로 추정되는 민간인 사망자가 나오자 거센 후폭풍이 불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신속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최우방국인 미국마저 “‘레드라인(한계선)’을 넘었는지 조사하겠다”며 나서는 등 국제 사회의 이스라엘 비난 여론이 비등(沸騰)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스라엘군은 라파 중심부에 지상군을 진격시키며 공세 수위를 높이는 중이다. ‘라파 지상전이 본격화했다’는 전망과 함께 지난해 10월 시작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이 7개월 만에 최대 고비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는 27일 미국 고위 관리 2명을 인용해 “이스라엘의 전날 라파 난민촌 공격이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제시한 레드라인을 넘었는지 백악관이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지난 3월 이스라엘의 라파 대규모 공격과 이로 인한 민간인 희생 급증을 ‘레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이달 초엔 “이 선을 넘으면 일부 공격 무기와 포탄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만약 이번 사건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는 결론이 나올 경우,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 중단이 이어질 수 있다. 이스라엘로선 이번 전쟁의 절대적 ‘우군’을 잃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픽=김성규 |
앞서 이스라엘군은 26일 라파 북서부의 ‘탈 알술탄’ 난민촌을 2발의 정밀 유도 폭탄으로 공습했다. 이 공격은 ICJ가 ‘대량 학살 방지와 처벌에 대한 협약’에 의거해 “가자지구 라파에서의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인도적 구호를 위해 라파 국경을 열라”고 긴급 임시 조치를 명한 지 이틀 만에 단행됐다. 이스라엘은 이 협약 가입국이므로 명령을 준수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ICJ의 명령은 모든 군사작전을 중단하라는 뜻이 아니다”라며 라파 계속 공격을 시사해왔다.
그러나 이번 공격으로 민간인 희생자가 다수 발생하면서 이스라엘의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 분위기다. 가자 보건부는 “이날 공습으로 최소 45명이 사망하고 240여 명이 다쳤다”며 “이 중 여성과 노약자가 23명”이라고 주장했다.
27일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폐허가 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이곳 피란민 텐트촌의 주민들이 잿더미 속에서 구호품을 찾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최소 45명의 피란민이 사망했고 200여 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이 라파를 공격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잇따르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라파에서 비극적 실수가 있었다”면서 사실상 책임을 인정했다. /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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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타냐후 총리는 곧바로 책임을 인정하고 나섰다. 그는 27일 “민간인 보호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했으나 어제 ‘비극적인 실수’가 있었다”며 “현재 이 사건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나는 승리의 깃발을 내걸 때까지 전쟁을 계속하겠다”며 라파에 대한 공격 계속 의지를 밝혔다. 이를 반영하듯 이스라엘군은 28일 라파 동부에서 추가로 서진(西進)해 라파 중심가에 진출했다. BBC는 “이스라엘 탱크가 주요 기관이 밀집한 알아와다 로터리를 장악하고, 하마스와 교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랍 매체 알자지라도 “이스라엘군이 포격을 퍼부으며 본격적인 라파 포위 작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라파에 1개 여단을 추가로 배치했다”며 “이날 하루 라파 곳곳에서 땅굴과 무기를 발견하고 다수의 하마스 테러리스트를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 사회의 시선은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이스라엘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예방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이 아무 변화가 없다”고 비판했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소셜미디어로 “라파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EU 외교이사회에선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제재 가능성도 논의됐다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28일 알제리 요청으로 긴급회의를 열어 라파 공습 문제를 논의했다.
☞라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에 위치한 도시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이집트와 맞닿아 있다. 본래 인구는 20만명에 불과했으나 가자 북부와 중부에서 피란민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55㎢에 불과한 이곳엔 현재 약 140만~150만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이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 물품이 먼저 풀리는 곳이라는 점도 피란민 집결에 영향을 미쳤다.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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