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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현장에서] “진실화해위는 인권기관” 답 못한 김광동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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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려 김광동 위원장(가운데)이 조사 성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은 이옥남 상임위원, 오른쪽은 이상훈 상임위원.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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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원회는 수사기관이 아닙니다. 인권기관인지는 평가하기 나름입니다.”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진실화해위가 인권기관이냐 수사기관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한 말이다. “진실화해위는 수사기관이 아니다”라면서도 “우리 법에는 한국전쟁 중에 희생된 분들 중에 보호해야 될 민간인이냐 아니면 침략 적대세력 가담자이냐를 구분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법에도 없는 규정을 언급하며 그동안 한국전쟁기 민간인 희생자 중 적대세력 가담자를 색출해온 수사기관 같은 정체성을 재차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진실화해위는 27일 오전 조사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기자들에게 그동안 사건 처리현황과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김 위원장은 “지난 3년간 전체 신청사건의 약 60%인 1만1243건을 종결 처리했고 8312건을 조사진행 중에 있으며, 선감학원 사건 등 7건의 직권조사 사건들을 완료했거나 진행 중에 있다”면서 집단수용시설 피해구제조치 본격화, 유해발굴 사업 진행 등을 성과로 꼽았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의 정체성과 관련해 현재 논란이 되는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진도 사건) 등에 대해서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말을 돌렸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 기본법)에는 김 위원장이 말한 “침략 적대세력 가담자 구분 여부”와 관련한 조항이 아예 없다. 기자간담회에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셈인데, 진도 사건에 관해 말하면서도 “(진실화해위는) 암살대원이라는 것이 침략적대 세력에 가담한 사람의 일부인지 아니면 민간인이었는지를 구분해야 될 의무가 있는 기관”이라고 못 박아 말했다.



한겨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려 황인수 조사1국장(왼쪽 둘째)이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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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위는 지난 3월12일 1950~1951년 전남 진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 희생자 4명에 대해 ‘암살대원’이라고 적힌 불확실한 경찰 사찰 기록을 이유로 진실규명 불능(피해자 인정 불가) 의견을 전체위원회에 상정했다가, 야당 쪽 위원들 반대에 결정을 보류한 바 있다. 한겨레가 이들 희생자 4명 중 3명이 13살·14살·17살 미성년자라는 사실과 희생 경위를 보도하며 논란이 계속되자, 진실화해위는 22일 오후 각계 15명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열어 이들 4명에 대한 진실규명 처리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다. 진도사건 처리 과정은 ‘부역자 낙인찍기’에 골몰한 진실화해위의 현실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광동 위원장은 또한 “국정원 대공 3급 간부 출신 황인수 조사1국장이 보인 그동안의 부적절한 언행”에 대한 생각을 묻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이옥남 상임위원이 나서 “기자의 질문이 부적절하다”고 했고 “국정원 출신이라고 해서 진실화해위에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본다”고 했다. 황인수 조사1국장이 1국 조사관들에게 보낸 신년 편지 등 채용 이후 부적절한 처신과 관련해선 이옥남 상임위원 역시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았다.



13살·14살밖에 안된 진도 사건 희생자를 ‘암살대원’이라고 기록한 진도경찰서의 요시찰명부 ‘대공’이 허위공문서가 아니냐고 묻자 이옥남 상임위원은 “기록 전체가 다 오류가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진도경찰서가 1969년 작성한 사찰 자료인 ‘대공’ 전체가 허위자료일 리는 없다. 경찰이 재판 없이 불법처형한 유가족을 사찰하고 감시하기 위한 자료이기에 살해행위 그 자체는 사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옥남 상임위원이 소위원장으로 있는 1소위원회에서는 사살개요에 적힌 ‘암살대원’만 갖고 진실규명 불능 의견을 올렸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최소한 기록을 갖고 이야기하라. 근거가 없으면 정부 공문서도 허위다. 당시 기록을 작성한 진도경찰서 경찰관들 조사하라”는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이옥남 상임위원은 진도 사건에서 보류된 4명의 처리계획을 묻는 말에는 “위원회에서 절차상으로 재회부를 해서 다시 결론을 짓겠다”고 했다.



한겨레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조사 개시 3주년 기자간담회가 27일 오전 서울 중구 진실화해위에서 열려 김광동 위원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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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동 위원장은 “13살·14살 아이들을 정말 암살대원으로 판단해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릴 것이냐”는 질문에 “특정 기록에 의해서만 판단하지 않는다”, “국제형사재판소의 판단 기준도 살펴보고 있다”는 등 모호하게 답변했다. 진실화해위의 한 간부급 조사관은 기자간담회가 끝난 뒤 한겨레에 “아이건 어른이건 설사 적대 세력가담자라도 재판 없이 죽일 수 없으며, 특히 진도 사건의 경우 인민군이 퇴각한 날은 10월6일이고 이들이 살해된 날은 10월20일이다. 보름 후에 일상생활로 복귀하였으므로 보호받아야 할 민간인이다. 위원장은 법은 다 무시하고 본인 생각대로 떠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6일 열린 출범 3주년 기자간담회에 이어 이날도 김광동 위원장은 진실규명(피해자 인정) 불능과 각하까지 모두 포함한 사건처리율을 언급했지만 진실규명률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5월27일 기준 2기 진실화해위의 전체 진실규명률(신청 건수 대비)은 31%에 그친다. 내년 5월26일까지 1년의 기한이 남았지만 1기 진실화해위(2005~2010) 진실규명률 75%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배정 1만41건)의 진실규명률은 22.9%로 지방좌익 등 이른바 적대세력 사건(배정 4019건)의 58.96%에 비해 절반도 되지 않았다.



사건처리율 역시 적대세력 사건은 73.9%이지만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은 43.6%다. 이마저도 여수⋅순천10⋅19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여순사건위)로 이관한 여순사건 1400건을 뺄 경우 29.6%까지 쪼그라든다.



2기 진실화해위는 2020년 12월10일 출범해 2021년 5월 27일 진실규명조사개시 이후 3년 기한으로 활동했다. 지난 1월23일 1년 기한 연장이 확정됨에 따라 내년 5월26일까지 조사활동을 하게 되고 11월까지 6개월 동안 보고서 작성을 마무리한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고나린 기자 m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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