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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꿀벌에게 희망을 [정끝별의 소소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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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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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끝별 | 시인·이화여대 교수





“꿀벌이 완전히 사라지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단 4년뿐이라고 아인슈타인이 말했다 인간이성애”. 박참새 시인의 시 제목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없고 1999년 벨기에로 시위하러 온 프랑스 양봉업자들이 한 말이란다. 그러거나 말거나, 꿀을 좋아하고 꿀벌을 좋아하는 만큼 나는 이 시 구절이 좋다!



내가 꿀벌에 꽂힌 이유는 꿀벌을 내 이름 끝별로 자주 오독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내게 꿀은 끝, 꿈, 꽃으로 치환되고, 벌은 별, 볕, 빛과 유유상종한다. 이 여덟 글자는 내가 추앙하는 단음절의 순 한글로, 내게는 시의 다른 이름들이다. 오월이면 내가 ‘세계 벌의 날’(5월20일), 그러니까 꿀 떨어지는 날을 기억하는 이유이고 도시에서 꿀벌 치는 노년을 꿈꿔보는 이유다.



막상스 페르민의 ‘꿀벌 키우는 사람’은 ‘금빛 꿀벌’을 찾는 오렐리앙의 여정을 따라간다. 꿀벌에게 꿀이 그러하듯, 오렐리앙에게 꿀벌은 꿈 혹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다. “멀리에서 반짝거리고, 날아가고, 향기와 향기 사이에서 취하고, 채색 유리창에 부딪히고, 하늘의 광대함 속에서 자신만의 꽃에 들어 있는 꿀을 찾는”, 그러한 일이다.



고작 50여 일을 사는 꿀벌은 꿀 한 모금을 머금기 위해 1초에 203번의 날갯짓을 해야 하고, 꿀 1㎏을 만들기 위해서는 560만 송이의 꽃을 찾아 지구 한 바퀴 반을 날아야 한다. 그렇게 세상과 벌통을 오가며 꽃꿀과 꽃가루를 나르고, 꽃가루를 옮겨 열매와 씨를 맺게 한다. 이에 화답하듯 여왕벌도 꿀벌이 만든 로열젤리를 먹으며 하루 1500개의 알을 순풍순풍 낳는다. 알을 돌보는 것도 꿀벌이다.



이 단순한 꿀벌의 삶이 국내에서만 6조원의 경제 효과를 얻는다니 경이로운 일이다. 인간을 먹여 살리는 농작물 대부분이 재배 과정에서 꿀벌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내 수납장에도 꿀은 물론 프로폴리스, 로열젤리, 벌 화분이 떨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벌침을 맞고 목디스크가 낫기도 했으니.



꿀벌의 집단 폐사와 실종이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던 건 2000년대 초였다. 그즈음 가까이서 지켜본 파업 투쟁을 꿀벌의 실종에 빗대어 이런 시를 썼다. “아카시아가 꿀을 만들지 않으면 꿀벌이 사라지고 꿀벌이 사라지면 농산물 대란이 일어날 것이니 파업을 하려면 아카시아쯤은 해야 한다고/ 얼마 전에는 꿀벌이 파업을 했는데/ 꿀벌 유충이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줄줄이 죽어 나가 꿀벌이 멸종될지 모르고 아카시아 파업도 꿀벌 파업과 연대되어 있을 것이니 파업은 꿀벌이나 하는 거라고 나는 말했다”(정끝별, ‘당신의 파업’).



지지난 겨울에는 78억 마리의 꿀벌이, 지난 겨울에는 141억 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 지구가 이상해져서다. 꿀을 빨 꽃들이 줄고 꿀을 빨 새도 없이 꽃들이 단숨에 저버린다. 꿀벌도 겨울잠을 자지 못하고 먹이 소진도 빨라졌다. 새로운 천적이나 바이러스 출현, 농약이나 살충제 등도 원인이다. 그러니 대책도 분명하다. 꿀벌이 살기 좋은 꿀벌 생태 환경 조건을 회복하면 되는데, 지금껏 인간이 지구에 해온 것과 반대로 덜 쓰고 덜 부리고 덜 버리면서 마음을 다하면 되는데….



꿀벌은 “서로 몸을 기대고 일정한 온기를 유지하고 있었다. 모두 함께, 공동체라는 하나의 작품을 만들”(‘꿀벌 키우는 사람’)며 산다. 그런 꿀벌은 인간이 회복해야 할 꿈이자 사랑이다. 오렐리앙이 꿈꾸는 ‘아피폴리스’, 꿀벌(api) 나라(polis)가 바로 인간의 미래일 것이다. 인간이 진화하면서 잃어버린, 그리하여 인간을 대신해 대가를 치르는 꿀벌에게 먼저 희망을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내가 자주 먹는 프로폴리스도 방어(pro) 나라(polis)이니, 스스로를 안전하게 지키려는 인간의 의지가 담긴 이름일 것이다.



“벌의 위기는 인류의 위기입니다”, “벌을 위해 피어나는 한 송이 꽃,/ 수분매개곤충과 생태계를 지키는 첫 발자국이 됩니다”. 그린피스 홈페이지에서는 정부 부처에 꿀벌 보호를 청원하는 ‘생물다양성’ 캠페인이 진행 중이다. 2019년 양봉산업법이 제정됐고 2023년에 개정됐으나 이에 더해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법안 및 정책을 촉구하는 청원이다. ‘그린피스 꿀벌식당’ 사장 윤여정 배우가 청원을 권유하는 ‘Livi벌’ 영상도 볼 수 있다.



탄광의 카나리아나 잠수함 속 토끼처럼, 꿀벌은 우리 미래를 경고하는 바로미터다. 꿀벌이 살기 좋은 환경은 마땅히 인간이 살기에도 좋다. 그러니 꿀벌을 구하려는 모든 시선은 별에 불을 켠 듯 반짝이고, 그 별빛은 세상 끝에서 꾸는 인간의 꿈이자 꿀 떨어지는 꽃의 사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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