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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매경데스크] 누가 몸통이고, 누가 꼬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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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증권시장에는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는 말이 있다. 선물거래 규모가 커지면서 오히려 현물시장을 뒤흔드는 현상을 말한다. 하지만 원래 이 표현은 정치에서 비롯됐다. 1860년대 미국 민주당의 내부 상황을 다룬 한 신문 기사에서 최초로 등장한다. 소수의 강경파가 다수의 온건파를 좌지우지하는 상황을 가리켰다.

국회의장 경선에서 우원식 의원이 추미애 당선인을 꺾은 뒤 열흘 새 더불어민주당 내부의 다이내믹스를 지켜보며 내심 놀랐다. 허를 찔린 것은 분명하지만 추미애 탈락 사건을 당원 민주주의 기치를 올릴 반전의 기회로 삼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순발력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그는 작년 체포동의안 가결 이후 '수박 색출' 광풍을 활용해 공천 과정에서 반대파를 숙청했고, 이번엔 의원을 당원의 종속변수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한국 정당사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이다. 팬덤 정치의 시초인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의원들을 장악하지 못했다. 그 대표적 인물이 탄핵에 찬성했던 추미애 당선인이었다.

이 대표는 의원 중심의 원내 정당이 아니라 당원 중심의 대중 정당으로 가겠다고 선언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제히 모래에 머리를 파묻은 타조 꼴이 됐다. "내가 우원식을 찍었다"고 공개한 사람은 겨우 두 명이다.

직접 민주주의를 하겠다는 이 대표의 주장은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다. 탄탄한 팬덤 지지층을 기반으로 대권 가도의 장애물을 없애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내부의 일로 치부해도 되는 것일까. 민주당 당원은 2021년 130만명에서 현재 250만명으로 급증했다. 지난 대선을 계기로 이재명 지지자들이 대거 당원으로 흡수된 것으로 추정한다. 권리당원 규모는 수도권이 호남을 이미 넘어섰다. 그래서 당원 권한을 높일수록 이 대표의 진성 지지층이 당을 지배하게 되는 구조가 된다.

당원권 강화 주장에도 이유는 있다. 세계적으로 직접 민주주의 요구가 커진 배경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있다. 머지않아 블록체인 기술이 범용화되면 당원들은 휴대전화에 애플리케이션을 깔고 클릭 몇 번으로 당 정책에 관여할 수 있게 된다. 의원 수준은 점차 낮아지는 반면 일반 국민 수준은 높아지며 간극이 좁혀진 현상도 배경이다. 직접 민주주의의 가장 큰 약점인 중우정치 위험성이 줄어들고 있다는 의견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당원이 주요 정책을 결정하자는 주장에는 함정이 있다. 이 대표만을 지지하는 팬덤 당원은 최대 100만명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재명 대표→팬덤 당원→민주당 의원'으로 이어지는 의사결정 구조는 4400만 유권자의 뜻을 대변할 수 없다. 누가 몸통이고 누가 꼬리인지 생각해볼 대목이다. 영국 언론인 마틴 울프는 포퓰리즘의 속성을 엘리트에 대한 적대감과 다원주의에 대한 거부라고 간파했다. 반(反)다원주의적 포퓰리스트들에겐 '진짜' 국민만 존재하며 오직 자신들이 대표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선택적으로 여론을 활용하는 것도 문제다. 야권은 국민 다수의 찬성을 이유로 채상병 특검법의 수용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주장하는 전 국민 25만원 지급은 갤럽 여론조사에서 51%가 반대하고, 43%가 찬성했다. 민주당이 돌연 소득대체율을 44%까지 양보하겠다며 연금개혁안 처리를 압박하고 있으나 애초 시민대표단 492명의 선택은 소득대체율 50%였다.

우리 헌법에 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해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고 돼 있다. 국회에 입법권을 준 것은 당원이나 국민 다수의 뜻에 따라 결정하라는 게 아니다. 반대편 진영과 소수까지 고려해 최적 균형을 찾으라는 명령이다.

[신헌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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