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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상법에 단어 하나만 추가해도 주가 오른다? 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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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가운데)이 지난 16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투자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날 “개인적으로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무조건 도입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금융감독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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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자본시장 관련 인사들의 최대 관심사는 정부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과 22대 국회의 ‘상법 개정’ 여부다. 상법 제382조의 3 ‘이사의 충실 의무’ 조항을 바꾸면 지지부진한 국내 증시도 기지개를 켤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상법 개정은 우리 자본시장에 적용하는 헌법을 바꾸는 것과 같은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상법 382조의 3은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고 쓰여있다. 이런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의 비례적 이익’(주주로서 갖는 1주의 가치) 또는 ‘총주주’(전체 주주)를 추가하자는 게 상법 개정의 뼈대다.

법에 고작 단어 하나만 추가해도 주가가 뛸 거라는 게 무슨 말일까.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을 맡은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를 지난 20일 인터뷰했다. 천 대표는 로펌에서 지배주주 부당 지원 사건 등을 담당하며 공정거래법과 회사법 규제의 한계에 눈 떠 책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를 썼다. 최근엔 후속작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가 온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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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가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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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펌에서 회장님들을 변호하는 일을 한 거네요. 업무를 하면서 뭐가 문제라고 느꼈나요?

“법이 회사 쪽에 유리하게 돼 있더라고요. 부당 지원 사건 등에서 회사가 승소하기 좋게 돼 있다는 거죠.”

한국의 이른바 ‘재벌법’(상법·자본시장법·세법·공정거래법 등)의 역사는 규제를 피하려는 자와 규제를 강화하는 정부 간 추격전에 가깝다. 회사가 지배주주 일가에게 비싼 걸 싸게 밀어주고, 회장님 회사에 매출을 몰아주거나, 회장님 회사를 거래에 끼워 넣어 중간에서 통행세를 걷는다. 그런데 이처럼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져도 법원은 여전히 솜방망이 처벌을 한다.

천 대표에 따르면, 그 이유는 우리 법이 회장님과의 거래가 ‘불공평한 것인지 아닌지’에만 규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애당초 사장과 임원들이 겉으로는 회사를 위한다며 실제론 지배주주인 회장을 위해 일한 것 자체가 문제이지만, 정작 법은 이를 처벌하는 않는 셈이다.

— 우리 법과 제도의 공백이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의 원인이라는 건가요?

“우리나라만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 상장회사는 10% 이상 대주주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지분이 분산된 미국·영국·일본 등과 달리, 최대 주주 지분율이 20%에서 최대 50%에 육박하잖아요. 지배주주 입장에선 지분을 더 취득하거나 지배 구조 변경 등을 할 때 주가가 싼 게 좋죠. 또 우리는 지배주주가 자기 이익을 위해 의사 결정을 하고 싶은 생각을 막아줄 법과 제도가 약하잖아요. 그러니 일반 주주를 보호하고 주가가 오르는 쪽으로 행동하게 만들 제도가 필요합니다.”

— 우리 제도엔 왜 그런 공백이 생긴거죠?

“우리나라 상법 회사편은 1962년에 일본 회사법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만들었어요. 이 일본의 법은 2차 대전 이후에 미국이 싹 다 고친 건데요. 문제는 자본주의가 성숙한 미국 사정에 맞게 모든 주주가 분산돼 있고, 이사회가 제대로 돌아가고, 지배주주와의 이해 상충 문제가 없는 현상을 전제로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 법에도 지배주주 문제에 대한 내용이 없게 된 거죠.”

— 상법을 개정하면 뭐가 달라집니까?

“지금까지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에 여러 가지 규정을 만들었지만, 문제는 바탕색을 칠하지 않고 그림만 그려놓은 거죠. 그러다 보니 공백이 너무 많은 겁니다. 미리 원칙은 이렇다 라고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이후에 파생되는 일들에 대해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규제들만 쫙 나열해 놓은 거예요. 예를 들어 지배주주 지분이 높은 회사와의 거래에서 가격을 비싸게 쳐주지 말라고 하니까, 기업들이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게 이번엔 일감을 몰아줘버립니다. 사실은 가격 문제가 아니라 여러 주주가 있는데 왜 주주 1명한테만 몰아주느냐가 문제잖아요. 이렇게 주주 간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하는 법이 있어야 하고,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입니다. 이해 상충이 있을 때 모든 주주를 똑같이 대우하라는 의미지요.”

— 그렇게 되면 일반 주주는 뭐가 좋아지나요?

“지배주주에게 갈 돈이 회사에 남게 되죠. 원래 계열회사나 지배주주 개인 회사, 개인 등에게 빠져나가는 돈이 회사에 쌓이면 배당을 하거나 발전을 위해 투자를 하게 될 겁니다. 그러면 주가가 오르는 거고요.”

— 국내 상장사 배당이 유난히 적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지배주주 지분율이 20%면 1억원을 배당하면 지배주주는 2천만원만 갖고 나머지 8천만원은 모르는 사람한테 가는 거잖아요. 그러니 웬만하면 배당보다 여러 회사에서 급여와 상여금을 받거나, 계열사 간 거래 등 다른 여러 방법을 선호하게 됩니다. 제도의 구멍이 많으니까 내가 꼭 정식 루트로 돈을 받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 지배주주가 회사의 이사로 일하면서 자기 보수를 직접 결정한다는 것도 이상한 것 같습니다.

“사실 상법 368조(총회의 결의 방법과 의결권의 행사)를 보면 주주총회에서 ‘특별한 이해관계가 있는 주주’는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특별한 이해관계’가 과연 무엇이냐를 두고 학설이 갈려요. 만약 학교에서 한 학생에게만 더 좋은 급식을 줄지 결정하는 안건을 투표할 때 혼자만 이익을 받는 그 학생은 투표에서 빠져야죠. 경제개혁연구소에 따르면 2020∼2023년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안건에 이사인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한 경우가 고작 4번뿐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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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이날 코스피는 1.26% 하락한 2687.60에 장을 마치며 2700선 밑으로 내려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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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무부는 상법 개정이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보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여기엔 일단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요.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 조항이 들어가고 주가가 떨어지면 이사가 주주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지거나 배임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건 전혀 아닙니다. 기존 이사들은 지금처럼 경영을 하면 되고요. 딱 이것만 고려하면 됩니다. 합병이나 분할 같은 주주들의 주식을 바꿔주는 자본 거래를 할 때, 그리고 계열회사 간 거래를 할 때 등 주주 간 이해관계가 생길 때 이사가 이해 상충 문제를 살피고 충실 의무를 지게 됩니다. 만약 피해 받는 주주가 있다면 이들에게 보상을 했는지가 중요해지겠죠.”

— 다른 나라도 다 그렇게 합니까?

“사실상 미국의 회사법 역할을 하는 델라웨어주법은 (이사회의) 전체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duty of loyalty to shareholders)가 매우 당연히 인정되는 법리입니다. 독일(연방대법원 판결)은 심지어 대주주도 일반 주주에 대해 충실 의무를 부담하고요. 일본도 아베노믹스의 ‘3개의 화살’ 중 세 번째 화살이 바로 기업 거버넌스 개혁이었죠. 일본 기업들은 회사 간 상호 주식을 갖고 금융기관들이 기업 주식을 주로 보유한 특수성 때문에 경쟁보다 현상 유지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는데요. 그래서 이런 문제를 타파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데려오기 위해 일본의 주주 권리를 외국 수준으로 올리려 한 겁니다.”

— 우리 금융당국은 일본의 밸류업 정책에 강제력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2015년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기업 거버넌스 코드’가 있습니다. 일본 거래소에 상장된 회사들에 적용되는 규범인데요. 우리나라로 치면 상장사가 상장을 유지하기 위해 지켜야 하는 내용들인데 여기에 ‘이사회는 주주에 대한 수탁자 책임을 진다’는 말이 명확히 담겨 있습니다. 해석을 하면 기업의 이사들은 주주의 돈을 맡은 대리인이며 주주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는 것이죠.”

— 우리 재계에서는 일반 주주 보호만큼 지배주주의 경영권 보호 장치도 필요하다고 말하는데요.

“전혀 필요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포이즌필(적대적 M&A 시도가 있을 때 인수 시도자를 제외한 기존 주주에게만 낮은 가격으로 신주인수권을 주는 것)이 있는 건, 10% 미만의 적은 지분을 가진 주주들만 있다 보니 공격자가 들어와서 지분 10%만 인수해도 나머지를 싹 갈아치울 수 있기 때문인데요. 저희는 이미 지배주주 지분율이 30% 내외입니다. 미국처럼 공격자 지분 10%를 희석시킬 독약을 뿌릴 필요가 없고요. 여기에 우리는 자사주(회사가 사들인 자기 주식, 의결권이 제한되고 우호세력에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킬 수도 있는 까닭에 지배주주의 지배력 확대 수단으로 사용) 비중도 상당히 높아 지배주주의 실질적 지분율이 굉장히 높은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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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내 법무부 청사.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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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대표는 상법 개정과 함께 상장사 이사회의 이사 선임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배주주가 이사 전원을 사실상 자기 편으로 선임해 이사회가 ‘거수기’ 역할만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한 행동주의펀드 대표는 “이사회에 일반 주주를 대변할 이사가 1명만 들어가도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고 전했다.

과연 22대 국회는 상법 개정에 발 벗고 나설까? 개인 투자자 집단의 열망과 달리, 아직 전망은 불투명한 편이다. 금융 당국의 핵심 관계자는 “10여년 전까진 금융 당국이 직접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에 상장회사 이사회에 관한 조항이 있었으나, 지금은 법무부가 관할하는 상법에만 해당 내용이 있다”며 “법무부가 금융 당국의 ‘상전’인 만큼 법무부가 반대하면 법 개정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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