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16 (일)

[2030 플라자] 환자는 의사보다 똑똑하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언젠가부터 목덜미가 아프기 시작했다. 당직실에서 높은 쿠션을 베고 잠든 때부터였을 것이다. 여행지의 낯선 베개를 사용하고 난 뒤 같기도 했다. 근육에 담이 결린 게 분명했다. 목덜미가 손대지 못할 정도로 아프고 움직이면 끊어질 것 같았다. 증상이 심하면 한쪽으로 고개가 굳어져 버리기도 했다. 근육이 긴장하고 늘어난 탓에 일부 근섬유가 손상된 것이다.

아파도 억울하지는 않았다. 평소 나는 자세가 좋지 않았다. 고개는 갸우뚱하고 걸을 때는 구부정하다. 병원에서 종일 모니터를 보다가 집에 돌아오면 다시 모니터를 본다. 덤으로 이동 시에는 항상 스마트폰을 본다. 글을 쓸 때는 몸을 구긴 채 화면을 노려본다. 목덜미 근육이 굳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환경이다. 다만 증상이 심해져 자꾸 어깨나 팔까지 뭉치고 아팠다. 스트레칭으로 목덜미를 풀어주고 헬스장에서 근육을 단련해 나아지려 애썼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통증이 심하고 한번 아프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제대로 앉아있기 어려웠고 어떤 자세를 잡아도 편하지 않았으며 가방을 메면 끊어지듯 아팠다. 그럴수록 목을 각종 방향으로 풀고 목덜미 근육을 눌러댔지만 통증은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뭉친 근육은 언젠가 풀리겠지만 집요한 통증 때문에 고개를 자유롭게 들기조차 어려웠다.

얼마 전 야간 근무 때 너무 아픈 나머지 간호사 선생님에게 물었다. “목덜미가 많이 아픈데 좋은 방법 있나요.” “왜 저한테 물어보세요. 그런데 저는 목 디스크여서 수술받았어요.” 순간 정신이 퍼뜩 들었다. 다음 날 정형외과 친구에게 물어봤다. 답변은 아주 간단했다. “목 디스크구먼 뭘 물어보고 있어.”

충격이었다. 육 년 넘게 담이 결린다며 한 번도 디스크를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주마등처럼 아팠던 시간이 스쳐 지나갔다. 명백히 디스크의 연관통이었다. 게다가 항상 오른쪽 목만 아팠던 것도, 어떤 자세를 취해도 통증이 있었던 것도, 어깨와 삼두가 저리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마침 화면이 작은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나자 증상이 심해졌고 근래 과중한 당직으로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나도 목 통증을 보는 의사라는 것이다. 목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픈 환자들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대부분 근육의 결림이지만 자주 반복되면 목 디스크를 의심해 봐야 합니다. 반드시 전문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세요.” 하지만 나는 그토록 통증에 시달리면서 전혀 의심하지도 않았으며 전문 병원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역시 환자는 의사보다 똑똑할 때가 많다. 의사는 남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할 뿐이지만, 환자는 자신의 육체와 더불어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만 한다. 결정적으로 의사인 환자가 유독 미련하다. 찾아보니 인터넷에는 디스크 환우회가 있었다. 올바른 목 스트레칭을 알려주는 동영상은 조회 수가 몇 백만을 넘겼고 목과 허리 통증 전문의는 백만 유튜버였다. 그제야 내가 디스크에 가장 안 좋은 방식으로 스트레칭을 해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쉬고 있던 달리기가 목디스크에 가장 좋은 운동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주변 의료진에게 물어보자 디스크로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각자 노하우도 있었다.

이제 나는 현명한 환자가 되었다. 어차피 수술이 어렵기에 일단 습관을 교정해야 했다. 스트레칭 방법을 바꾸고 경추 고정 베개를 쓰고 목을 고정하는 장비를 사용했다. 이전처럼 목을 꺾지 않고 자세를 교정했으며 이동 중 스마트폰 사용을 끊었고 러닝을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나자 심각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의사인 나도 무엇인가 배웠다. 분명히 환자는 의사보다 뛰어나다. 환자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며 몸에 대해 끝없이 고민한다. 모두가 자기 몸에는 훨씬 전문가다. 또한 의사에게도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 경험은 진료실 바깥이나 본인 몸에서 비롯될 수 있다. 지금부터 목 디스크 환자는 내게 평생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조선일보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남궁인 이대 목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작가]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