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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朝鮮칼럼] 위기의 대한민국 정통 세력, 되살아날 방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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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패배한 근본적 이유는

汚名이 된 ‘보수’라는 이름 때문

‘젊은 보수’ ‘따뜻한 보수’ 외쳐봐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

아프지만 보수 이름 도려내고

‘자유’의 연고를 바르자

“우린 보수파 아니라 자유파다”

이름 바로잡아야 나라가 산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한 시인의 절창처럼 인간은 언어로써 세계를 인식한다. 사물에 알맞은 명칭이 부여되면 ‘하나의 몸짓’은 ‘꽃’이 될 수 있다. 이름이 잘못되면 격렬한 ‘몸짓’도 뿌연 재가 되어 흩날리고 만다. 매사 명(名)과 실(實)이 들어맞아야 세상의 질서가 바로 선다. 산을 물이라 하고 바다를 뭍이라 한다면, 인간세(人間世)의 규약이 무너지고 개개인은 속임수에 빠져든다. 그렇기에 춘추의 혼란 속에서 공자(孔子)는 정치의 최우선으로 정명(正名)을 외쳤다.

최근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이는 대통령의 오만을 거론하고, 어떤 이는 여당 대표의 미숙을 지적하지만, 진부한 남 탓은 아닐까? 더 근본적인 원인이 케케묵은 이름에 숨어 있을 듯하다. 여당을 패배로 몰고 간 음험한 이름은 ‘보수(保守·Conservative)’라는 낙인이다.

물론 자유주의 전통이 깊은 북미나 유럽에서 보수는 오명이 아니다. 프랑스 자코뱅의 광란을 거울삼아서 영국의 버크(Edmund Burke·1729~1797)는 개량과 실용의 보수주의를 제창했다. 그 이후 보수주의자들은 좌·우파 양극단을 피해 점진적 개혁과 실용적 발전을 도모했다. 디즈레일리, 비스마르크, 처칠, 레이건 등의 유능한 정치인, 벌린, 아렌트,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의 탁월한 이론가, T S 엘리엇, 헤밍웨이, 톨킨 같은 저명한 문인들까지 19~20세기 서양에선 급진주의와 극단주의에 맞서 사회 발전의 균형을 잡았던 다양한 보수주의자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보수주의는 오늘날 한국의 대중에게 어필하지 못한다. 전통의 지혜는 망실됐고, 자유의 역사는 짧디짧고, 법치의 경험은 얇디얇기 때문이다. 현대 한국어에서 보수는 낡고, 썩고, 칙칙하고, 냄새나고, 고리타분한 뉘앙스를 풍긴다. 반면 진보는 젊고, 발랄하고,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이미지를 갖는다. 그런 식의 단순·무식한 개념 규정은 폐기돼야 마땅하지만, 언중의 일상어를 바꾸려는 시도는 밀물에 맞서려는 노력만큼 무모하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는 이미 멸칭이 돼버렸다. 보수의 멍에를 진 세력이 진보의 날개를 단 세력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젊은 보수’ ‘따뜻한 보수’ 등의 구호를 외쳐봐야 비탈길을 오르는 싸움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허우적거리기보단 평지로 나아가는 정공법이 필요하다.

한국 현실에서 보수 세력이 다시 일어서려면 보수의 이름을 도려내는 길밖에 없다. 상처가 나겠지만, 그 환부엔 ‘자유’의 연고를 바르면 된다. 이미지 쇄신용 신장개업의 목적만은 아니다. 보수주의란 그 자체로 정연한 정치 이념이라기보단 급진과 과격, 극단과 맹목을 경계하며 전통의 지혜와 경험적 지식을 활용하려는 신중하고 사려 깊고 실용적인 삶의 태도를 이른다. 지난 200여 년 서양 문명을 일으킨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초는 자유주의였다.

한국 헌정사도 마찬가지다. 구한말 6년간 옥고를 치르면서 자유의 깊은 뜻을 깨달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민주공화국을 지킨 자유주의 혁명가였다. 대한민국은 식민지의 유습을 끊고 전근대의 모순을 깨는 자유민주주의 혁명으로 시작됐다. 대한민국 정통 세력은 보수가 아니라 자유의 기치 아래서 근대화·산업화·선진화의 혁명을 이룩했다. 산업화의 과정에서 개발 독재의 시기를 거쳤지만 경제적 자유화가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지면서 권위주의는 지양되었다. 대한민국 정통 세력은 자유가 실현될 수 있는 물질적 기초를 놓고 자유의 신장에 매진했던 개혁적 진보 세력이었다. 유럽이나 북미라면 개혁적 진보 세력이 보수를 자임할 수 있겠지만, ‘보수=수구=꼴통’의 등식이 지배하는 한국적 토양에서 보수의 이름은 주홍글씨다.

대한민국 정통 세력은 이제 보수의 족쇄를 벗고 자유의 영예를 되찾아야 한다. 한국 현대사를 긍정하고, 극단·급진주의를 반대하고, 법치 파괴의 권모술수를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보수파가 아니라 자유파다!”라고 외칠 때다. 그래야만 주체사상에 혼을 팔고, 중국에 “셰셰”하고, 떼 지어 “미국 소, 미친 소”를 부르짖고, 무조건 FTA를 반대하고, 반일 몰이를 일삼는 낡고 어둡고 부패한 비자유(illiberal) 선동 세력이 진보라 불리는 언어 착란을 시정할 수 있다.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이름을 바로잡아야 나라가 산다.

조선일보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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