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동식의 기이한 이야기]
인기 상승할수록 위험해진
환경운동 퍼포먼스의 스타
세화는 설마 자신이 모기를 위해 시위하게 될 줄은 몰랐다. 솔직히 말해 세화는 모기를 혐오했지만, 그래서 더 시위에 도취됐다. 이 얼마나 깨어있는 행동인가. 육식 반대 같은 평범한 채식주의 시위와는 한참 다르지 않은가. 세화는 새삼 테일러 선생님을 따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식 축산 기업 시위 현장에서 만난 테일러는 세화가 몰랐던 세상을 알려줬다. 세화는 크게 감화됐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든 불임 모기를 방사해 모기의 번식을 막는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발상입니까? 자연을 거스르는 행위의 결과는 결국 인류에게 돌아올 것입니다!”
테일러가 주도한 ‘모기 시위’는 크게 화제가 됐다. 모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테일러의 주장은 일견 타당해보였고, 순식간에 핫한 시위가 됐다. 그 현장에 함께했다는 사실만으로 세화는 자랑스러웠고, 계속해서 테일러를 따르는 계기가 됐다. 테일러의 다음 행보는 ‘김의 귀향’ 퍼포먼스였다. “여러분! 김은 원래 바다 식물입니다. 바닷속에서 자유롭게 살던 김에게 우리 인간이 어떤 끔찍한 일을 저질렀습니까? 밭에서 나는 김이라뇨!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자연이 정해둔 선을 넘어선 안 됩니다!”
일러스트=한상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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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와 추종자들은 ‘육상 양식’으로 재배한 김을 밭에서 죄다 뽑아 바다에 뿌리는 퍼포먼스를 펼쳤고, 결국 공권력에 제지당했다. 세화도 그 과정에서 난생처음 수갑까지 차게 됐지만, 오히려 영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테일러와의 만남은 그녀에게 행운이었다. 그저 채식주의만 주장하던 자신이 좀 더 거시적인 관점을 가지게 됐다고 믿었으니까. 테일러는 인위적인 모든 것을 비판했고,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 그것이었다.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자연은 그대로 자연스러울 때 가장 완벽합니다!”
그것으로 테일러는 이 바닥의 ‘셀럽’이 될 수 있었다. 사실, 급격한 기술 발전으로 인한 두려움은 모두의 마음속에 존재했다. 특히나 생명 윤리 관련 문제들은 골치 아픈 복잡한 일이었는데, 가장 단순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자연 그대로의 형태가 가장 완벽하다고. 점점 더 많은 이가 열광했다. 테일러는 의식 있는 선구자이자 존경받는 스승으로 급부상했다. 세화는 더욱 열성적으로 테일러를 추종하며 모든 행보에 동참하려 애썼다. 테일러 역시 세화를 아꼈고, 거기서 세화는 자부심을 느꼈다. 아마 그래서 ‘그 시위’에도 아무 거부감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이 시대의 인류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짓이 뭔지 아십니까? 바로 ‘인공 자궁’입니다. 어머니의 몸이 아닌 기계 장치 자궁에서 인간이 태어난다고요? 이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예전의 세화였다면 이 주장의 반대편에 섰을 가능성이 컸다. 열 달이나 아이를 품고 있어야 하는 임신 시스템 자체가 여성에게 얼마나 불리한 일인가? 신체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인공 자궁의 출현 이후 여성 삶의 질은 크게 나아졌다. 윤리적 문제가 좀 있을지언정, 인공 자궁을 굳이 그녀가 반대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세화는 테일러의 입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솔직히 말해 인공 자궁에서 유전자 조작이 펼쳐지는 걸 다들 알잖아요. 키 크게, 머리숱 많게, 지능 높게, 쉬쉬하면서 다 조작하고 있죠? 이게 아이를 낳는 건가요, 게임 캐릭터 만드는 건가요? 인간은 신이 아니에요. 자연스럽지 않은 이런 행위들 때문에 인류는 결국 멸망할 거예요.” 테일러의 시위는 언제나 그렇듯 퍼포먼스와 함께했다. 다 같이 인공 자궁 배양시설로 몰려가 기습 시위를 펼쳤다. 고객의 아기들이 잉태되고 있는 ‘기계 알’ 앞에서 반대 구호를 부르짖었다. 세화는 테일러 바로 앞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며 희열을 느꼈다. 상황이 무르익었을 때, 테일러 선생님은 한 발 앞으로 나서 준비해온 선언문을 낭독했다.
“지금 이 공장에 있는 인공 자궁 수백개에는 모두 유전자 조작이 이뤄졌을 겁니다. 저 ‘알’들에는 완벽한 자식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부모들의 삐뚤어진 욕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닙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발표합니다. 지난 1월부터 현재 6월까지, 이 공장에서 시술된 모든 아이에게는 그 어떠한 유전자 조작도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기업에 잠입한 우리 조직원이 몰래 조작한 덕분입니다. 이제 이곳의 알에서 태어날 아이들은 자연적인 형태의 원래 우리네 아이들인 겁니다!”
충격적인 발표에 세화마저 깜짝 놀랐다. 이게 과연 뒷감당이 가능한 행위인지 헷갈렸다. 예상대로 이번 시위가 일으킨 파장은 컸다. 테일러를 향한 비판도 엄청났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 많은 아기에게 테러를 저지를 수 있느냐고 말이다. 테일러는 당당했다. “우린 테러를 저지른 게 아니라, 유전자 조작이라는 테러를 막은 것입니다!” 하지만 세화는 당당할 수 없었다. 메시지를 위해서라면 이런 일까지도 괜찮은 걸까? 처음으로 강렬한 의심이 생겨났다.
[김동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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