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이름'에 인지도 다시 쌓는 건 숙제
기존 아파트도 새 이름 요구…막무가내 '도색'도
# 지난 2021년 분양해 이달 입주 예정인 전남 '광양 한라비발디 센트럴마크' 입주 예정자들은 시공사인 HL D&I 한라가 최근 '에피트'라는 새 브랜드를 출시한단 소식을 들었다. 이에 전국 7개 단지와 함께 '새 이름을 쓸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을 담은 공문을 한라에 보냈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자마자 브랜드가 바뀌어 '구축' 같은 느낌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한라는 "새 브랜드는 출시 이후 신규 분양 단지에만 적용한다"며 "기존에 설계돼 시공 중인 현장엔 이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회신했다.
서울의 한 아파트 단지 /아이클릭아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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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긴 브랜드 '갈아 입기'
최근 건설사들이 '새 옷' 입기에 분주합니다. 아파트 이름을 바꾸고 디자인을 재정비하면서 브랜드 쇄신을 추진하는 겁니다. 건설업계가 아파트에 고유의 브랜드를 쓴 세월이 20여년 지났고, 또 최근 주택경기가 침체되다 보니 '새로운 탄력'이 필요해서이기도 할 겁니다.
금호건설은 지난 7일 신규 주거 브랜드 '아테라(ARTERA)'를 선보였죠. 2003년부터 쓰던 '어울림'과 '리첸시아' 브랜드를 대신하는 것입니다. 새 이름은 다음달 분양을 앞둔 '고양 장항지구', '청주 테크노폴리스 A8블록' 등에 적용됩니다.
HL D&I 한라도 지난달 새로운 브랜드 '에피트(EFETE)'를 공개했습니다. 기존 '한라비발디'를 선보인 지 27년 만의 변화인데요. 다음달로 계획된 '이천 아미지구', '용인 금어지구'가 '에피트'를 다는 첫 사업장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브랜드 이름은 그대로 두되, 디자인만 새 단장 하는 곳들도 있죠. 동부건설은 '센트레빌' 브랜드 리뉴얼을 위한 공모전을 다음달 3일까지 진행하고 있는데요. 2001년 출시한 브랜드는 유지하면서 BI(Brand Identity) 로고 디자인만 바꾸는 작업이랍니다.
시티건설은 지난 3월 자사 브랜드 '프라디움'의 BI를 탈바꿈했습니다. 새 로고는 작년말 준공된 서울 '신내역 시티프라디움'과 대구 '죽전역 시티프라디움'에 담겼고요. 시티건설은 BI와 함께 CI(Corporate Identity)도 변경했죠.
코오롱글로벌도 같은 달 2000년 출시한 브랜드 '하늘채'의 외관을 재정비해 새로 내놨습니다. H를 강조해 바꾼 BI를 문주(단지 주출입구 구조물)와 랜드마크동에 설치하는 식이죠. 새 디자인을 대전 '유성 하늘채 하이에르'를 시작으로 수주 및 분양 예정 현장에 적극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랍니다.
대형사 중에선 GS건설이 '자이(Xi)' 브랜드 이미지를 두고 내부 검토 중입니다. 올해 신설한 고객경험혁신팀(CX)과 브랜드마케팅을 주축으로 브랜드 리뉴얼을 고민하고 있답니다. GS건설 관계자는 "전반적으로 진단하는 단계일 뿐 구체적인 리뉴얼 계획이나 일정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자이 이름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왼쪽은 HL D&I한라의 새 브랜드 '에피트'를 적용한 단지의 투시도. 오른쪽은 코오롱글로벌이 리뉴얼한 '하늘채' 외관이 적용된 대전 '유성 하늘채 하이에르' 투시도 /자료=각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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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분양단지 '소급 적용' 사례도 있지만…
아파트 브랜드를 바꾸면 건설사 입장에선 새로운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고급화 전략을 펼칠 수도 있고요. 다만 익숙한 브랜드를 버리고 다시 인지도를 쌓기까지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는 모험이기도 합니다.
새 이름을 다는 아파트 입주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입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인 격이죠. 그러나 기존 이름을 쓰거나 써야 할 단지 소유주들이나 예비 입주자들은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죠. 그래서 새 단지명을 쓰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겁니다. 같은 건설사에서 새 브랜드가 나오면 기존 브랜드가 오래된 느낌을 주기 때문이죠.
입주 예정자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지난 2019년 '꿈에그린'에서 '포레나(FORENA)'로 브랜드를 개편한 ㈜한화 건설부문은 파격적으로 이런 요구를 수용했죠. 당시 회사는 2020년 이후 입주 예정인 8개 단지에 신규 브랜드를 적용했습니다. '노원 꿈에그린'을 '포레나 노원'으로 바꿔주는 식이죠.
최근 새 이름을 내건 곳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아테라'를 출시한 금호건설은 기존 '어울림'과 '리첸시아' 일부 단지의 간판을 바꿀 예정이랍니다. 금호건설 관계자는 "최근 단지 위주로 일부 바꾸는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말합니다.
또 최근 수주한 '춘천 만천리 2차'에 아테라를 적용하기로 하면서 지난해 분양한 1차 단지에도 소급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아테라로 바꾸자고 제안했고 현재 입주민들의 의견을 구하는 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기존 분양단지의 브랜드를 바꾸려면 최소한 건물 외벽, 출입 게이트를 비롯한 단지 외부 사인물에 표시되는 브랜드 마크를 변경하는 등의 보완 작업이 필요합니다. 공사 단계에 따라 그만큼 비용이 추가될 수도 있고요.
단지의 설계나 조경 디자인 등의 '일관성'까지 생각하면 더 그렇죠. 신규 브랜드의 정체성을 모두 갖춰 발표한 뒤 새로 분양하는 단지에만 적용하는 것으로 선을 긋는 게 일반적입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디자인 비용은 소액이더라도 모든 현장의 사인물을 전부 바꾸려면 수백억원이 들 수 있다"며 "그래서 건설사들은 전후 6개월간 분양하는 현장이 없을 때를 이용해 새 브랜드를 발표하기도 한다"고 귀띔했습니다.
이미 준공된 아파트 입주민들이 새 브랜드를 요청하기도 한답니다. 아파트 이름을 변경하려면 대표회의 의결, 주민선호도 조사, 건설사 협의, 소유주 80% 이상 동의, 구청 허가 등 절차만 밟으면 됩니다. 하지만 새 브랜드는 그 소유권을 가진 건설사가 승인해야 달 수 있죠.
또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하자보수 기간인 5~10년 내 요청하는 경우 내부 절차에 따라 판단해 허용할 수 있지만 원칙은 신규 브랜드 출시 이후 짓는 아파트부터 적용하는 것"이라며 "건설사가 나서서 과거 단지까지 바꿔주는 일은 거의 없고 입주자들이 건설사 승낙을 받아 자체적으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20~30년 된 아파트가 무단으로 홈페이지에서 BI 이미지 파일을 내려받아 도색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있답니다. 이 관계자는 "하자보수 문제도 있고 새 브랜드 이미지에도 안 좋지만, 고객인 입주자들에게 소송 등으로 대응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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