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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DJ 구명 그리고 5·18"...권노갑 "광주 시민이 염원한 건 관용과 배려의 정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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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인터뷰
"외국 외교관 접촉하며 광주 실태 알려"
"총검을 들이댄 전두환 정권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생각했어요. 감시망을 피해 외교관들과 만나 작금의 상황을 전했습니다."

한국일보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발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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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광주 5·18민주화운동이 44주년을 맞이한다. 1980년 5월 광주에 가해졌던 전두환 군부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과 말살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됐다. 13일 한국일보는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을 만났다.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 'DJ(김대중) 복심'으로 불렸던 권 이사장에게서 광주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려던 그들의 노력과 비화를 들을 수 있었다.

김대중 석방·계엄 해제 촉구한 성명, 외신 통해 전 세계로 퍼지다


1980년 5월 17일 밤 11시쯤. 김대중 대통령이 계엄군에 구속됐고, 권 이사장과 그의 동료들에게 수배령이 떨어졌다. 하루아침 사이 도망자 신세가 됐지만 대책이 필요했다. 1970년대 서울대 운동권의 전설로 불렸던 심재권 당시 '민주회복 민족통일 국민연합(국민연합)' 학생대표 위원은 단체 명의로 △김대중 석방 △계엄령 해제 △미국의 전두환 지지 거부 등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작성했다.
한국일보

13일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김대중도서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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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이사장은 성명서를 손에 쥐고 주한일본대사관 주변 골목길 주변을 서성였다. 아사히신문 한국지부에 근무하고 있는 비서 윤모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권 이사장은 "국내 언론에서는 절대 성명을 다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외신의 힘을 빌리고자 했다"고 했다.

윤씨가 마침내 골목길로 들어섰다. 권 이사장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 세계에 알려달라"는 부탁을 하는 동안, 몸이 움츠러드는 기분이 들었다. 아사히신문은 21일 자 1면 톱 기사로 국민연합 성명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기자회견 등을 다뤘다. 다만 권 이사장은 성명서 보도 시점을 "22일 자 조간"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미일 외교관 동행해 광주 실태 알리기 앞장서

한국일보

13일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인터뷰에서 양영두 흥사단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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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서와 아사히신문 보도만으로는 부족했다. 광주시민들은 이미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이들은 "김대중을 석방하라!" "계엄을 해제하라!"고 외쳤다. 신군부가 광주로 향한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많은 이가 죽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권 이사장은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기로 했다. 과거 영어교사로 근무한 덕에 영어가 어느 정도 가능했고, 김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알게 된 외신 및 해외 외교관들이 적지 않았다.

그는 "미국과 일본 대사관을 접촉해 광주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심 대표는 주한미국대사관 공보문화원장을 동행했고, 당시 신민당 정책위원 국회비서관이었던 양영두 흥사단 상임대표는 주한일본대사관 1등 서기관과 (광주) 현장을 다녀왔다"고 말했다.
한국일보

1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김대중도서관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양영두 흥사단 상임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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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쉽지 않은 길이었다. 신군부의 감시망을 피해, 지인의 차량을 옮겨 타고 힘겹게 광주에 도착했다. 양 대표는 홍남순 변호사의 자제, 송기숙 교수, 시민군 관계자, 계림사진관 정운본 사장 등의 집에서 숙식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순 없었다. 그게 너무나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양 대표와 심 대표는 지나가는 시민을 무고히 대검으로 찌르고, 겁에 질려 피한 학생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던 당시 현장 상황을 적고 또 적었다. 광주시민들에게 상황을 묻고 또 물어 확인했다. 그렇게 확인한 진실은 이후 미국과 일본 등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됐다.

전 세계 지도자 관심 모았지만…끝에 기다린 건 신군부의 고문


그제야 전 세계 지도자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권 이사장은 "심각성을 알게 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이 탄원서를 내기 시작했다"며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부터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총리까지 광주를, 김대중 대통령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권 이사장과 양 대표는 남영동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벨트 6개로 권 이사장의 손과 발을 묶고 입안에 물을 뿌려댔다. "고통은 고문을 당해본 사람들만 안다"며 잠시 말을 멈춘 권 이사장은 "차라리 죽고 싶었지만, 심 대표의 행방을 묻는 공안에 넘어갈 순 없었다"고 했다. 한 달간 매질과 물고문을 당한 양 대표는 한쪽 눈을 잃었다. 양 대표는 씁쓸하게 웃으며 "지금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5·18 광주시민이 염원한 건 관용과 배려의 정치…김대중 박사논문 준비 중"

한국일보

13일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김대중도서관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은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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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로 복귀한 김 전 대통령은 '타협과 협치의 정치'를 펼쳤다. 권 이사장은 "김 전 대통령은 결국 중요한 건 국민이 하나 되고 화합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철학은 관용·배려·화해와 협력이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그것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서 광주시민들이 염원한 대한민국 정치였기 때문"이라며 "지금 여의도는 한의 정치, 증오의 정치, 대치의 정치로 움직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권 이사장은 현재 한국외국어대학 영문학 박사과정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철학과 업적, 그리고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주제로 한 논문을 영문으로 쓸 예정이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5‧18 정신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보람"이라고 했다.

문재연 기자 munj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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