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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20〉끊임없는 활로 찾기, '김밥'의 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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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신문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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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다가 일본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미술가를 아는가.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물방울무늬' 작품으로 유명한 동시대 세계적 작가 쿠사마 야요이. 루이비통은 그녀와 두 차례 협업해 주목을 받았다. 1929년생인 그녀의 어린 시절은 부유했지만 행복하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았으나 그녀의 꿈을 꺾진 못했다. 활로를 어떻게 찾았을까. 미국 작가 조지아 오키프의 작품에 감동을 받고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그녀는 외면하지 않고 미국 유학 및 미술계 진출에 필요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 전시회에 초청받았다고 일본정부와 부모를 속여 유학 허가를 받았다. 부모와 인연을 끊는 조건으로 학비를 받고 작품 2000점, 기모노 60벌을 들고 비행기를 탔다. 볼품없는 동양 소녀가 뉴욕미술계에 어떻게 이름을 알렸을까. 베트남 전쟁 중에 대통령 리처드 닉슨에게 공개 구애편지를 썼다. 지구를 자신의 작품 모티브인 '물방울'에 비유하면서 대통령과 자신이 연인이 되어 증오와 갈등에 빠진 '물방울' 지구를 구하자는 내용이다. 뉴욕증권가에선 물방울무늬를 맨몸에 칠하고 미국 돈이 전쟁에 쓰이는 것을 반대한다며 누드퍼포먼스를 벌였다. 물방울무늬 내복만 입고 브룩클린 다리 위 조형물에 올랐다. 초청받지 못한 베니스 비엔날레 앞에서 1500개의 거울 공을 전시하고 개당 2달러에 팔았다. 미술의 상업화를 거부한다고 했다. 부드러운 천을 부풀려 남근을 상징하는 모형 수천개를 만들어 배 모양으로 전시했다. 앤디 워홀 등 다른 작가가 그녀의 작품을 모방하자 공개적으로 맹공을 퍼부었다. 모르쇠로 일관하던 뉴욕타임즈 등 언론은 물방울무늬에 기모노를 입고 좌충우돌하는 그녀를 대서특필했다. 힘들었던 우리 삶을 돌아보자. 그녀처럼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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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작가 이소연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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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 '김밥'이 세계적으로 활로를 찾은 과정도 다르지 않다. 옛날 한국유학생이 점심시간에 김밥을 내놨다가 누군가 뱀을 먹고 있다고 신고해 경찰이 출동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혐오감을 주거나 불결하다고 평가받았다. 최근 해외 상황은 어떤가. 냉동 김밥이 인기를 끌었다. 저렴하고 긴 유통기간, 전자레인지에 넣어 잠깐 돌리면 되는 편리함, 고기를 넣었는지에 따라 채식 또는 육식 선호자 모두를 만족시킨다. 어떤 어린 학생은 점심시간에 김밥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며 먹는 동영상을 공개했고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냄새난다고 기피되던 김밥이 'K컬쳐' 에 힘입어 글로벌 건강식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김은 파래를 가리키는 말로 단백질, 비타민이 많이 들었다. 콜레스테롤을 체외로 배설하여 동맥경화, 고혈압을 예방한다. 신라시대부터 먹기 시작했다. 조선 인조 시절 해변에서 참나무 가지에 김이 붙은 것을 발견하고 양식하기 시작했다. 조미 김은 최고의 수출품이다.

김밥은 밥을 김으로 감싸 둥글게 말아 잘라낸 음식이다. 재료를 넣고 참기름과 소금, 참깨 등으로 간을 한다. 일본 초밥의 일종인 후토마끼(김쌈밥)의 영향을 받았다. 옛날엔 밥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지만 속재료가 다양하고 많아지며 영양을 갖춘 건강식이 됐다. 빨리 만들어 빨리 먹을 수 있고 걷거나 서서 먹을 수 있어 시간을 아낀다. 두터운 김으로 싸여 있어 흘리거나 남기지 않아 낭비가 없다. 반찬이 필요하지 않다.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인기다. 백화점 식당가에도 진출했다. 재료에 따라 멸치김밥, 참치김밥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충무김밥은 속재료 없이 밥을 김으로 감싸고 섞박지, 오징어무침과 같이 먹는다. 건강한 김밥은 떡볶기, 라면을 먹을 때 죄책감을 덜기도 한다. 김밥의 성공은 수많은 고급음식에 맞서 좌충우돌 끊임없이 활로를 찾은 결과다.

창의는 순간의 번득임에 그쳐선 안된다. 삼성이 반도체에, 현대가 중동 건설시장에 뛰어들 때를 기억하자. 돈키호테의 패기와 열정, 무모한 도전은 창의를 실현하는 최고의 무기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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