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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르포]석굴암 코앞까지 밀려온 산사태···24개소 뚫렸지만 파악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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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석굴암 초입 휴게소 바로 옆으로 가파른 산사태 흔적이 남아있다. 지난 8일 드론으로 촬영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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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석굴암이 있는 경북 경주 국립공원 토함산 일대 24개소에서 산사태가 발생했고, 피해지가 복원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산사태로 무너진 바위가 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 코앞까지 밀려왔다. 인근 보행로 주변, 매점, 사찰 근처에도 산사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인명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관리기관은 정확한 산사태 발생 현황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8일 녹색연합과 함께 경주 국립공원 일대 산사태 모니터링을 진행한 결과 토함산 정상부를 중심으로 서쪽 경주 진현동·마동 등과 동쪽 문무대왕면을 중심으로 총 24개소의 산사태가 확인됐다. 대부분 2022년 9월 태풍 힌남노 이후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주로 해발 400~700m 사이에서 집중 발생했고, 크기는 최대 6611㎡(2000평) 규모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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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연합이 파악한 경주 국립공원 산사태 발생 흔적은 총 24개소에 달한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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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뒤편 “나무 한 그루가 가까스로 지탱”


산사태가 남긴 황폐한 흔적은 국립공원 초입부터 찾아볼 수 있었다. 국립공원 주차장 우측 공간은 휴게소 및 매점으로 이용되었으나 휴업 상태였다. 휴게소 직원은 “추가 붕괴 위험이 있어 장사를 하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면서 “거의 2년간 제대로 된 조처가 없어 피해가 막심한 상태”라고 말했다.

직원 말처럼 휴게소 앞마당은 산사태로 뜯겨나간 채 방치되어 있었다. 계곡 방향으로 설치됐던 나무 계단과 보도블록은 부서지고 깨졌다. 토사와 바위가 만든 낭떠러지 사이로 콘크리트와 전선, 기둥째 뽑힌 나무가 어지럽게 엉켜있었다. 낭떠러지와 휴게소 사이 설치된 안전장치는 깨진 보도블록 위에 임시로 세운 얇은 펜스가 전부였다. 임시 펜스는 바람에도 들썩거릴 정도로 허술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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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초입 휴게소 건물 바로 앞으로 가파른 낭떠러지가 형성돼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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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인 석굴암도 바로 뒤편에 산사태 흔적이 발견됐다. 석굴암 좌측 뒤편 산길로 5분쯤 걸어 들어가니 성인 남성 키보다 큰 둘레의 바위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바위 위쪽으론 가파른 낭떠러지가 만들어졌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석굴암에서 200m 떨어진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해 석굴암 방향으로 직선 유로가 형성되어있다”면서 “마치 시한폭탄처럼 흙과 암석이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에도 가파른 절벽으로부터 무너져내린 흙과 바위가 석굴암 방향으로 쏟아져 있는 것이 확인됐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농학박사)는 “석굴암 뒤 산사태는 나무 한 그루가 가까스로 (산사태를) 잡고 있다”면서 “비가 오면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떠내려왔던 토석류가 나무 뒤에 스크럼을 형성해 석굴암을 덮치지 않고 있는데, 비가 내려 홍수위가 올라가면 부토들과 돌멩이들이 중력 방향에 있는 스크럼으로 떨어지고, 스크럼이 해체되면 산사태가 석굴암을 덮칠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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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함산 북서쪽 숲에서 산사태로 숲 일부가 움푹 팬 채 토사가 노출돼있다. 녹색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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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시간쯤 보행로를 걷는 동안 산사태 흔적은 곳곳에서 확인됐다. 토함산 정상 동쪽의 문무대왕면에선 채석장과 맞먹는 2000평 규모의 산사태 흔적이 발견됐으며, 주차장 좌측 보행로에서도 스키장 최상급 코스 경사도 수준으로 급격한 낭떠러지가 형성돼 있었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사찰 방향으로도 산사태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방지책이라곤 얇은 철제 펜스 두 개가 전부였다.

서 위원은 “시급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토함산 5km 근방엔 범곡리, 신계리, 활성리, 말방리 등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토함산 지구는 고도보다 경사가 급하다. 또 토함산엔 소나무와 잣나무 침엽수 조림지가 형성돼 있는데 잣나무와 소나무는 천근성 수종이라 땅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다. 즉, 산사태가 발생하면 급경사에서 빠르게 떨어지는 토사가 브레이크 없이 마을을 덮칠 우려가 있다. 서 위원은 “기후위기로 극한호우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요즘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계기관 1년 8개월째 파악 못 하고 방치


문화재는 물론 주민들의 안전까지 위험한 상황이지만, 관계기관은 산사태 발생 현황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은 지난해 12월 ‘국립공원 산사태 발생지 현황조사(모니터링)’ 보고서를 발표하고 경주 국립공원에서 산사태가 2개 발생했다고 적었다. 이번 녹색연합 합동 모니터링에서 확인된 산사태는 보고서에 담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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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경주 토함산 국립공원 내 보행로 아래 방향으로 산사태가 발생해있다. 이홍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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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공단이 산사태 발생지역을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면서 해당 지역은 힌남노 발생 이후 1년 8개월이 넘도록 복구되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국립공원이라 관리책임이 나뉘어져 있어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에 산사태 정보 입력이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반 산지에서 산사태가 발생하면 국유림은 산림청이, 공유지는 지자체가 조사하도록 되어있다. 하지만 국립공원의 경우 국립공원공단이 모니터링을 해 지자체에 통보하고 지자체가 NDMS에 입력하면 산림청 예산으로 북구가 진행되는데 이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는 “공단은 아무래도 탐방객 안전 위주로 업무를 수행하는 터라 보행로 인근만 응급조처를 했던 상황”이라면서 “힌남노 이후 자체적으로 산사태 발생지 10개소를 파악해 경주시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번 모니터링에서 발견된 산사태 발생지가 보고서에 왜 담기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공원 면적이 넓다 보니 100% 다 확인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취재가 시작되자 산림청과 환경부, 국립공원공단, 경주시는 지난 9일 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민단체는 산사태 복원과 함께 대피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위원은 “산사태는 강우에 의해 발생한다”면서 “바로바로 대피하는 것이 중요한데 토함산엔 자동기상관측장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토함산은 정상부터 양쪽 사면 능선 어디든 와이파이가 잡힌다”면서 “자동기상관측장비를 설치하면 경주 국립공원 관리사무소를 비롯해 경주시청과 진현동, 마동, 하동, 외동읍, 문무대왕면, 불국사관리실 등에서 실시간 강수량 측량 정보를 공유해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 | 이홍근 기자 redroo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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