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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국토부 817억, 업계는 1800억…가덕도신공항 '설계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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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현장]



중앙일보

가덕도신공항 조감도. 자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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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조원이 넘는 가덕도신공항의 부지조성공사 발주가 임박한 가운데 정부가 책정한 설계비와 공사기간, 컨소시엄 구성요건 등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설계를 담당하게 될 주요 엔지니어링사는 물론 시공을 맡을 대형 건설사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탓에 자칫 가덕도신공항이 시작부터 삐걱댈 가능성도 제기된다.

13일 국토교통부와 엔지니어링·건설업계에 따르면 수일 내로 총 공사예산금액이 10조 5300억원에 달하는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가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방식)로 발주될 예정이다. 금액으론 턴키 공사 중 역대 최대 규모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공사는 가덕도신공항 전체 시설 중에서 여객터미널과 접근 도로 및 철도 등 건축공사를 제외한 부지 조성(667만㎡)과 활주로 1개(길이 3500m), 유도로 12개, 계류장(72대 주기), 방파제 등 호안시설, 토목·전기·기계·기상 설비 및 항행안전시설 등을 구축하는 내용이다.

공사기간은 착공일로부터 6년(72개월)이며, 이는 정부가 당초 예정대로 2029년 말 개항을 목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데 따른 것이다. 여객터미널과 업무동 등은 설계 공모를 통해 따로 발주가 계획돼 있다. 이러한 부지조성공사 발주를 앞두고 우선 논란이 되는 건 설계비 액수와 책정 기준, 그리고 설계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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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개요. 자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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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는 설계비로 총 사업비의 0.8%가량인 817억원을 책정했다. 반면 엔지니어링 업계에선 1000억원이 더 많은, 최소 1800억원은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의 설계비 액수가 차이 나는 이유는 산정방식을 서로 달리 적용했기 때문이다.

‘건설엔지니어링대가 등에 대한 기준’에 따라 도로, 철도, 항만 분야는 투입인원에 따른 직접 인건비와 각종 경비 등을 합산해 현장 집행 금액에 가깝게 설계비를 책정토록 하고 있다. 이를 ‘실비정액가산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공항 분야는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공사에 일정 요율을 곱하는 ‘공사비 요율방식’을 적용해 왔다. 인천공항과 울릉공항, 새만금공항 등이 모두 해당한다.

국토부는 이 중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했다. 김정희 국토부 가덕도신공항건립추진단장은 “부지조성 공사비에 일정 요율을 곱해서 설계비를 산출하면 과다 산정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항 분야에도 실비정액가산방식을 적용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 단장은 또 “올 1월부터 공항분야 전문가인 ‘가덕도신공항 건설사업 타당성평가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사와 여러 차례 회의를 통해서 실비정액가산방식으로 설계비를 산정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용역사인 엔지니어링사들과 산정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 취지의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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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신공항 건설계획도. 자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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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엔지니어링사들의 얘기는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A 엔지니어링업체 관계자는 “해당 공사가 깊은 바다를 메워서 부지를 조성하고 그 위에 규모가 큰 공항을 짓는, 국내에선 아직 시도한 적 없는 난공사이기 때문에 제대로 설계작업을 하려면 합당한 설계비를 책정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인해보니, 국토부와 용역사들 사이에선 공식적으로 실비정액가산방식으로 설계비를 산정하자는 논의와 합의가 없었다”고 전했다. 실제로 용역사들은 지난 3월 국토부에 보낸 ‘설계도서 및 입찰안내서 제출’이란 제목의 공문에서 설계비를 1781억원으로 제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비 요율방식을 적용해서 산출한 금액이다. 그러나 국토부는 이를 거부하고 애초 산정한 817억원을 고수했다.

상대적으로 짧은 설계기간도 논란거리다. 조달청이 사전공개한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설계 기간은 기본 설계 150일, 실시설계 150일로 돼 있다. 총 10개월에 불과해 전례 없는 고난도 공사를 위한 설계를 치밀하게 하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주요 엔지니어링업체들은 입찰 참여 여부를 놓고 고민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B 엔지니어링업체의 고위 임원은 “국토부가 책정한 설계비가 너무나 터무니없어서 어찌할지 고민”이라며 “최소한 1800억원 정도는 되어야 하는 데 817억원은 말도 안 된다”고 토로했다. 윤희석 한국엔지니어링협회 법제팀장도 “회원사들 사이에서 설계비가 너무 낮고, 기간도 짧다는 의견이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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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신공항 위치도. 자료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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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시공사들 사이에선 컨소시엄 구성요건을 두고 불만이 나온다. 조달청이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입찰을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 상위 10대 건설사(시공능력평가액 기준)는 2개사까지만 참여를 허용키로 했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라는 사업규모와 난이도 등을 고려할 때 하나의 컨소시엄에 최소 3개사까지는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해왔던 건설업계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 셈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건설업체들의 요구를 고려해 조달청에 3개사까지 허용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렇게 하면 제대로 경쟁구도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게 조달청 입장이었다”고 전했다. 착공 뒤 6년으로 책정된 공사 기간도 상당한 부담이다. 수심 20m 안팎의 바다를 메워가며 하는 공사인 탓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인 걸 고려하면 너무 짧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형 시공사들도 입찰 참가를 두고 고심 중이다. A 건설사 관계자는 “무려 10조원이 넘는 사업인데 컨소시엄에 참여할 대형 건설사를 2개로 제한한다면 리스크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에 부담스럽다”며 “한 회사가 5조원 가까운 토목 프로젝트를 수행해야 하는데 국내에선 그렇게 큰 규모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B 건설사 측도 “지상공사도 아니고 바다를 매립하는 공사인 데다 공기까지 짧아서 여러모로 걱정되는 사업”이라며 “한 컨소시엄에 대형 건설사가 3~4개는 참여해야 감당이 될 상황인데 지금 조건에선 경쟁 자체가 성립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밝혔다.

이렇게 살펴보면 현재 기준에선 제대로 설계와 시공을 담당할 업체를 찾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원활한 사업 수행을 위해선 지금이라도 국토부가 2029년 말 개항 목표와 일정에만 매달리지 말고 관련업계 의견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렴하고, 현실적인 여건을 고려해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는 것 같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백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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