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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하이브리드 고집의 반전' 역대 최대 실적 도요타...한쪽선 경고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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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사상 최대 44조 원 영업이익 달성
"하이브리드 강세와 엔화 약세 덕분"
'멀티 패스웨이' 고수...전동화 전환은 느림보
칭송받던 TPS, JIT 생산 방식에 들리는 경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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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한 도요타자동차 매장에 설치된 도요타 로고 광고판. 도쿄=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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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요타자동차가 2023년 사상 최대 규모인 5조 엔(약 44조 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고 발표했다. 이는 1937년 회사 설립 후 역대 최고이자 일본 기업 중 처음 달성한 실적이다. 이런 역대 최대 성적표의 배경에는 ①하이브리드 차량 판매 증가②엔화 약세 효과가 꼽힌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도요타의 이런 호실적이 얼마나 이어질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도요타는 8일 지난해 사업연도(2023년 4월∼2024년 3월) 영업이익이 5조3,529억 엔(약 47조883억 원)을 기록해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96.4% 증가했다고 알렸다. 매출은 45조953억 엔(약 395조9,8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1.4% 증가했다.

하이브리드차가 끌고 엔저 환율이 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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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대 프리우스. 도요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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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과의 비결에는 하이브리드차가 있다. 도요타는 1997년 세계 최초로 양산형 하이브리드차 프리우스를 내놓은 덕분에 30년 가까이 하이브리드차의 대표 브랜드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5세대 프리우스를 공식 출시했다. 특히 도요타는 하이브리드차를 많이 팔수록 더 남는 구조를 만들어 놨다. 최근 모델은 1세대에 비해 원가는 6분의 1로 줄었고 가솔린차보다 이익률은 10%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착실한 준비는 지난해 빛을 낸다. 전 세계 전기차 판매가 주춤해지자 하이브리드차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 올해 1분기(1~3월) 미국에서 도요타의 하이브리드차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5%(11만6,288대→20만3,178대)나 뛰어올랐다. 이번 실적 발표에서도 하이브리드 차 판매는 전년 대비 32.1% 증가해 총 359만4,000대가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엔저 현상이 더해져 이익을 껑충 뛰게 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도요타는 미국에서 수십 년 전부터 생산 공장을 짓고 판매망을 늘리는 등 여러 준비를 해왔다"며 "미국에서 도요타의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지고 하이브리드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생기니 판매량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평가했다.

멀티 패스웨이? 하이브리드 마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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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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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기차 붐이 일었던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도요타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고육지책으로 도요타가 들고 나온 것이 '멀티 패스웨이' 전략이다. 이는 나라별로 에너지 수급과 지역별 상황이 다르니 전기차뿐만 아니라 수소차, 하이브리드차 등을 맞춤형으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후 도요타는 여전히 하이브리드차를 중심에 둔 마이웨이 행보를 보였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은 1월 도쿄에서 열린 오토살롱에서 "(하이브리드) 엔진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실질적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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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동준 기자


결국 전기차 캐즘(Chasm·일시 수요 정체) 시대에 들어서자 하이브리드차를 고집한 도요다 회장은 웃었고 전기차 전환을 서두르던 다른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고전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은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고 하이브리드차 수요 증가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도요타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거의 유일하게 높은 하이브리드차 비중을 유지한다"며 "내연 기관차와 전기차를 같이 만들거나 전기차 전용 생산 시설로 무게 중심을 옮긴 업체는 전기차 수요가 위축되면서 그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대차그룹도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고 실적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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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다 아키오 회장이 지난 1월 30일 기자회견에서 도요타 자회사의 잇단 부정 스캔들에 대해 사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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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박수 소리가 크지만 한편에서는 경고등도 깜빡이고 있다. '도요타 생산방식'(TPS) '적기생산방식'(JIT) 등의 부작용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도요타 그룹사들이 자동차 시험 데이터를 조작하고 품질 문제를 숨긴 것으로 확인돼 한동안 생산을 중단했다. 이 문제를 조사한 위원회는 효율 경영 뒤에 가려진 짧은 개발 일정, 상사에게 '못 하겠다'고 말할 수 없는 조직 문화 등이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도요다 회장은 "도요타를 일으켜 세우느라 바빴다"며 "여유가 없어 부정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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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토 고지 도요타자동차 최고경영자(CEO)가 8일 도쿄에서 열린 실적 발표 기자회견에서 전년보다 대폭 호전된 실적을 공개하고 있다. 도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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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 패스웨이 전략도 중장기적으로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요타는 최근 직원들의 정년을 70세까지 늘리려 하고 있다. 다양한 차종을 동시에 개발·생산하려다 보니 인력이 필요한데 일본의 인구 감소 장기화와 고령화에 따라 직원 수는 줄고 있다. 게다가 도요타는 전기차 분야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거둔다. 사토 고지 도요타 최고경영자(CEO)는 2023년 4월 "2030년까지 350만 대 전기차를 판매하겠다"고 했지만 지난해 11만 대를 파는 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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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도요타가 하이브리드차를 내놓을 땐 새 기술을 만드는 퍼스트무버였고 이를 통해 높은 성과를 달성했다"며 "최근에는 중국 전기차가 혁신의 대명사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국은 2035년 신차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전기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하이브리드차를 지나 전기차 경쟁이 다시 벌어지면 도요타가 세계 1위를 지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희경 기자 kst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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