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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장승포에 청년 거리를 만드는 ‘퍼스트 펭귄’이 되겠어요”[그 마을엔 청년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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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소멸에 맞서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이야기-1회

행안부 지정 거제 ‘아웃도어아일랜드’ 박은진 대표 등

그들의 사무실 로비엔 책이 가득했다. 2014년부터 만 10년 동안 해 온 지방 도시 재생사업의 순간들을 책으로 묶어 낸 것이 벌써 15권이 넘는다. 박은진 공유를위한창조 대표는 “2019년 회사를 부산에서 거제로 옮길 당시를 기록한 ‘그냥 살아보자, 조그만 바닷가 동네에서’가 가장 아끼는 기록”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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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 장승포에서 청년마을 ‘아웃도어랜드’를 이끌고 있는 박은진 대표. 거제=신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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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표와 박정일 본부장 등은 당시 옥포대우조선소(현 한화오션)의 배후 주거지가 있는 경남 거제 장승포 1구 골목에 지금의 사무실을 냈다. 조선소가 경영 위기를 겪는 사이 마을과 골목 상권이 타격을 받았고 사람들이 떠나 거리에 차와 사람이 드물 정도였다. 2층짜리 단독주택 건물을 매입해 청년들이 머물며 일도 하고 쉴 수도 있는 ‘아웃도어아일랜드’를 열었다. ‘outdoor’의 순우리말을 찾아 ‘밗’이라는 건물 이름도 지었다. 도시의 청년들이 찾아와 쉬고 놀고 일할 수 있는 공간. 지금까지 200여 명의 청년들이 이곳에서 지역살이와 워케이션을 체험하고 돌아갔다. 이곳을 다녀간 이들의 사연을 글과 사진으로 받아 또 여러 권의 책을 지었다.

“우리는 과정 중심적으로 일합니다. 이 일을 왜 하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바로바로 기록합니다. 거제를 경험하고 간 청년들에게도 멋진 인생 기록이 되겠죠?” 이렇게 말하는 손유진 프로젝트 팀장을 합해 거제에 상주하는 직원은 모두 7명이다. 2021년 행정안전부가 지원하는 ‘청년마을’로 지정되면서 해양수산부와 거제시의 사업도 이어나가게 되었다. 인근에 공간 세 곳을 더 임대, 매입하여 ‘여가’와 ‘거가’ 등의 순우리말 이름으로 숙소와 식당, 공방과 회의공간 등을 추가로 마련했다. 청년들이 거제라는 천혜의 자연 환경 속에서 놀고 사색하고 회의하고 뭔가를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골목 자체를 바꿔나가고 있는 셈이다. 밀양에 직원 11명을 따로 두고 폐교된 밀양대학교 재생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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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유진 팀장이 공방에서 청년들이 만든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거제=신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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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포의 공동화는 대한민국 지방 소멸의 생생한 사례다. 한 때 5만에 달했던 인구는 조선업이 쇠퇴하면서 5000명 이하로 줄었다. 젊은 조선인들이 떠나면서 인구 고령화가 심화됐다. 공동화 현상으로 집과 상가가 남아돌았다. 1년 이상 빈집이 전체의 30%에 육박했다.

‘이곳에 청년들을 오게 하자. 캠핑과 낚시를 하고 사색과 힐링을 하며 지역살이를 체험하게 하자. 그렇게 늙고 침체된 항구도시 장승포의 골목을 살리자.’ 박 대표와 박 본부장이 부산 초량에서의 도시재생사업을 뒤로 하고 거제로 오게 된 이유다.

“2008년에 대학에 입학해 도시계획을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아일랜드에 살면서 커뮤니티 사업을 경험했고 한국에서 실천해보리라 결심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그런 회사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2014년에 같은 생각을 가진 박 본부장님과 회사를 만들었어요.”

박 대표는 자신 스스로를 ‘퍼스트 펭귄’이라고 말한다. 다들 주저하는 새로운 일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 부딪히고 경험하며 길을 개척해 나가는 사람. ‘지방소멸’과 ‘인구절벽’이라는 대한민국의 위기상황에 ‘청년의 로컬 라이프’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겠다고 남보다 먼저 뛰어든 셈이다. 이후 정부와 지자체 지원금 매출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윤을 내는 영리사업은 아직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아직은 돈을 버는데 신경을 쓸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속도대로 천천히 생각을 펼쳐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역 재생 사업의 성공적인 전형을 먼저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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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재생 전문 사회적 기업인 ‘공유를위한창조’ 창업자인 박정일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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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생인 박 본부장도 후배들과 동고동락하며 ‘퍼스트 퍼스트 펭귄’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회사로 밀양 주재 사원 세 명이 연휴를 즐기러 내려왔는데 박 본부장은 시장에서 사온 해산물로 손수 훌륭한 저녁 만찬을 준비해 청년 사원들을 대접했다. 그는 “지역 주민들이 외부에서 온 청년과 활동가들이 뜻을 펼 수 있도록 리더로 대우해 주는 게 지역 재생 사업 성공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큰 행정구역이 아니라 마을이나 골목 단위로 한 가지 특색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몸은 중장년이지만 마음은 청년인 도시의 시니어들이 은퇴 후 지방에 내려와 청년들과 힘을 합치는 ‘브론즈 타운’도 꿈꾼다. 이들의 꿈이 또 어떤 책으로 엮여 나올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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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동아닷컴 전무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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