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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부자만 낸다는 상속세 … 6년후 서울아파트 80%가 과세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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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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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자녀를 둔 70대 주부 A씨는 최근 남편을 여의고 아파트를 상속받아 970만원의 세금을 냈다. 낡은 아파트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데, 재산가액이 11억원을 넘자 상속세 대상이 되면서 목돈을 구해 세금을 내야 했다. 뚜렷한 수입이 없는 A씨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적지 않은 세금까지 내야 했다.

40대 직장인 B씨는 은행을 찾았다가 자기가 금융소득종합과세(금소세) 신고 대상자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B씨는 "남들보다 어린 나이에 사회생활을 시작해 정기예금에 7억원을 알뜰히 모았는데, 금리가 오르면서 갑자기 큰 세금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84㎡ 아파트에 사는 1주택자 C씨는 2년 전부터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내고 있다. C씨는 "수익형 부동산도 아니고, 순전히 주거 생활을 하기 위한 곳인데 세금을 내게 돼 부담이 크다"고 토로했다.

국민경제가 성장하는 동안 상속·증여세, 금소세, 종부세, 개별소비세(개소세)를 비롯한 세금은 꿈쩍하지 않으며 서민 부담이 커지고 있다. 도입 이후 국민소득이 3배 넘게 늘어나면서 소득·자산 상위층이 아닌 일반인까지도 대거 과세권에 들면서다. 과거와 달리 이제 주식투자가 일반화됐고, 아파트 가격을 비롯한 자산 가격 상승 속도가 가팔랐던 만큼 달라진 경제 상황을 반영해 합리적인 수준의 조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상속·증여세는 2000년 최고세율이 45%에서 50%로 올라간 후 24년째 변동이 없다. 종부세(2005년)는 시행 20년을 앞뒀고, 금소세(1996년)는 28년 묵었다. 1977년 당시 자동차 등을 사치성 재화로 보고 도입했던 개소세는 무려 47년이나 됐다.

문제는 고율의 세금이 요지부동하는 동안 경제 성장에 따라 소득과 자산이 늘어난 서민까지 무차별적으로 과세 대상이 됐다는 점이다.

기획재정부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국내 조세 부담률(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 수입 비율)은 최근 5년 새 3.9%포인트 올라 2022년 기준 23.8%까지 늘었다. 국민소득보다 세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빨라졌다는 뜻이다.

상속·증여세는 2000년만 해도 3만9000명이 9000억원을 냈다. 하지만 2022년에는 납부 인원 26만8000명, 세액 14조6000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고령화 추세가 빨라지며 이 기간 상속재산이 3조4000억원에서 56조4000억원으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아파트를 보유한 서민이 받는 타격이 커졌다. 통상 10억원을 초과한 아파트부터 상속세를 매기는데, 올해 서울 지역 아파트 193만1000가구 중 10억원이 넘는 아파트 비중은 39.9%(77만2400가구)로 이미 상당수 국민이 과세권에 들었다.

매일경제가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추세가 계속된다면 2030년 서울에서 상속세를 내야 하는 가구 비중은 80%로 급증할 전망이다.

국세공무원교육원 교수 출신인 최성일 예일세무법인 대표는 "최소한 배우자에 대한 상속세 공제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은 추진해야 한다"며 "배우자 공제 확대는 세대 간 부의 이전이 아니기 때문에 부자 감세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주식을 비롯한 자산투자가 늘면서 금소세도 '서민세금'이 됐다. 현재 이자·배당소득을 합친 금융소득이 연간 2000만원이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최대 49.5% 누진세율을 적용해 세금을 뗀다. 꾸준히 예·적금으로 자산을 관리하던 서민들도 고금리에 금소세 폭탄을 맞는 사례가 속출했다.

안만식 이현세무법인 대표는 "금소세가 도입됐던 때가 30여 년 전이기 때문에 현재 자본시장 상황을 감안해 2000만원 과세 기준을 상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종부세는 윤석열 정부 집권 이후 세부담이 낮아졌지만 실수요자 부담이 가중되는 현실은 여전하다. 이에 1주택자에 한해 과세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 대표는 "같은 재산에 재산세와 종부세를 두 번 과세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부동산 가격 안정은 징벌적 세금이 아닌 싼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게 맞는다"고 평가했다.

반세기 묵은 자동차 개소세와 증권거래세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개소세는 귀금속이나 자동차를 구매할 때 부가가치세와 별도로 매기는 세금으로 사치품 소비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하지만 이제 자동차를 사치품으로 보기 어렵게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자동차 등록대수는 2595만대로 가구당 1대꼴로 자동차를 갖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자동차를 사치품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과세 취지에 어긋나기 때문에 과세 대상에서 자동차는 제외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전했다.

주식 거래분에 0.03~0.18% 세금을 매기는 증권거래세는 1979년 증시 소득 파악 시스템이 미비해 세금을 거두기 어려워지자 세수 확보 차원에서 도입했다. 하지만 주식 과세 기반이 탄탄해져 도입 취지가 퇴색된 지 오래됐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명준 전 서울국세청장은 "중산층 이하 가계 세부담은 줄이되 고액 자산가에 대해서는 적정 부담을 지게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면서도 "근로장려금 등을 강화해 근로 의욕이 있는 계층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세입 기반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정환 기자 / 이희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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