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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朝鮮칼럼] 新냉전 세계 활보하는 일본과 우물 안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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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력 팽창 와중에

우리가 北만 쳐다보는 동안

일본의 국제적 위상 급변

국방 예산 2배로 늘리면서

인도·태평양 전 지역에서

美와 자유 진영, 전방위 연결자로

대한민국은 우물 안 개구리

‘한반도 천동설’ 비웃음까지 있다

한국이 한반도라는 우물 안에서 북한만 쳐다보는 사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급변하고 있다. 일본은 2006년 아베 내각 때부터 대외 군사력 투사가 가능한 ‘보통 국가’를 지향하는 개헌을 추구했으나, 2차 대전 패전국의 재무장에 대한 주변국의 우려와 국내 반대 여론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미국의 동아시아 안보 체제에서도 핵심은 단연 한미 동맹이었고, 일본의 역할은 한반도 방어를 위한 지원에 그쳤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미·중 패권 경쟁이 시작된 이래 일본은 자유민주 진영의 동아시아 방어 체제에서 지위와 역할이 급상승하는 추세다.

2010년 중국 GDP가 일본을 추월하고 대만 인근 센카쿠 열도에 대한 중국의 군사적 위협이 시작된 데 이어 2013년 시진핑 체제 출범으로 중국의 급속한 군사력 증강이 시작되자, 일본은 중국을 견제할 유일한 수단인 미·일 동맹의 대대적 강화에 나섰다. 2010년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센카쿠 열도가 미·일안보조약 적용 대상이라는 공동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2012년엔 센카쿠 열도를 국유화해 레이더 기지와 미사일 기지를 건설했다. 미국이 중국의 남중국해 불법 점유를 막고자 2015년 시작한 다국적 ‘항행의 자유 작전’에도 적극 참여 중이고, 국방 예산 2배 증액도 진행 중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일본은 아베 내각이 2014년 평화헌법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해외 군사행동을 합법화한 데 이어, 2022년엔 기시다 내각이 전후 77년 만에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적국에 대한 선제공격을 포함하는 ‘군사적 반격 능력’의 보유를 공식화했다. 외교적 측면에서도 일본은 2020년 중국을 포위하는 미·일·호주·인도 4국의 QUAD 결성에 앞장섰고, 2022년에는 일·호주 신안보공동선언을 통해 준동맹 수준의 안보 협력 격상에 합의했다. 2023년엔 한·미·일 안보 협력체 출범에 일조했고, 최근엔 미·일·필리핀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을 겨냥하는 3국 안보 협력 체제를 출범시켰다. 일본은 조만간 미·영·호주의 오커스(AUKUS) 활동에도 동참할 전망이다.

이처럼 일본은 NATO 같은 단일 지역 동맹체가 없는 인·태 지역에서 미국의 충실한 동맹국으로서 중국의 세력 팽창에 대항하는 자유민주 진영 국가들을 상호 연결하는 전방위 연결자 역할을 수행 중이다. 단지 외교적 역할에 그치지 않고, 대중국 긴장이 고조된 남중국해에서 보란 듯이 미국과 합동 해상 훈련을 벌이고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참전을 공언하는 등 군사적 관여도 확대 중이다. 과거엔 일본의 이런 행보가 주변국의 우려를 불러오기도 했으나, 중국의 노골적 군사 위협에 직면한 미국, 호주, 동남아 어디에도 그런 우려의 조짐은 없고 환영과 지지 분위기 속에 역할을 확대해 가고 있다. 이를 비판하거나 우려하는 역내 국가는 중국·러시아와 남북한 정도뿐이다.

급변하는 신냉전의 국제 질서 속에서 전방위 안보 협력 강화와 대외 군사 활동 확대를 추구해 온 일본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이 보여온 대외 행보와는 대조적이다. 그 시기에 한국은 남북 관계와 북핵 문제에 몰입해 스스로 국제적 입지를 위축시키면서 국제사회의 대세와 동떨어진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를 선택했고, 북한과 중국을 의식해 중립적 모호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대미 방위비 분담금도 일본은 1996년부터 거의 전액을 부담해 온 반면, 한국은 분담률 50%를 넘기지 않으려 노심초사했다. 미·중 대결이 시작된 이래 인·태 지역 도처에 거미줄 같은 안보 협력망이 형성됐지만, 그 속에서 한국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존재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도 중국 눈치 살피느라 다분히 외교적 수사 차원에 머물고 있다.

이러다간 훗날 미·일을 주축으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이 참여하게 될 아·태 광역 안보 협력체 형성에서 한국만 소외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요즘 ‘한반도 천동설’이라는 자조적 용어가 국내 일각에서 유행이다. 중세 시대 사람들은 우주가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을 믿었다는데, 한국인은 아직도 우주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돈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사회에서 잊혀가는 북핵 문제를 지상 최대의 안보 현안이라 여기면서 그보다 한결 중요한 남중국해, 대만, 우크라이나 문제엔 철저히 무관심한 한국인의 자국 중심주의, 그건 그들이 비난하는 트럼프의 자국 중심주의와 얼마나 다를까.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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