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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다둥이 할인 2자녀까지” 생색은 정부가 내고, 강사들 월급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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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다자녀 가구 기준 3→2자녀"
서울 다자녀 혜택 가구 29만→43만 가구
공공 문화·체육시설 강사 '급여 삭감' 결과로
강사 급여, 시설과 수업료 나눠 갖는 구조
강사들 "생색은 지자체가 내고 피해는 강사"
한국일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도심의 공사장 가림막에 그려진 행복한 가족 그림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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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북의 한 지자체 산하 체육센터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요가강사 A씨는 지난 1년 사이 시급이 6만 원에서 3만~4만 원대로 30% 이상 삭감됐다. 지난해부터 공공 문화·체육시설 다자녀 가구 할인 대상이 세 자녀 이상에서 두 자녀 이상으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미 고령자, 유공자 등 여러 할인이 있는데 다자녀 할인까지 적용되면서, A씨의 경우 수강생 12명 중 11명이 할인을 받는 반도 있다. 부족해진 수입을 벌충하려 A씨는 올해 수업을 2개에서 5개로 늘렸다. A씨는 "다자녀 가구 할인은 가족 구성원 전체가 받기 때문에 할인 대상자가 상당하다"며 "강사에 대한 대책도 없이 혜택만 늘어난 셈"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비슷한 처지의 에어로빅 강사 B씨는 "할인 혜택을 강사 급여에서 빼서 주면서 생색은 나라와 지자체가 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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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 자치구 문화시설에서 평생학습교실 강사에게 보낸 올해 상반기에 예산을 많이 소진해 하반기 수업 횟수를 줄인다는 내용의 이메일 캡처. 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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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횟수를 줄인 지자체도 있다. 서울 한 자치구 문화시설 강사 C씨는 지난달 시설로부터 예산 부족 때문에 하반기 수업 횟수를 20회에서 15회로 줄인다는 통보를 받았다. C씨는 "수업 횟수가 수입으로 직결되는데 이런 식으로 갑작스레 통보하는 게 어딨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정부와 지자체들이 잇따라 다자녀 혜택을 확대하면서 공공시설 강사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시설과 강사가 수업료와 수익을 배분하는 구조인데 할인 확대로 전체 수익이 감소하면서 시설들이 강사들의 급여를 깎은 것이다.

다자녀 할인 확대는 2021년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다자녀 가구 지원 기준을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확대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5월 서울시가 다자녀 기준을 세 자녀에서 두 자녀로 완화했고, 서울 25개 자치구도 같은 방식으로 조례를 개정했다. 통상 세 자녀는 50%, 두 자녀는 30% 감면해준다. 서울 기준 다자녀 혜택 가구는 기존 29만 가구에서 43만 가구로 1.5배 확대됐다.

각종 할인에 따른 수익 감소분에 대해 지자체가 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점이 문제다. 지자체 시설관리공단 이사장 방침이나 운영지침으로 '할인 금액을 제외'하고 강사에게 수업료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서울시의회 이소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에서 받은 강사급여 지급방식 자료에 따르면 25개 자치구 중 배분제가 10개, 프로그램별 배분제와 시급제 병용이 13개였다. 시급제는 은평구와 서대문구뿐이었다. 할인 혜택이 늘어날수록 강사 임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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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주요 자치구 다자녀 할인 및 강사급여 지급 방식. 그래픽=신동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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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제도 확대 등에 따른 강사 임금 삭감을 막으려면 수익 감소에 대한 예산 확보가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강사들은 최소한 배분제가 아닌 시급제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자치구들은 예산 부족과 잦은 할인정책 변동 등의 이유로 필요한 예산 확보와 시급제 도입에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심지어 서울의 한 자치구 공단 관계자는 "수강생을 더 많이 끌어들일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기 위해 강사들에게 배분제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부 자치구는 다자녀 혜택 확대로 강사들의 임금이 지나치게 삭감되는 점을 감안, 일부 보완책을 마련 중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다자녀 할인 확대 추이를 모니터 중"이라며 "필요시 임금 보전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도봉구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강사에게 배분하는 수업료 비율을 60%에서 70%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연구위원은 "공공시설에 근무하는 강사의 열악한 처우는 계속해서 지적되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며 "지위가 불안정한 계약직 강사지만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만큼 지자체 차원의 조례 등을 마련해 급여를 보장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떠넘길 것이 아니라 예비비를 편성하거나 강의 수업료를 올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정현 기자 hhh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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